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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Oct 11. 2023

물건보다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어

 

아이가 잠이 들고 난 후 소파에 앉았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들고 sns를 확인해 본다. 친구의 피드에서 요즘 열광하는 산리오 캐릭터로 도배된 딸의 사진을 보았다 옷, 가방, 신발, 핸드폰 케이스, 머리핀 등등 그 캐릭터로 만든 모든 것을 구매해 꾸며놓은 모습이었다. 온통 그 캐릭터로 꾸민 아이의 모습은 귀여웠고, 그것 덕분에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아니해줬어야 하는 걸까?' 그동안 아이에게 그 캐릭터의 장난감을 몇 가지 사주고 만족했던 내 모습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니 비교가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친구가 딸을 그렇게 꾸며놓은 것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고 싶진 않다. 그들의 취향이고 만족이니까.




요즘 초등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산리오 캐릭터(대표적으로 헬로키티, 마이멜로티, 시나모롤, 포차코, 폼폼푸린, 쿠로미 등등)가 대세인지 오래되었다. '산리오 지옥'  아이들은 그것으로 만들어진 물건을 갖고 싶어서 난리다. 하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태어나 지금까지 뽀로로, 콩순이, 시크릿쥬쥬, 캐치티니핑 등등의 이런 것들을 거쳐서 현재는 산리오와 아이돌을 섭렵한 것이다




그동안 나도 우리 아이에게 그 캐릭터의 물품들을 사주곤 했다. 인기인 캐릭터들은 어디에 가도 워낙 많은 것들이 있으니까 아이 눈에 띄면 당연히 사달라고 말했고 종종 작은 것을 사주는 것이 다였 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은 그 캐릭터로 만든 제품의 범위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다 사주고 싶어도 워낙 많고, 사이즈나 퀄리티에 비해 가격이 비싸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마트에서 주문하려고 검색을 했는데 그 산리오 캐릭터들 제품이 가득 나왔다. 그릇부터, 베개, 이불, 물병, 사진홀더, 심지어 빗자루까지 있었다. 이외에도 상상초월의 물품들이 있었다. 그렇게 많은 물건들이 있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가 친구 sns를 보고 나도 아이에게 이렇게 더 많이, 더 풍족하게 물건을 사줬어야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다양한 걸 파는거야... 산리오!







그러던 중에 추석이 다가왔다. 우리 조카들 중에 둘째가 산리오 캐릭터 중에 시나모롤을 좋아하는데 마침 신발브랜드에서 콜라보를 해서 만든 것이다. 작년에 조카에게 물려받은 신발을 잘 신었던 터라 추석 선물로 이왕이면 그 신발을 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새언니에게 물어보고 나서 주문하려고 보니 이미 사이즈가 솔드아웃되어 없었다. 엄청난 인기다!  



옆에서 얘길 한참 듣고 있던 아이는 "나도 시나모롤 신발 알아, 우리 반 누구가 그 신발 있어, 근데 개는 시나모롤 옷도 입었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필통도 시나모롤, 가방도 시나모롤 등등등 엄청 빠져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제 신발과 옷까지 시나모롤이라고 하니 와!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주는 부모님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 친구가 가진 물건이 그렇게 많다는 얘길 듣다 보니, 순간 그 캐릭터로 도배한 내 친구의 딸 사진이 겹쳐지면서 그동안 내가 아이의 장난감이나 물건 구매에 너무 모질었나 하는 생각이 또 들었던 것이다. 아이에게도 미니멀을 핑계로 자주, 매번 물건을 안 사주려고 핑계되고 거절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기회에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 선물, 유행하는 캐릭터를 나는 어디까지 허용하고, 구매해 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나는 과연 그렇게까지 해줄 수 있을까? 그게 맞을까?라는 고민도 하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결혼하실 때는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다. 집이 아니라 방 하나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을 정도로 어려웠다.  그러니 집을 구매하기 위해서 아빠는 정말 열심히 일해야 했고, 엄마는 맨날 아껴야만 했다. 엄마의 기억에 의하면 어린 내가 새콤달콤을 사달라고 우는데 그것조차 아끼느라 안 사줄 때가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오래도록 그 기억이 나서 슬펐다고 했다. 그게 얼마나 한다고(50원 정도 하지 않았을까) 그냥 맘껏 사줄걸 그랬다고 두고두고 후회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어릴 적에 엄마가 아끼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산 결과 어느 순간 우리 집은 부자가 되어 있었다. 재벌은 아니어도 갖고 싶은 물건을 어려움 없이 사고,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은 언제든 원할 때 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부모님의 절약했던 습관이 남아있어서 그렇게 돈을 허투루 쓰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분명 값비싼 물건을 턱턱 사주는 부모님은 아니셨지만 그들의 지원 덕분에 훗날 풍족하게 지낼 수 있었고 덕분에 10대 후반부터는 수많은 나라를 여행 다녀보고, 최고의 경험들마음껏 해볼 수 있었다. 그것이 난 정말 좋았다.




그리고 그 부모님의 습관은 나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물론 우리가 물건을 마음껏 사는 것도 가능하고, 여행도 마음껏 다니면 좋겠지만 그 두 가지를 다할만한 형편은 아니니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한 가지를 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물건 대신 경험을 중시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물론 아이가 원하는 모든 장난감을 사줄 수는 없지만 대신 우리가 제주도에 오고 싶을 때 이사 올 수 있었고, 이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물건이 아닌 여행, 체험등으로 아이에게 넓은 시야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아이 친구의 이야기와 친구 아이의 사진을 보며 또 그것에 흔들릴뻔했다.

물질이냐 경험이냐. 그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선택이다. 당연히 여유가 된다면 물질도 경험도 다 해주면 최고겠지만 우리 가족은 그렇게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마음껏 사주는 커다랗고 멋진 장난감, 넓은 집, 럭셔리한 자동차 그것들은 분명 이전에 우리가 포기한 것이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물질보다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다. 내가 20대에 충분히 경험해 본 결과 물건은 언젠가 흥미를 잃게 되고, 사라지게 되고, 잊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어느 날 아이에게도 취향이 생겨서 그가 물건을 사는 것에 대해서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 품에 있을 때라도 우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제공해주고 싶다. 귀여운 캐릭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도 좋겠지만, 공기가 좋은 곳에서 살고, 바다에서 뛰어놀고, 산을 오르고 흙을 만지고, 말을 타보는 등등의 손과 몸으로 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정말 이렇게 하고 있나 또 다시 반성도 해본다)



비록 그 어릴 적 새콤달콤을 마음껏 먹지 못했지만 훗날 다양한 경험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 준 부모님께 감사하는 내가 있듯이, 아이도 나중에 우리에게 감사하는 때가 오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물론 감사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가 낳았기 때문에 끝까지 책임지는 부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건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 큰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아이가 되길 기대한다. 그것이 우리의 선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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