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냉장고를 다시 채우는 일이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냉장고 파먹기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1박 2일 걸리는 이사길에 음식은 신선하지 못할 테니까. 당연히, 그래도 끝까지 남는 음식은 어쩔 수 없었다. 간장이라던지, 샐러드 드레싱이라던지 혹은 고추장, 된장! 생각보다 냉장고에서 두고두고 오래 먹는 음식이 많았다. 결국 그것들은 얌전히 아이스박스로 넣어져서 제주로 보내졌다.
제주도 이삿짐이 들어오던 날. 냉장고는 최소한의 것들로 채워져 있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 늦은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는데 집에 먹을 것이 없다. 큰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외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저녁 메뉴는 흑돼지다!
이 흑돼지 집은 정말 오랜만이다. 바야흐로 5년도 전에 제주도 여행의 마지막 만찬을 즐기던 집인데 여전히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이곳에 건재하다. 적어도 그때는 식사 타임이 아니라 한가했는데 오늘은 저녁시간에 방문했더니 와! 코로나 시국에 웨이팅 하며 흑돼지를 먹어야 한다니! 손님들이 끝도 없이 들어간다. 역시 맛있군. 밖에서 숯불에 구워 먹는 고기 맛은 언제나 옳다. 아이도 먹으며 엄지 척! 다음에 또 오자 맘 먹으며 나왔는데 가격이 조금 부담이다. 매끼 이렇게 먹을 순 없을텐데. 원래 흑돼지는 이렇게 비싼 걸까?
저녁을 든든히 먹은 우리는 이제 냉장고를 채워 넣으러 간다. 로컬푸드 중심으로 판매되는 마트를 찾아갔다. 어? 아직 늦지 않은 저녁시간인데 손님이 거의 없다. 우린 여유롭게 마트를 걸으며 카트에 하나씩 차곡차곡 담는다. 마치 금방 먹은 흑돼지를 뱃속에 넣고 통통 두드리며 산책하는 여유로운 느낌이랄까?
로컬 푸드를 파는 매장답게 '제주산' 표시가 가득했다.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은 제주감귤과 황금향. 비닐봉지에 몇 개씩 담아서 무게를 재면 계산이 된다. 몇 개 사지 않았는데 가격이 꽤 비싸다. 마트에 오니 제주도 물가를 조금씩 느끼는 중이다.
생선 코너를 지나며 갈치 한 마리를 보았다. 은갈색이 반짝반짝 어마어마하게 빛난다. 와, 진짜 갓 잡아온 신선한 갈치라는 느낌이다. 살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앞에 먼저 온 아주머니가 갈치 가격을 여쭤봤다. 로컬푸드마켓에서도 갈치의 가격은 꽤 나갔다. 오히려 서울에서 먹던 갈치가 저렴한 느낌이다. 대신 덜 신선 했겠지만.
오늘 흑돼지를 먹었으니 내일은 소고기다! 하면서 소고기 코너를 갔는데 재밌는 선전문구 '신선한 육회 먹고 육회한 하루 보내세요!' 하하하! 참 재밌다. 그 위엔 '소 잡는 날'이라는 표시가 되어있다. 매주 수요일, 금요일. 오늘은 수요일, 제주에서 소 잡는 날이다!
오늘은 제주에서 소 잡는 날!
육회라니! 내가 마트에서 육회를 산다니!! 양념은 어떻게 해서 먹전지?! 한참 육회 집이 유행이라 몇 번 다녀온 적은 있었는데, 이거 내가 집에서 먹을 수 있을까? 아니 요리해 먹을 수 있을까? 맛있어야 하는데! 딱 봐도 너무 때깔 좋고 신선한 고기라! 손이 저절로 가서 카트에 담았다. 나는 이 신선한 고기를 망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센스 있게도 그 위에 '한우 육회 레시피'이라는 타이틀로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간단한 조미료만 있으면 되는 터라 나는 오늘 육회를 요리해(?) 먹어보기로 했다!
1. 키친타월로 톡톡 두드리기 2. 배와 쪽파를 썰어주기 3. 모든 양념을 잘 섞어주기 4. 모든 양념을 육회에 넣어주기 5. 쪽파도 넣어 잘 섞어주기 6. 노른자와 통깨를 올려주기 7. 맛있는 육회 완성!
그렇게 완성된 육회! 내 인생 첫 육회 만들기! 최소한의 양념 맛으로도 훌륭했다! 아쉽게도 우리 집엔 배가 없었지만 그 나머지 재료만으로도 충분히 맛있었다. 역시 메인 재료가 신선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집에서 육회를 먹다니 남편이 더 놀랐다! 하하하. 오늘 요리도 성공적이다.
제주도에 오니 '제주산' 재료들을 쉽게 만난다. 육지에서는 각 지역에서 다양하게 올려오는 재료를 만났었고 그때마다 나의 취향과 선택은 달랐다. 제주도에 왔으니 제주산에 더 애착 갖게 된다. 어제만 해도 제주산 닭고기와 우유, 계란, 당근, 콩나물, 두부를 구매했다. 지금 우리 집엔 제주산 감귤이 넘치고 있고, 앞으로도 마트에가면 아마도 제주에서 나온 고기, 야채들을 먼저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여기에서 지내는 동안은 가까이에서 나오는 신선한 재료를 갖고 건강한 요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 요리라고는 딱 질색인 나지만 그래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신선한 재료와 먼저 친숙해진다면 앞으론 요리하는 것이 즐거워지지 않을까? 그렇게 만들어진 요리를 우리 가족이 함께 맛있게 먹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싶다. 그렇게 따뜻하고 단단한 가족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