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찾아 삼만리 in 제주
저녁을 먹으며 테이블 위를 보니 낯익은 두 병의 복숭아 음료수가 올려져 있다. "어? 그거 냉장고에 있던 것 내가 마셨는데, 어떻게 두 병으로 늘어났지?" 하고 물어보니 남편 왈 "아까 편의점에 들렸는데 당신 생각이 샀어" "아, 그런데 두 병이나?" "응 마침 1+1이라서 구매했어." 나는 마지못해 웃으며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엊그제 마신 주스가 오늘 두 병이나 새로 늘었다. 와 기쁘고 행복하다!
제주도에 오기 전 우리 남편은 편의점 마니아였다. 그래서 야행성인 남편은 밤에 "산책 다녀올게" 하면서 밖을 향했고 그 시간에 열려있는 아주 고마운 상점은 '편의점' 뿐이었으니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편의점에 나온 신상이라는 신상 특히 과자를 늘 사 오는 것이 그의 저녁 아니 밤 일과였다. 그런데 제주도에 온 이후로는 그는 편의점에 가질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편의점이 정말 멀다.
편의점이 너무 멀리 있어!
편의점이 멀어서 못 간다고? 얼마나 멀길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편의점은 걸어서 대략 17~20분이 걸린다. 심지어 이사를 도와주러 온 엄마는 물을 사러 편의점을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잃었다. 그리고 정말 1시간 내내 집을 찾아다니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오셨다.
우리 집은 좋게 말하면 언덕 위,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거의 산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 20분 내외로 걸리는 하나밖에 없는 동네 편의점이 멀다고 말하자면 멀고 가깝다고 말하자면 가까운데 세상에! 여긴 밤이 되면 칠흑같이 깜깜하다. 물론 동네에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어둡고, 차로 다니기에 고불고불한 길이라 걸어가기엔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 그래서 더 가기 어려운 곳이 되는 것 같다. 아마도 남편은 지금쯤 편의점 금단 현상이 걸렸겠지?
집으로 이사온지 10일째. 남편은 오늘 드디어 편의점에 들렸다. 그것도 집 아래 있는 편의점이 아니라 제주시내에 나갔다가 눈에 띈 편의점 (물론 제주시내엔 편의점이 한 집 건너 한 집일 테지만)을 보고는 냉큼 들어갔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느꼈다. 그가 마스크 사이로 보이는 미소 짓는 모습. 그런데 편의점에 들어갔다 온 것은 봤는데 손에 들린 음식이 없어서 무엇을 산지 몰랐는데, 집에 와서 테이블을 보고, 그리고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고 알았다. 말로는 1+1이라고 사 왔다고 하지만 당신은 그저 그 편의점을 갈 수 있게 되어 안정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것.
제주도에 오니 편의시설이 가깝지 않다. 오히려 감귤밭이 더 가깝다. 편의점을 찾으러 가다 보면 길가에 감귤밭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편의점 조차 도보로 15분 넘게 걸리기도 하는 것은 물론 동네에 병원도 하나 없다. 소아과가 아니더라도 내과, 이비인후과는 물론 카페, 음식점도 가깝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당장 편의시설이 멀어진 것을 몸소 체험하니 때로는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쿠팡 이츠도, 배민도 핸드폰에 있던 배달앱을 열어보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도시의 편리함과는 멀리 떨어진 삶. 그게 제주에서 원하던 나의 삶이다. 그러나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하늘과 가깝다. 하늘에 구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 마당으로 나가 잔디 혹은 흙은 밟으며 사는 재미를 알고 난 다음에는 편의점이 더 이상 그립지 않다.
지금도 집으로 고양이가 놀러 왔다. 지나가던 고양이를 불러 간식을 나눠주고, 밖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기도 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움직이는 나무의 잎새를 바라보며 나는 자연과 하나 된 삶을 산다. 나는 오늘 제주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