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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Sep 20. 2023

비워야 할 것이 많아서

무지출과 무사용

계속 가계부를 쓰고 있다. 카드 사용이 그때그때 적히는 가계부 앱도 쓰고, 종이로 된 가계부에 직접 작성하기도 한다. 가계부를 쓰는 이유는 주기적으로 내가 얼마나 소비하고 있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계획 없는 지출은 지양하고 커피를 마시거나 식재료를 사는 것이 대부분의 소비이지만, 가계부는 정확히 나의 소비를 파악할 수 있어 꾸준히 사용 중이다.




최근의 제주의 삶을 보면 기본적으로 무소유, 무지출을 중점으로 두고 있으나 어쩌다 보면 예외의 경우가 생긴다. 서울에 가거나, 여행을 가거나, 백화점을 가면 나도 모르게 지갑이 열리고, 자연스럽게 카드를 내밀고 하는 통에 큰일이다. 얼마 전 브런치 글 댓글에 '그냥 안 사면 되지 뭘 그러냐고' 하던데 내 기준 소비의 영역은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한낱 미물에 불과하니까.



그래서 결국 지난달엔 여행을 갔다가 면세점에서 엄마 선물을, 그리고 지지난달에는 서울의 백화점에 갔다가 그동안 눈여겨본 것이 세일하길래 사버리고 말았다. 결국 이 때문에 두 달 동안의 가계부의 지출 부분이 확 눈에 띄었다.



어쩌면 제주에 사는 삶은 어쩔 수 없이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절로 소비가 줄어드는 곳이었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이곳에 사는 덕분에 충동적이고 무분별한 소비가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요즘 나는 우연한 기회로 무지출 챌린지 중이다. 보통의 나는 일주일에 두 번은 운동하러 갔다가 마트에 들렀다 집에 오고, 보통 이틀 정도는 도서관을 갔다가 커피를 마시고 오고, 주말 중의 하루는 제주의 관광을 즐기는 터라 그래서 거의 매일 외출할 일이 있었다. 매일 외출한다는 의미는 곧 지출이 매일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출했는데 무지출로 집에 돌아온 적은 거의 없다. 밖으로 나가면 뭐 사야 할 것이 생각나고, 그것을 사러 샀다가 다른 것을 보다 보면 함께 구매하게 되고, 하다못해 마트를 가도 여유 시간이 있으면 뭐라도 더 사는 등등등 꼭 소비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계획 있는 소비로 사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지) 역시 이불 밖은 위험했다.



그런데 이번달부터 일주일에 두 번 하는 운동을 동네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운 좋게도 동네 문화센터에서 필라테스를 배우게 되었는데 매트 필라테스라 요가라 비슷할 것 같기도 하지만 조금 다르기도 한 것 같다.



원래 처음에 필라테스 수업이 끝나고는 곧바로 근처 카페로 가서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운동을 하고 나서 바로 커피를 마시러 갔더니 생각보다 집중이 안되고, 배도 많이 고프고, 기운이 달려서 힘들어지고 금방 집에 가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 후로는 운동 후 바로 집으로 돌아와 봤는데, 웬걸 집에서 점심을 먹고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일주일에 두 번은 운동을 하고 바로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동네에서 운동을 하고 곧바로 집에 오니 당연히 지갑을 꺼낼 일도 없고 지출할 일이 없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로 자연스럽게 시작된 무지출 챌린지이다.



그러니까 당분간은 일주일에 화, 목, 토요일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외출하지 않으니 그날만큼은 자연스럽게 무지출이 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무지출을 하는 이유로는 절약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에는 소비 디톡스라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 나의 소비는 반드시 필요해서라기보다 외출해서 밖에 나가면, 가게나 마트에 가면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구매하는 것도 있고, 다양한 물건을 보니 사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출할 경우에는 매번 카페에 간다. 카페에 가서 커피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책도 보고 글도 쓰고 하는데 어쨌든 매번 카페를 가니 당연히 지출이 늘 생길 수밖에 없다. 때론 커피 말고 디저트도 먹어야 하고 그리고 외출을 하는 날은 보통 운동하는 날이니까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날도 꽤 있다. 이러고 보니 외출은 곧 돈을 쓰는 일이 맞긴 하다.



게다가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 가려고 모든 볼일을 보고 남는 시간에는 주로 시간을 때우려고 마트에 가게 되는데,, 그러니까 생기는 문제점은 오늘 특가로 나온 것이나, 내일 먹을 식재료를 미리 사두면서 집에 쌓이는 재료들이 많아졌다. 매일 두 끼를 요리하니 식재료가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다양한 종류가 필요하고,  때마다 잘 비워주긴 하지만 그래도 재료를 추가로 계속 사 오게 되니 종류도, 양도 많아져 남아있는 것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도 생겼기 때문이다.



여러 면에서 외출을 좀 줄이는 것이 맞긴 했다. 밖에서 있는 남는 시간은 아무래도 소비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조건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무지출 챌린지는 좋았으나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외출이 줄어들며 소비는 줄었으나 최근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핸드폰 사용이 많이 늘게 되었다. 평소 외출하는 경우는 밖에 있으니 운동, 카페, 마트 등등의 이유로 핸드폰을 거의 보지 않거나 가방 속에 넣어놓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확실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잉여시간이 많아지고 그 시간에 핸드폰을 더 열심히 보게 되었다. 게다가 유튜브, sns, 넷플릭스 등의 사용도 당연히 늘어나게 되었다.



분명 무지출의 의도는 성공했지만 이제는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한 시점도 함께 왔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과연 이들은 함께 갈 수 없을 것인가?!



무지출과 무사용 

두 가지 모두 나에 더 집중하기 위한 방법임은 틀림없으니 자연스럽게 시작한 무지출 데이처럼

디지털 디톡스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일주일에 하루라도 핸드폰 사용하지 않기가 필요하겠다. 말이 나온 김에 오늘 오후라도 핸드폰 사용을 금지해 볼까? 저녁마다 보곤 했던 넷플릭스도 잠시 멈춰볼까?



그렇게 나 자신을 위한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다양한 생각 중이다. 과연 이 무소비, 무사용 이 두 가지는 공생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나를 채워야 하는 것은 이미 충분하니 비워내야 할 것이 많은 것 같다. 무지출, 무소유, 무사용... 무... 무...



 몸의 살도 덜어내야 하고, 나의 정신도 비워내야 하고, 냉장고도 비워내야 하고... 등등등

암튼 조금씩 덜어내야 하고, 비워야 한다.



여전히 가진 것이 너무 많다.

앞으로는 가진 것을 꽁꽁 붙잡아 놓고 있기보다 조금씩 비워내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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