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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Sep 25. 2023

내가 먹고 있는 것들이 내가 누군지 말해준다면

여름과 가을사이 

아침에 일어났더니 찬 바람에 서늘하다. 분명 얼마 전까지 창문도 열고 문도 활짝 열고 잤는데 이제는 창문을 꼭꼭 닫고 자고 있다. 혹시 몰라 문은 반 정도 열어두고 자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절로 끌어당겨서 덮게 된다. 곧 이불도 교체하고 문도 꼭꼭 닫고 자야 될 것 같다



아침에 걸어서 운동을 가는데 반팔과 긴바지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엊그제 비가 많이 오더니 '이제 진짜 가을이구나' 싶은 날씨가 찾아왔다. 아무래도 곧 긴팔도 입어야 할 것만 같다. 그리고 아침에 뜨끈한 수프와 해장국이라도 넘기고 싶은 것이, 따뜻한 커피와 차가 계속 끌리는 요즘이다.




최근 내가 먹는 음식 재료는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였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말해준다던데 요즘 나의 메뉴는 끝과 끝을 오간다. 아주 건강한 음식이거나 아니면 해로운 음식 둘 중에 하나이다. 적절히 섞어먹을 수 없냐고 생각하지만 건강한 음식에 해로운 음식을 먹는 것보다 따로따로 먹는 것이 각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분 지어먹기 시작했다.








내가 요즘 먹고 있었던 건강한 것들을 소개해야겠다. 최근 여름의 끝무렵에서야 제일 열심히 먹었던 것은 호박잎과 복숭아이다.



여름에 육지에 친정에 갔다가 호박잎을 가져왔다. 엄마가 하나씩 따서 손질해 준 호박잎을 깨끗하게 씻어서 찜기에 올려놓았다. 그 옆엔 할머니에게 받아온 된장으로 만든 된장국을 재빠르게 끓인다. 된장국과 호박잎, 여름 끝무렵 이것에  맛을 들어버렸다.



엄마가 준 호박잎은 진작 다 먹은 지 오래, 그런데 농협 마트에 갔는데 직거래장터로 호박잎이 한가득 팔고 있었다. 봉지마다 가득 담긴 호박잎을 사 오고 다음번엔 플라스틱 통에 담긴 호박잎을 사 와서 쪄먹고 여태 그렇게 계속 호박잎에 빠져있다.



어느 날 호박잎을 먹다가 이런 생각을 해버렸다. 매일같이 호박잎을 사다 먹으며 이렇게 호박잎을 좋아할 줄 알았더라면 '진작 앞마당에 호박을 심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 지나가다 울타리 근처 가득 보이는 호박잎을 보고 호박을 심기만 하면 호박잎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 계속 사 먹고 있는 내가 바보 같았기 때문이다. 진작 생각했더라면 호박잎도 먹고 호박도 따서 먹었을 텐데 너무 아쉬웠다.



어릴 때는 식탁에 호박잎이 그렇게 많아도, 엄마가 끓여준 된장국도 너무 자주 먹는 것 같아 싫었는데 이제 왜 그렇게 자주 올라왔는지 알 것만 같은 마음이다.



아주 재밌게도 우리 딸은 나의 어린 시절과 전혀 다르게 호박잎을 참 좋아한다. 요즘의 우리는 굉장히 기쁜 마음으로 함께 호박잎을 먹고 있다.




호박잎 삼매경





가을이 왔는데도 복숭아와 포도는 마트에 여전히 판매되고 있다. 그리고 나도 여름부터 지금까지 두 과일의 판매가 중지될까 떨면서 열심히 먹고 있다. 매번 내년엔 복숭아와 포도가 나오지 않을 것처럼 먹고 있는데 정말 맛있다. 매일 낮과 밤에 복숭아 한알과 포도 한 송이를 먹다 보면 역시 인생은 먹으려고 태어난 거야 하는 생각까지 할 참이다.







그리고 양배추쌈과 월남쌈롤 그리고 무화과를 열심히 먹고 있다.




양배추의 계절은 대체 언제가 제철일까 싶은데 찾아보니 사시사철 나오는 야채라고 한다. 요즘 양배추를 호박잎처럼 쪄서 쌈을 싸 먹기 시작했는데 양배추는 찌면 달큼하니 더 맛있었다.. 지금보다 더 더웠던 여름엔 양배추를 채로 쳐서 샐러드로 많이 먹었다. 그러고 보니 사시사철 먹기 좋은 채소였다. 게다가 다른 야채에 비해 오래 보관할 수 있어서, 보관이 조금 더 용이해서 더 좋았다.




월남쌈롤은 많은 야채를 한 번에 먹기에 획기적인 재료인 것 같다. 월남쌈 페이퍼에 갖은 야채(주로 샐러드용 여러 종류 야채) 거기에 토마토, 파인애플을 올리면 더 맛있고 고기, 새우등을 넣으면 더 풍요로워진다. 거기에 월남쌈 가게에서 함께 내어놓는 칠리소스만 살짝 뿌려먹으면 이제 더 이상 월남쌈을 사 먹으러 갈 필요가 없어진다.

많은 야채를 한꺼번에 먹을 수 있어서 참 좋다.




나에게 가을이 왔음을 가장 확실히 알려주는 과일은 무화과가 있었다. 동네를 산책하다 보니 무화과나무가 눈에 띄어서 무화과 철이 왔구나 알았다. 그 후 마트에 들른 날 무화과가 보이길래 한 박스를 얼른 사 왔다. 굉장히 잘 익었다. 깨끗하게 씻어 한 입 베어무니 와... 기억난다 이 맛! 역시 가을이 오기가 무섭게 생각나는 맛이다. 이래서 자꾸 챙겨 먹을 수밖에 없다.  




무화과 철이다



평소의 마트에 갔을 때 메인 스폿에 아주 많이 파는 것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그만큼 많이 판매해야 내가 제철이구나 보고 사게 되는 것이다. 요즘의 제주에는 갈치, 한치, 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갈치 가격이 무려 절반이길래 속는 셈 치고 샀더니, 살이 얼마나 실했는지 먹는 내내 입이 즐겁다.  




특히 귤이 제철인 것처럼 가득 쌓여있다. 지나가다 본 귤나무는, 우리 집의 귤은 아직도 초록색인데 이상하다. 아마도 따뜻한 하우스에서 평화롭게 크고 있는 것 다. 귤이 9월부터 제철과일이라고 검색되는 것 보니 신기하긴 하지만(겨울 과일 아니었어?) 어쨌든 제철재료만큼 좋은 것은 없으니 더 많이 먹어둬야겠다.










그러나 내가 매번 제철음식만 먹을 리가 없다. 그 외에 내가 먹은 건강하지 못한 음식으로 불리는 것은 비엔나소시지, 미트볼 3분 요리, 맥주, 짜파게티, 라면 등등이다. 매일 건강한 음식만 먹고 싶지만 아는 맛이 무섭다고 종종 몸에 안 좋은 음식도 찾게 된다.




요즘 식욕이 많이 늘었다. 무려 주 4회 운동을 하고 있는데 살은 빠지지 않고 음식만 더 당기는 것이 아무래도 건강한 돼지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덜 먹어야 하는데 '건강한 돼지!'라니 생각만 해도 쿡쿡 거리며 웃음이 나온다.




내가 먹고 있는 것이 바로 나라면 나는 건강하기도 하고, 건강하지도 못한 딱 그 중간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어디로든 치우칠 생각은 없는 것을 보니 그냥 이렇게 구미에 당기는 음식을 챙겨 먹으며, 먹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맛있는 것이 많다는 생각에 많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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