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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Sep 27. 2023

제주 떠나 어디 살지?

오랜만에 아침에 아이와 함께 걸어서 등교를 했다. 학교와 집의 거리는 어른에게는 괜찮지만 아이가 걷기에 약간 부담되는 거리인데, 그래도 등교는 내리막길이라 훨씬 수월하다. 게다가 오늘은 날씨가 걸어도 될 만큼 선선했다. 등굣길 저 멀리 보이는 바다와 눈앞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작은 풀잎들, 이름 모를 들꽃들과 집마다 달려있는 감, 때로는 무화과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으로 걸어서 올라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영원히 이곳에 산다고 생각했으면 길을 걷다 보이는 이런 사소한 것들이 이렇게나 예뻐 보였을까? 과연 이만큼 소중하게 느껴졌을까?




곧 제주에서의  2주년이 다가온다. 아쉽지만 난 언젠간 이곳을  떠나야 한다.









오늘은 수업이 끝나고 요가 선생님이 물어보셨다(이전에 이야기 나눈 바 있다).


 "그럼 제주는 올해까지만 사는 거예요?"

"아직 모르겠어요~ 언제까지 살게 될지, 아직도 결정을 못했어요"

 "언제 가는 건 상관없는 거예요? 아무 때나 가면 돼요?"

 "네 아무 때나 제가 원할 때 가면 돼요. "




참 좋다 이 자유로움. 언제 어디든 가면 된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살고 싶은 곳으로...

사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야 많지만 앞으로 새로운 곳으로 갈 때마다 아이의 학교가 걸려있으니 이사가 쉽지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내가 이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요즘의 내가 주로 생각하는 것은 '제주를 떠나면 어디에 살아야 하지?' 하는 고민이다. 1순위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 다시 간다고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그 정신없고 복잡한 곳에 내가 과연 다시 가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제주가 조용하고 평화롭기는 했나 보다. 서울로 갈 생각을 하면 답답하다. 꽉 막히고 복잡한 그곳, 모든 편의시설이 다 있지만, 나도 한때 서울을 너무도 좋아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최근에는 그래서 어른들이 나이 들면 시골로 가서 사는 것도 공감하게 되었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아직 벌써 그럴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이러는 내가 너무 웃기다.




과연 나는 어디서 살게 될까?









남자친구(현 남편)와 연애하던 시절에 이천에 함께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천 도자기 축제가 한창이었다.  우리가 직접 그릇과 컵을 만들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것은 너무 어려워서 각각 그릇에 그림을 그렸다.  나중에 그 도자기를 구워 한 달 후쯤 집으로 보내주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컵과 그릇에 그림을 그리고 남자친구는 그릇에 그림을 그렸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남자친구와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을 그렸고(거의 초등 수준의) 그는 그릇에 나중에 우리가 함께 살 이층 집을 그렸다. 남편, 아내, 아이 한 명 그리고 차는 두대가 주차되어 있는 그림이었다.





남편이 도자기 위에 그린 미래의 우리 모습




그 후엔 이 그릇을 잊고 지내다, 어느 날 우연히 이 그릇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 그림을 그린 후로부터 10년 정도 지난 후... 그 그림과 우리의 삶은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달랐을까?



일단 현재 우리는 제주의 2층집에 살고 있다.  남편은 어쩜 아이를 딱 하나만 낳을 줄 알았나(나는 원래 3명은 낳고 싶었는데) 그리고 아직 차 한 대가 부족하지만 얼추 비슷하다(이 정도면 비슷하다고 해주자) 그림 속의 파란 하늘처럼 날씨도 좋고, 정원도 있는 집의 풍경이 마치 제주도 집과도 비슷하다.



그림 속 우리의 삶은 마치 그림 속 장면과 똑같았다.



당연히 10년 후의 모습을 완벽히 예상하고 그린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우리가 바라던 미래의 모습에 얼추 비슷한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이 그림을 보며 느낀 것은 앞으로 우리 가족이 바라는 바가 있어 그 꿈을 꾸고 살다 보면 결국 그것과 근접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런 생각이 든  이후에 나는 다시 내 마음속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현재 제주에서의 삶 그리고 그다음의 삶을 열심히 그려보고 있다.  어느 날 또 우리가 원하던 그림처럼 살고 있는 모습을 기대하며 말이다.









열흘 후면 이 집에 산지 2년이 되는 날이다. 솔직히 2년이나 살게 될 줄 몰랐다. 그러나 지금도 계속 살고 있고 앞으로도 좀 더 살게 될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제주를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는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결론을 낼 수는 없다.



그러나 결국 언젠가 우리는 마음속에 새롭게 그린 그림처럼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런 희망을 가지고 지금은 제주에서의 삶을 잘 만끽하는 것이 좋겠다. 아직은 이곳에서의 삶이 좋으니 지금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즐겁게 지내다 보면 저절로 다음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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