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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Oct 05. 2023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을 일

추석연휴의 악몽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 출근길의 사고였다. 그 당시 나에게 생긴 차는 빨간색 프라이드였다. 엄마가 타던 차를 넘겨받았고  이제 막 사회인이 된 나는 차까지 생겼다는 그 뿌듯함이 참 좋았다. 출근길은 지하철로는 30분 정도였는데 (지하철+ 버스), 되려 자동차를 타고 다니니 출근시간에 막히면 한 시간이 넘게 되기도 했지만 참 즐거웠다.



그날은 퇴근 후에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 나의 자동차를 타고 저 멀리 북촌에 놀러 가려고 하던 날이었다. 그게 이유였을까? 아님 아침에 수영을 배우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날따라 빨리 출근해서였을까. 아무튼 꽤 이른 시간 출근을 하던 길이었다.



출근을 하던 길, 중간지점인 남부터미널에 다 달았을 즈음 차선을 변경하고 싶었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곳에 차가 거의 없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차선을 변경하다가 앞에 서있던 차를 박고 말았다. 얼마나 세게 박았는지 내차는 프라이드 그 차는 아반떼, 소나타 정도였는데 내 차가 반쯤 찌그러진 상태였다.



문제는 나는 에어백이 터지지 않아 핸들에 얼굴을 박았고 순간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내가 100% 과실이었으니 사고를 냈다는 죄책감. 그리고 자동차를 박았을 때의 큰 충격감으로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것에 늘 두려움이 있었다.   








그 후로는 운전을 많이 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차가 부딪힐 때의 충격이라던지, 차의 부서진 정도라던지 그런 것들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그 순간이 떠오르는 것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서울에 살 때는 운전을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주차문제 때문이라도 그렇고 딱히 아이와 가는 곳이 많지 않았고, 필요시에는 남편이 운전하면 되었다. 나머지는 대중교통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그냥 이용하면 훨씬 더 편리했다.



자동차가 있어도 그렇게 잘 타고 다니지 않아 자동차가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있기도 하고, 친정에도 자주 갔으니 필요한 경우는 있어서 그래도 늘 자동차를 소지하고 있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제주에 오면서였다. 매일매일 운전을 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약간 도심에서 비켜난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동차가 없었더라면 버스를 타고 지낼 수도 있었겠지만 제주 전 지역을 다니려면 제주에서는 자동차는 필수이다. 괜히 렌터카 회사가 그렇게 많이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제 자동차 한 대로도 불편하고 남편과 나 각각의 자동차가 있으면 좋겠을 지경이다(실제로 이 동네엔 부부, 자식 각각 모두 차를 소유 중이다).




제주에 산지 어언 2년, 그래도 그동안 별일 없지 잘 지냈다.








길고 긴 연휴의 끝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추석연휴를 맞아 부모님이 오셨고 휴지기를 마친 용눈이 오름에 함께 다녀왔다. 그리고 그 근처 좌에 있는 카페에 들러 커피와 빵을 먹고 함덕으로 가는 일정을 계획했다. 용눈이 오름은 잘 다녀왔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근처 좌에 있는 카페에 갔다. 그런데 카페가 문을 닫았다. 그 유명한 카페가 문을 닫았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마침 노키즈존도 풀렸던 카페라 꼭 함께 가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근처 다른 카페는 마땅히 빵과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없어 할 수 없이 우린 조금 더 빨리 함덕으로 가기로 했다. 마침 함덕에 유명한 빵집이 있어서 그곳에서 간식을 먹고 함덕을 구경하면 될 듯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함덕으로 향하는 길은 구부렁구부렁 좀 그랬지만 무사히 도착했다. 빵집에 도착해서 어른들과 아이를 내려주고 나는 주차를 하러 갈 참이었다. 그때 차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흔들렸다. 그 순간 몸과 함께 머리가 앞뒤로 흔들렸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잠시 정차 중 뒤에 차가 와서 박은 것이다. 곧이어 운전자가 와서 하는 말이 죄송하단다. 사고를 누가 많이 내봤겠느냐 가해자도 피해자도 우왕좌왕하는 상황이었다. 정신 차리고 있던 어른들의 도움으로 보험회사에 연락을 했고 곧이어 사고처리 수습해 주러 오셨다.





뒷 차가 와서 박은 상황, 100% 가해자 과실




사건 당일에는 머리가 아프고 목이 아팠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허리였다. 허리가 점점 아파왔다. 어제 엑스레이를 찍을 때만 해도 그냥 아픈 정도였는데 물리치료받고 잠시 호전된 듯 보였다. 그러나 어제저녁 자는데 한쪽 허리가 욱신거려서 잠을 자는데 불편할 정도였다. 찜질팩이라도 올려야 할까 진통제라도 먹어야 할까 저절로 고민되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의자에 앉아있으면 허리가 아파서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한다. 어서 빨리 물리치료를 하러 다녀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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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 그러면 가족들과의 원래대로 진행되었을 것이고, 그 와중에 병원도 가지 않아도 되었고, 차량도 카센터에 맡기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무엇보다 멀쩡했던 허리가 이렇게 아픈 것을 보면 경미한 사고인 것 같아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내 몸은 이전과 같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 당분간은 매일 병원을 가서 치료받아야 한다는 것이 정말 매우 귀찮다.




가해자는 추석 연휴에 친구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와서 렌터카를 빌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운전 중에 서있던 차를 와서 그대로 박은 상황. 운전 중에 옆에 건물을 보느라 앞에 있던 차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나마 솔직히 말해줘서 다행이랄까. 그러니까 나는 명백한 피해자인 것이다. 100% 가해자 과실. 밉다 가해자...



몸이 아프다. 어젯밤엔 욱신거리는 허리 때문에 잠들기가 불편했고 오늘밤 내 몸은 괜찮을지 걱정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당장 어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봐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자면 그래도 교통사고를, 자동차 사고를 꽤 귀찮고 짜증 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 본다. 어쩌면 한순간으로 나는 이미 저 제상에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이만하길 다행이지 뭐야. 그렇지?



어쩌면 내가 15년 전에 했던 100% 가해자의 상황을 시간이 이만큼 흐른 후에 똑같이 받는 벌인 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15년 정도를 자동차 사고 없이 잘 지냈다는 것에 대해 더욱 큰 의의를 두기로 한다. 이번 사고로 액땜했다 생각하고 큰 사고 없이 앞으로도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이만하길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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