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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Oct 20. 2023

용돈을 받을 때마다 효도와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어제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말씀하셨다. "아이 용돈을 덜 주고 와서 좀 그렇네. 더 주고 올걸 그랬어"라고 하셨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신 이후로 내내 마음을 쓰였던 것 같았다. 이미 아이에게 용돈을 10만 원 주고, 나에게도 어쩌다 보니 10만 원이라는 돈을 통장으로 보내주셨는데 그런 말씀을 하셔서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20만 원이라는 돈이 어마어마한 숫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아이 용돈으로 적은 돈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함께 오신 이모도 아이에게 용돈을 넉넉하게 주고 가셨기 때문에,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돈들은 다 나에게 왔기 때문에 꽤 쏠쏠한 용돈을 받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그 말씀을 하신 것은 조카들 두 명에게 준 것과 우리 아이에게 준 용돈의 액수가 차이가 났기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게다가 그 며칠 전엔 시부모님이 오셨다 가셨다. 마지막날 아버님을 공항으로 모셔다 드리는 길에 제주 여행에 쓰고 남은 돈이라고 봉투를 건네주셨다. "아버님 무슨 돈이에요~" 하고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얼마 되지도 않는다며  그냥 넣어두라고 했다. 나중에 봉투를 열어보니 정말 여행하고 남은 돈임이 느껴지는 액수가 맞긴 했지만 결코 적지 않은 돈이 들어있었다.




그렇게 2주 간격으로 용돈을 받다 보니, 이 나이에 아직도 부모님들께 용돈을 받아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양가 부모님들은 '내가 미니멀 리스트를 지향하며, 물건을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아시는 것 같다. 지난 수년간 절대 아이 선물도, 우리 집에 오실 때는 그 어느 것도 사 오지 못하게 누누이 말씀드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물대신 용돈으로 주시는 것 같기도 하다.








30대 후반 이 나이에 용돈을 받고 산다. 이 말을 쓰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물론 보통은 우리 나이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용돈을 받는다, 물론 때때로 자식들도 부모에게 용돈을 받기도 한다. 그건 각자의 집안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부모님께 드린 적은 별로 없고 받는 빈도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다. 특히 요즘엔 우리가 받기보다 아이가 용돈을 받는다. 그러나 결국 그 용돈은 부모인 우리에게 들어오기 때문에 결국 나의 용돈인 셈이다. 그래도 아이가 용돈을 받을 때는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나도 어릴 때는 어른들께 많은 용돈을 받았었으니까.



그러나 어른인 나에게 용돈을 주실 때마다 효도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이만큼의 용돈을 부모님께 드릴 수가 없는데(아직 드릴 마음이 없는데) 계속 받기만 하다 보니 마음이 점점 무거워져 오기 때문이다.



마음은 어릴 때 그대로인데,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게다가 용돈까지 받고 있는 것도 정말로 편치 않다. 부모님께 우리가 효도해야 할 나이임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용돈을 못 드리면 전쟁이라도 나가던지...

 








그동안 해외에 산다는 이유로, 외벌이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많은 돈을 써야 한다는 이유로 넉넉한 용돈을 드리고 못하고 지냈다. 엄친딸, 엄친아들은 부모님 여행을 해외로 보내드리기도 하고, 때마다 값비싼 선물을 사드리기도 한다. 드물긴 하지만 지인만 해도 부모님께 자동차를 선물하기도 했고 연예인들만 봐도 부모님께 집도 사드리지 않는가!



물론 우리도 때때로 생신선물, 잔치, 여행, 안마기 그리고 소박한 선물들사드리고는 다. 그러나 그 빈도수가 많지는 않다. 물론 이 빈도수조차 다른 누군가들과 비교한 것이라 어쩌면 우리 수준에서는 부족한 듯 적당한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나라고 어느 엄친딸처럼 통 크게 효도하고 싶은 욕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 살기도 팍팍하니까 그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엄마는 그 옛날 시집오기 전에 이미 많은 돈을 벌고 모아 친정에 주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보태드리기는커녕 여태껏 받기만 한다. 게다가 내리사랑이다. 우리가 받는 만큼 어른들에게 해드릴 것 같지만 결국 우리가 버는 돈, 모으는 돈은 모두 아이에게 먼저 간다.  결정적으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충분치 않기 때문에  아직 부모님께 원하는 것을 다 해드릴 수가 없다.



내가 돈을 벌면 괜찮아질까? 외벌이에서 벗어나면 조금 넉넉하게 효도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한다. 







용돈을 받고 효도에서 멀어지는 생각을 하다가 직접적으로 부모님께 물어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부모님이 진짜 원하는 효도는 무엇일까?



용돈을 덜 주고 와서 미안해하는 엄마에게 가장 먼저 물어봤다. "부모님이 하는 말 잘 들어주고 , 연락도 가끔 하고, 건강하고, 무엇보다 자식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시부모님께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너무 뻔한 대답이 나올 것이라 대신 이모에게 물어봤다. " 지금은 아이들이 다 컸으니 직장생활 잘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엄마와 이모의 말에 철저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겨우 부모가 된 지 몇 년 차 되지 않은 내 입장에서 봐서도 아이가 나에게 용돈을 주고, 여행을 보내드리고 선물을 사주는 것도(당연히) 좋겠지만 그것보다 가끔 얼굴 보고, 자주 안부를 물어봐주고, 무엇보다 아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우선일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좀 덜 죄책감을 갖기로 했다. 이번에 받은 용돈으로 자동차의 기름을 넣었고, 우리 가족이 먹을 식재료를 구매했으며, 오랜만에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었다. 어쩌면 부모님들이 주고 가신 용돈은 제주에 사는 우리에게 주는 최소한의 선물인 것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도 잘 살아야겠다 싶어졌다. 재밌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다짐했다. 그럼 그렇게라도 부모님에게 효도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 나도 엄친딸, 엄친아처럼 물질적으로도 넉넉한 효도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간직했다가, 언젠가 해드릴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 왠지 이 글의 댓글이 예상이 된다.

'살아계실 때 효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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