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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Nov 01. 2023

나의 소울푸드였네, 청국장

요즘의 나는 기운이 없다. 가뜩이나 되는 일이 없는 시기인데 심지어 풀리지 않는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한숨 쉬는 날들이 많아졌고, 무엇을 하고 싶은 욕구도 생기지 않았고, 덕분에 요리는커녕 집은 점점 지저분해져 갔다. 저녁에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땅속으로 푹 잠기는 기분이었다. 이런 날들이 지속되다 보니 이러다 정말 큰일 날 것만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이럴 때일수록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을 조금이라도 잘 이겨내기 위해서이다. 실은 요리하는 것을 그렇게 즐기지는 않는데, 요즘엔 집밥을 만드는 것이 너무도 익숙해져서 이제는 뭐든 착착 만들게 된다. 오늘은 우리가 무엇을 함께 먹으면 맛있을까? 혼자 저녁메뉴를 한참 고민하다가 아이와 상의한 끝에 오랜만에 청국장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우리 집 청국장 끓이는 법

1. 고기와 김치를 볶다가 육수를 넣고 끓인다.
 2. 끓는 냄비에 감자, 호박, 양파, 버섯, 마늘 등을 넣고 끓인다.
3. 마지막으로 청국장을 넣는다.
4. 취향에 따라 집된장이나 고춧가루를 넣으면 좋다.
5. 마지막으로 두부와 파를 조금 넣고 한소끔 끓인다.





청국장을 만드는 순서를 구분해서 써놓았으나 그냥 모든 재료를 넣고 한 번에 끓여도 될 만큼 간단하다. 중요한 포인트는 콩의 영양가를 살려주기 위해서 청국장을 마지막에 넣어주는 것이다. 이제 주부 10년 차가 되니 된장찌개는 눈감고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나의 요리 솜씨는 마법과도 같아서 대충 만들어도 맛있게 만들어지는 신비함이 있다. 물론 우리 가족밖에 맛을 본 적이 없어서 모두에게 진짜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된장국이나 청국장이나 끓이는 방법은 거의 똑같은데 된장국과 달리 청국장은 못 먹으면 어떻게 될 것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든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자, "엄마, 청국장 냄새가 나요" 하면서 아이가 뛰어온다. 코를 킁킁 거리며 빨리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서둘러 요리를 마무리했다.  엄마 입맛을 너무도 닮아 김치를 사랑하고, 청국장을 먹고, 낫또마저 좋아하는 그런 아이가 우리 집에 산다. 호박이 조금 덜 익은 느낌이 아쉽지만 아이는 그마저도 맛있다고 호로록 쉴 새 없이 먹고 있다. 음식에는 늘 조급해하지 않는 남편도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먹는다. 아마도 자주 먹는 청국장이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나는 매일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다른 가족이 원치 않는다).

 



일평생 엄마가 해주는 청국장을 먹고살았다. 어릴 때부터 줄곧 먹어오던 그 음식, 아마 그 청국장은 외할머니가 직접 만드신 것이 분명하다. 예전에는 된장을 띄운다고 했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 가면 사랑방에 메주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워낙 냄새가 강렬하니까 방 문을 열기도 전에 그 냄새가 퍼져 나온다. 마치 할머니 집이 온통 된장 띄우는 가게가 된 것만 같았다. 어릴 때는 그 냄새가 지독했는데 지금은 그 냄새가 그립다.









그 어느 때보다 그 음식이 그리웠던 것은 남편과 미국에서 신혼생활을 할 때였다. 그전에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는 적응하기가 무섭게 한국에 갔어야 하니까, 그렇게 맛있는 음식들을 한국에 두고도 딱히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 내가 살림을 미국에서 시작해야 했을 때는 완전히 다른 삶이었다.  천만 다행히 한국 마트가 있어서 다양한 한국 식재료 사는 것에도 문제가 없고, 우리 동네 큰 도로만 가도 한국 음식점이 쭈욱 깔려있으니까 괜찮았다. 그러나 이렇게 청국장처럼 심하게 냄새가 나는 것을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도 없었고, 그때는 어떠한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도 그렇게 맛있는 맛이 나지 않았던 초보 시절이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특히 멀리 여행만 다녀오면 다녀온 직후에 한국 음식이 그렇게도 당겼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한식 맛집이 있었는데 그곳의 청국장이 기가 막혔다. 우린 그곳을 갈 때마가 만세를 불렀다. 청국장과 감자탕을 하나씩 주문해서 먹으면 여행 피로가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확실한 고향의 소울푸드였다.



추억의 청국장





보기에 평범했던 이 청국장은 수년 전 하나에 13.95$ 그러니까 14불 정도에 세금, 팁까지 18불 정도 한화로 2만 원 가까이 정도 줘야 먹을 수 있던 고급 음식이었다. 그때 당시 한국에서 먹는 청국장은 비싸봤자 5천 원~7천 원 내외가 아니었을까. 한국에서는 늘 먹어왔던 평범한 맛이었지만 그곳에선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몇 달에 한 번씩 한참을 먹고 싶은 날을 참았다가 한 번씩 다녀오곤 했으니 말이다.  




최근에는 할머니 집에서 공수된 청국장을 먹은 기억이 없다. 그러나 여전히 할머니가 띄운 된장은

아직도 먹을 수 있다. 청국장과 된장 그것이 뭐 그렇게 다르냐만은 엄연히 다른 맛이지만 할머니의 된장이라도 여태 먹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요즘은 할머니가 띄우신 장으로 엄마가 만들어준 된장국이 먹고 싶은 나날들이다. 그러나 현실은 불가능하니 내가 만든 청국장이라도 열심히 먹어보고 힘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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