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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Nov 29. 2023

열흘간의 금주 끝에 깨달은 것

작년 건강검진을 받을 때였다. 그곳에 얼마나 자주 술을 마시는지, 어떤 술을 마시는지 체크하는 칸이 있었다.  빠르게 체크하려다 순간 흠칫했다. 그때는 일주일에 3번(평일 1, 주말 2) 정도 술을 마시던 때라... 주 1~2회가 아니라 3~4회에 체크해야 하는데 주 3일이면 적어도 12일, 그러니까 한 달의 1/3 정도를 음주 중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많이 마시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었다.



그래도 조금 위로가 되었던 것은 얼마 전 본 유튜브 채널 '짠한형'에서 신동엽 씨는 술을 안 마시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물론 일반인인 내가 그에 비할 건 아니었지만 내가 마시는 횟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특히 한번 마실 때 맥주 한 캔 정도, 와인 한두 잔 정도니 이 정도는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라도 정신을 차렸어야 는데...








며칠 전 아이가 장난감에 있었던 소꿉놀이 세트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중에 미니어처 와인병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와인병과 컵을 가져와서 나에게 따라주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선 " 엄마 맛있게 드세요" 하는 것이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물었다. "너 이게 뭔지 알아?" "네 술이요~" 그 순간 나는 우리 집 술꾼이 된 기분이 들고 말았다.



평소의 우리 부부는 아이 앞에서 술 마실 일이 거의 없었다. 원래 식사를 하며 마시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주로 아이가 재운 다음 늦은 밤에 만나 한잔씩 기울이곤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저녁에 치킨을 주문했을 ,  밥 대신 다른 것과 와인 한잔 하는 일이 평소보다 자주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특히 며칠 전 내가 아이 앞에서 와인 한 병을 '뻥' 소리를 내며 열었는데, 그게 인상적이었나 보다. 심지어 그 와인은 거의 몇 달 만에 사본 와인이었다. 와인을 너무 마신 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랜만에 마신 건데, 하필 아이가 나에게 와서 "엄마 포도주 드세요~" 할 건 뭐람...



결국 '내가 요즘 그렇게 술을 자주 마셨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아이 앞에서 자제하지 못했나 라는 죄책감도 들었고 말이다.






내가 어릴 적 아빠는 술을 정말 자주 드셨다. 어릴 때는 그래도 일찍 귀가하셨던 것 같은데 우리가 중, 고등학생쯤 되니 정말 자주 드시고 오셨다. 우리 아빠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른 아빠들도 술을 참 좋아하셨다. 그나마 엄마가 술을 못 드셨는데, 엄마가 술 마시는 것을 보는 것은 일 년에 한 번도 되지 않았다.



암튼 그때의 기억은 그렇게 좋은 기억이 아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보니 아빠가 왜 그렇게 자주 술을 드셨는지 알 것만 같다. 결코 이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밖에 다.



나도 어느덧 성인이 되어 술을 마시게 되었다. 사실 대학생 때는 술을 잘 마시지 못했으나 되려 결혼하고 나서 남편과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조금씩 늘게 된 것 같다. 게다가 육아하며 자주 그 고됨을 술로 풀었더니 마시는 빈도수가 더 늘은 것 같다.



주말이라 마시고, 금요일이라 마시고, 치킨을 먹는다고 마신다. 그나마 맥주 한 캔 정도만 마시는 정도니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와인을 사게 되면 병은 큰데, 매일 한잔씩 밖에 못 마시니 그것을 모두 비우려면 며칠을 연이어 마시게 되는 것이다. 남편이 와인을 마신다면 좋았을 텐데 전혀 같이 마실 수 없으니 더욱이 그랬다. 결국 아이에게 그런 영향을 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반강제적으로 금주를 해야 할 일이 생겨버렸다. 얼마 전 피부과 진료를 받았다. 처음엔 한 스폿이 간지러워 긁었는데, 어느새 그 주위로도 간지러워졌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했는데 간지러운 것이 나아지지 않아 피부과를 다녀왔다(빈대는 아닙니다).



그래서 항생제와 바르는 약을 처방받았다. 앞으로 열흘동안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술은 금지였다. 그렇게 강제적으로 열흘간의 금주가 시작되었다.



술을 열흘이나 먹지 않은  적이 있던가?



처음엔 괜찮았다. 평일엔 원래 잘 안 먹고는 했으니까. 그러나 주말이 되며 순간 이 정도면 조금 심각하다 생각했다. 겨우 열흘인데 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다고?








그렇게 열흘이 지났다. 길고 긴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내 몸이 해독이 되었는지 겨우 맥주 한 병을 마셨는데 온몸이 새빨갛고(원래 술 먹으면 빨개지는데 유난히 더 심하다) 속이 좋지 않았다. 마치 소주를 3~4잔쯤 먹었을 때의 반응과 같았다.'으~ 맛없어!' 그렇게 오랜 시간(!?)을 참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먹었는데  그 맛있던 술이 별로로 느껴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잠시 정신이 아늑해졌지만 후에는 되려 정신이 들었다. 앞으로는 술 마시는 횟수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마셨는데 그렇게 맛있지도 않네' 솔직히 그동안 습관처럼 찾아  마시고는 했지만 결코 지금처럼 자주 많이 먹어서 득이 될 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주 마시지도 않는데 아이에게 그런 오해 아닌 오해도 받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뭐든 적당히가 좋은 것일 테니 한 달에 열흘이던 음주를 일주일 정도로 그러니까 주 1~2회 정도로 줄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술을 당장 끊을 수는 없겠지만(그럴 필요도 없고) 이 정도 노력을 해보는 것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열흘간의 음주는 오히려 효과적이었던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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