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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Nov 27. 2023

중고거래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집에 있는 물건을 호시탐탐 노려가며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사진 찍어가며 중고거래를 할 때가 있었다. 분명 봄까지만 해도 중고물품 판매와 나눔에 열심이었다. 집안에 있는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희열을 느꼈다. 이왕 정리하는 것 돈도 벌 수 있으니 내가 조금만 수고하면 이득이라고 생각했다(물론 산 가격을 생각하면 마음 아프다). 그리고 물건이 그냥 버려져서 쓰레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가서 한번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으니, 환경까지 생각할 수 있어 더욱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름에 잠시 방학을 맞이하며 오랫동안 육지에 다녀오고 그 이후로 올해 7, 8, 9월은 지난달 갑자기 꽂혀 소장만 하던 바지와 오래 전시되어 있던 원피스를 즉흥적으로 판매한 게 전부이다. 이전에는 저녁에 아이를 재운 후 집안을 돌아다니며 정리할 물건을 쓰레기통에 담거나, 당근 할 물건을 골라 모아두기도 했는데 요즘은 왜 그런지 꼼짝도 하기가 싫다. 최근에 쇼핑을 하지 않아서 비울 것이 없던 걸까?




예전 같으면 물품을 판매를 해서 아주 소소한 돈을 벌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나눔 하는 과정을 통해 기쁨을 느꼈는데 이제는 다 부질없이 느껴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 중고거래가 귀찮다는 의미는 집안 정리가 하고 싶지 않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결국 집안의 물건이 주기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다 보니 조금만 청소를 게을리해도 집안이  더 난리긴 하다. 물론 최근에도 새로 산 물건이 거의 없는데, 왜 늘 집에는 물건이 넘치는지 모르겠다. 특히 거실 테이블 가득 쌓여있는 물건을 보다 보면 싸악 쓸어서 쓰레기통에 담고 싶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지난봄에 친구 아이에게 물려줄 옷과 책, 장난감을 두 박스나 보냈었다. 생각해 보니 그래서 중고거래할 물건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온 김에 아이 겨울 옷과 장난감등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음 주에 옷이랑 장난감이랑 교구 좀 정리해서 보낼게" 그렇게 매일 집안 물건을 정리하길 귀찮아했지만 이미 친구에게 말을 꺼냈으니 빨리 보내야 했다.




원래는 물건을 선별해서 판매할 것과 나눔 할 것 그리고  친구에게 보낼 것을 분리하는 편이다. 제주가 워낙 먼 거리라 육지까지 모든 물건을 보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그렇게 구분하지 않고 한 상자에 모두 담아서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분리수거및 쓰레기통에 버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상자에 열심히 물건을 담다 생각했다. '내가 왜 요새 당근을 안 하기 시작했지? ' 그러다 문득 중고 거래를 하다 생겼던 여러 사건들이 생각났다. 그중에 마지막으로 겪었던 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었다. '내가 다신 그 꼴 보기 싫어 중고거래 하지 말아야지!'



가장 마지막으로 겪은 사건은 이러했다.




아이가 신던 신발이 있었다. 제주에 와서는 신을 일이 없어서 거의 새것이었다. 부피가 크고 무거워 물려줄 시기를 놓쳐 친구에게 보내주지 못하고 여태 가지고 있던 신발이었다. 계속 신발장에 있었던 터라 정리하게 되었다. 사진도 잘 찍었고, 상태가 꽤나 좋았던 터라 판매글을 올리자마자 금방 판매가 되었다. 다음날 거래하러 나갔다. 본인 시간이 이리 저러해서 도착시간이 변경될 것 같다고 해서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기다렸다. 뒤늦게 도착한 구매자는 신발을 보고 구매해도 되겠냐 물었다. 안된다고 할 수가 없어서 알겠다고 했는데 기분이 싸했다. 물건보고 딱 안 살 것 같은 느낌.  신발을 꺼내 찍찍이를 붙였다 뗐다 여러 번 확인했다. 그것도 그런가 보다 했다. 불이 들어오는 신발이었는데 길가에서 계속 불이 들어오나 안 오나 신발을 쾅쾅 치며 확인하더니 "아이가 불이 번쩍 거리는 화려한 신발을 원하는데 이것은 그렇지 않네요."라고 말하고 구매하지 않겠다 배짱을 부렸다. 불이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안 사겠다고 하는 상황이 황당했던 나는 "여기까지 왔는데 안 사신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끝까지 안 사겠다고 버티던 구매자와는 결국 서로에게 얼굴을 붉히는 이야기가 오갔다.  게다가 끝까지 당근 톡으로 욕을 먹고 차단을 당했다.



이 짓을 하려고 내가 중고거래를 시작했나?




그동안 많은 중고거래를 하고, 많은 거래파기도 당해봤지만 물건을 직접 만져보고 사지 않은 사람은 처음이다. 내가 중고거래를 하러 나간 것이지 신발 판매점은 아니지 않나?








2020년 코로나시기부터 거의 3년을 중고마켓을 활발하게 이용했다. 특히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 시기에는 정말 유용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한 수난은 중고거래를 하며 겪은 일 중에 겨우 하나 일 뿐이다.  그 밖에도 억울하고 짜증 났던 일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한창 심했을 때는 오죽하면 당근진상들 글을 엮은 글만 발간해 볼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인터넷 카페에 수없이 올라오던 중고거래 후기에는 나도 겪어본 일들도 많이 있었다. 구매자들은 생각보다 경우 없었고, 예의가 없었고, 비매너가 많았다. 그래도 그동안 판매나 나눔 했던 횟수에 비해서 엄청나게 큰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는데 자잘한 횟수가 더해가니 더 이상 중고거래가 피곤해졌다.



'오늘 구매자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거래시간에  늦는 것은 기본이다' '갑자기 연락두절될 수도 있다' '산다고 말하고 답장 안 하는 것은 수십 번 당했다, ' '트집 잡혀 환불을 해줘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마지막 사건을 계기로 "물건을 판매하러 갔다가 물건이 손을 타고, 욕을 먹을 수도 있다" 등이 추가되었다.



물론 중고거래하며 따뜻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런데 그 좋은 기억은 손꼽힐 정도이고, 이렇게 나쁜 기억이 점점 쌓이게 되니 정신적인 타격이 커졌다. 안 그래도 작은 일에 크게 스트레스받는 성격인데, 지금 내가 이 돈 벌자고 이런 스트레스까지 받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니 내가 다시 중고거래를 하고 싶겠어???








집 근처 가까이에서 쉽게 판매할 수 있는 중고거래 플랫폼이 생기면서 집 안의 물건의 정리가 쉬워졌다. 그러나 쉽다고 생각한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었다.  거래할 물건을 모으고, 사진 찍고, 판매하고 나눔 하는 것까지의 모든 과정을 생각한다면 결코 정리가 쉽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리는 곧 쓰레기통에 직접 버리는 것이다'라는 것이 기본값이 되어야 정리가 쉬울지도.



이제 더 이상 중고거래 하지 않을 생각 하니 홀가분하다. 이미 지난 몇 달 동안 그것에 신경 쓰지 않아 보니 몸도 편한 걸 느꼈다. 물건을 일일이 구분하고 살펴보고, 사진 찍고, 글 작성하고, 일일이 만날 시간을 잡거나, 반값택배포장도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도 없으니 진작 중고거래에서 벗어날 것 그랬다는 마음이 든다.



그동안 중고거래로 번 돈을 생각하면 그냥 더 이상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더 남는 장사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내가 했던 중고거래 내역을 쭉 되돌아본다. 나에겐 왜 그렇게 많은 물건들이 있던 것일까. 과연 내가 구매해서 혹은 나눔 받아서 잘 사용한 물건일까? 그만큼의 값어치를 한 후에 정리를 한 물건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 물건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 글을 마지막으로 중고거래 앱을 삭제했다.

 정신이 바짝 든다. 더 이상 물건이 늘어나서, 정리할 것이 많아 다시 찾게 되는 일이 없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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