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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Nov 21. 2023

쇼핑이 쇼핑을 부르는 마법


요즘 매일같이 같은 바지를 입는다. 지난번 교통사고 이후로 아직도 허리에 물리치료와 침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는데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으려면 허리 부분이 잘 내려가 치료에 용이한 바지를 입어야 했다.  



내가 평소에 입는 패션은 주로 80%가 원피스 그리고 청바지가 몇 개 있는데 그러니까 치료를 받을 때에는 원피스도 청바지를 입을 수 없었다. 치료를 받드려고 엎드려 누워서 바지를 살짝 내려야 하는데, 청바지는 지퍼를 내려야 하니까 앞쪽도 내려가고 암튼... 입으나 마나인 것이다.



그러면 내가 병원에 다닐 때 입을 수 있는 바지는 딱 하나였다. 그 바지는 허리를 끈으로 묶어 입는 편한 바지이다. 병원에 누웠을 때 살짝 끈만 느슨하게 해도 바지를 살짝 내릴 수 있어서 누워서 허리치료를 받기에 딱 좋았다.



그래서 한 달 반정도를 내내 그 바지를 입었다. 그 바지를 입지 않는 날은 아주 가끔 원피스를 입고 나가는 날이었는데 병원에 가면 제공된 옷과 바지로 갈아입어야 했기 때문에 몇 번 경험하고는 그냥 다시 그 바지를 입고 나가게 된다. 한 달 반정도 똑같은 바지를 입다 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자연스럽게 그 바지로 손이 가게 된다.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라면 바지 하나로 일 년 내내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 같은 초짜 미니멀리스크는 한 달 반정도를 같은 바지를 입다 보면 어느새 현타가 오게 된다. 이제 바지를 하나 사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을 절로 하게 되는 것이다. 세탁을 매일 하지 않았지만 꽤나 자주 했더니 바지를 낡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같은 바지를 입고(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병원에 가는 것도 조금 망설여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바지도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지난겨울에 뭘 입고 다녔나 싶지만 겨울에 입을 만한 조금 도톰하고, 기모가 들어간 , 따뜻하고 편한 그런 바지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역시 나의 쇼핑 욕구는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지를 한번 보러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서는 쇼핑할 곳이 마땅치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제주 시내로 나갔다. 그리고 옷 매장에 들어갔다. 한 바퀴 둘러보며 어떤 옷을 입으면 좋을까 생각해 봤다. 일단 바지가 필요하니 바지. 위주로 둘러봤다. 청바지, 면바지, 고무줄 바지(?) 등등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계절에 맞는 여러 가지 니트들이 눈에 띄었다. 청바지 2개와 면바지 1개를 고르고 그 위에 어울릴만한 니트를 2개 골라 탈의실에 들어갔다.




청바지 2개 중에 한 개는 맘핏이었고 한 개는 와이드핏이었다. 그리고 면바지 한 개는 아이보리 컬러에 스트레이트 핏이었다. 이곳에서 겨우 세 가지를 골랐을 뿐인데 모두 다른 모양새의 바지라는 것이 신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지를 구매한 지  오래되었던 것이다(마지막 바지 구매 3년 전) 특히나 나는 키가 작고 하체에 살이 몰려있는 스타일이라 절대 바지를 인터넷으로는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에 직접 입고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울 것이라 예상했다.



여러 번 입어보고 난 후에야 청바지 2개 중에 와이드핏을 선택했다. 와이드핏인데 사이즈를 딱 맞게 하니 그렇게 통이 넓지 않아 적당해 보였다.  맘핏은 안 그래도 짧은 내 다리를 더 짧게 만드는 듯하여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탈의실에 가져간 다른 하나의 면바지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바지는 도톰하고 안쪽에 기모가 있어 따뜻했다. 핏도 스트레이트라 무난했다. 입었을 때 포근하게 내 몸을 폭 감싸주는 게 좋았다. 앞으로 더 추워질 테니 딱 좋은 두께의 옷이었다. 그렇게 잠시 청바지와 바지 사이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청바지는 디자인이 딱이었는데 허리가 좀 조였고, 바지는 예쁜데 이미 가을에 입던 흰 바지가 있고, 그러나 이것은 겨울용이라 따뜻하고 대체 뭘 사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두 개다 사면 안 되나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쇼핑은 한 번에 하나씩만 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자주 깨지긴 하지만 노력하는 중이다)



게다가 청바지와 면바지를 입어보며 같이 매치한 니트가 예뻐 보였다. 순간 살까 말까 고민했으나 집에 있는 니트를 떠올리며 조금 더 고민해 보자고 생각했다.



결국 원래 사려고 했던 청바지를 구매했다. 마침 가지고 있던 상품권이 있어서 추가 금액은 1500원밖에 내지 않았다. 이 기분은 마치 1500원에 바지를 산 기분이랄까? 그렇게 기분 좋은 구매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꼭 필요했던 바지를 구매하고 나니 정말 좋았다.










올 겨울의 쇼핑은 착실하게 바지 하나로 시작과 마무리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 마음도 잠시 아까 사지 못한 바지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래서 오늘 사지 못한 옷을 구경이라도 할 겸 그 브랜드 웹사이트를 들어가 구경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다시 눈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내가 그곳에서 눈길조차 안 줬던 아우터, 원피스, 치마 그리고 아까 두고 왔던 니트 등등 그것을 모두 전문 모델에게 입혀 사진 찍어 놓은 것을 보니 색다른 느낌으로 내 눈앞에 펼쳐졌다. '오~ 다 갖고 싶다.'

게다가 아까 두고 온 바지는 상품평이 모두 칭찬으로 일색이었다. 엄청난 칭찬 퍼레이드에 마치 사지 않을 것 같으면 안 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나는 청바지를 오프라인에서 구매했는데 온라인으로 상품평을 쓰면 5000점이나(환산하면 5천 원) 포인트로 받을 수 있었다. 웹사이트에서 제공되는 할인쿠폰과 포인트까지 쓰면 면바지의 가격이 1/3로 줄어드는 마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할인까지 한 가격을 보니 옷을 하나 더 살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바지와 입어봤던 니트도 하나 더 살까 생각이 드는 것이 상황이 굉장히 위험해졌다!



겨우 바지를 하나 사러 갔을 뿐인데, 구경이나 해볼 겸 웹사이트에 접속했을 뿐인데 쇼핑 욕구가 엄청나게 솟구친다. 게다가 할인까지 하니 쇼핑을 참지 못할 지경이다. 아이고야!




하나를 사고 또 하나를 사고 마법의 쇼핑








쇼핑을 부르는 마법이 있는 것 같다. 옷을 하나 사면 이제 더 이상 그만 사고 싶어질 것 같지만, 옷을 하나 사면 되려 그것에 어울리는 니트, 신발, 양말 등등 되려 더 필요한 것이 많아져 쇼핑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할인까지 한다면 그것이 쇼핑욕구와 만나면 시너지가 더 폭발한다는 것은 10살 아이도 아는 사실 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생각해야 하니까, 조용히 웹사이트를 닫았다.  분명 머릿속엔 아직도 바지가 아른 거리지만 며칠만 아른거리다 보면 또 사라질 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 옷장 정리를 해야겠다. 쇼핑이 쇼핑을 부른다면 정리는 정리를 부를 것이다. 나는 오늘 정리로 쇼핑을 물리치는 마법을 부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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