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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Dec 08. 2021

아주 사소한 후회들




그럼 우도에 안 가보겠다는 거야?



제주도에 살고 있을 때 우도에 가보고 싶었다. 너무도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집으로 놀러 온 친구가 우도에 가려고 제주도에 왔다는 말에도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친구네 부부는 제주도에 몇 번이나 와봤다고 했다. 이번에 제주도에 온 김에 우리 집에 들렀다가 다음날 우도로 떠났다. 친구는 집으로 돌아가며 나에게 우도가 정말 좋았다고 꼭 다녀오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나도 스무 살 즈음 왔던 가족여행에서 우도에 다녀온 것 같은데...'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제주도를 생각하면 우도의 모래사장이 가끔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생각난 김에 엄마에게 전화 걸어서 물어보니 정말 우리가 그때 우도에 다녀왔다고 했다. 어쩐지 그래서 우도의 모래사장이 내 기억에 남아있는 걸까? 나는 내가 그냥 하는 상상 속의 우도 줄 알았는데 정말 우도에 다녀왔었구나 생각하자 신기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우도에 더 빨리 가고 싶어졌다. 



그 이후로 우도를 언제 갈까 벼르고 있던 중이었다. 조금이라도 덜 추울 때 가고 싶었다. 12월에 들어서며 추운 날도 있었는데 요즘 날씨가 다시 따뜻해지길래 남편에게 우도에 언제 갈까 이야기를 꺼냈다. 제주도 여행에 나름 열정 있는 남편인데 우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자 나는 발끈했다. 그래서 내가 외쳤다. "내가 그때 제일 후회하는 것이 뭔 줄 알아???!!" 남편의 작은 눈이 동그래졌다. "우리 그때 파리에서 한 달이나 있었으면서 몽쉘미쉘에 안 갔잖아!" 하고 소리쳤다. 남편은 아마 왜 제주도 우도에서  프랑스 몽쉘미쉘까지 이야기가 튀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다 보니 점점 여행에 대한 기약이 없어지게 되었다. 나는 지난 여행들을 계속 떠올리며 추억을 곱씹으며 지냈었다. 언제 어느 때고 여행은 우리가 마음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긴 시간을 못 갈 줄 알았다면 그때 그 지난 프랑스 여행에서 다 가볼 것을, 다 해볼 것을, 다 먹을 것을 하는 후회스러운 마음이 자꾸, 자꾸만 솟아오르던 참이었다. 



내가 언젠가 제주도를 떠날테지만, 물론 그 후에도 다시 제주도를 여행으로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나는 그때 분명 지금보다 늙어 있을 테고, 특히 나의 눈과 마음가짐은 그때와 달라져 있을 것이다. 20대 때 한번 다녀와 기억도 나지 않는 우도를 지금 가는 것과, 더 많이 나이가 들어서 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을 보고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살아보니 그렇다. 그냥 그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갈 수 있는 것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이 최고인 것 같더라. 그래서 나는 지금 제주도에 살면서 쉽게 갈 수 있는 '우도'에 더 가고 싶어졌다. 










 내 인생은 후회하는 순간이 너무 많았다.



인생의 후회하는 순간이 한두 개가 아니다. 큰 사건부터 작은 일까지 전부 후회되는 일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차라리 큰 후회가 많았다면 위로라도 되었을까? 그런데 너무도 사소한 후회가 너무 많았다. (스튜핏!!) 파리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도 몽쉘미쉘에 다녀오지 않은 것도 후회가 되고, 제주도로 오기 전에 이삿짐을 줄인다고 아이의 인디언 텐트를 팔았는데(크고 짐이 될까 봐) 그것을 팔지않고 가져와서 여기 잔디에 깔아주었더라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생각도 되며 후회가 되고, 더 이상 들지 않을 것 같아서 팔았던 명품가방은 이제 사지도 못할 정도로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고, 이사 전 가봐야지 했던 빵집을 결국 못 가본 것도 후회다. 나는 이렇게 작고 사소한 무수한 후회와 살아가고 있었다. 



너무 많은 후회를 하고 살다 보니 지쳐가던 것도 사실이다. 후회를 후회한다. 그런데 내 인생이 만족이 아니라 온통 후회하고 살고 있다고 느낄 때처럼 착잡한 순간은 없었다. 그런데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그 작은 후회였던 하나는 또 며칠 전에 생긴 일이었다. 나는 제주시내에 나갔다가 발견한 어느 멋진 문구점에 들어갔다. 구경을 하다 보니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샤프연필 사려고 노란색과 검은색 중에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도대체 색을 고를 수가 없어서 요즘 내가 좋아하는 컬러인 노란색을 골랐는데 결국 난 돈을 지불하고 그 가게 밖을 나와서 100m쯤 걸었을 때 이미 후회했다. 다시 돌아가서 교환해볼까 고민했지만 난 그냥 그만뒀다. 이렇게 작은 일에도 후회하고 번복하는 것이 너무 바보 같았기 때문이다. 미련한 바보. 이 일을 계기로 이제는 더 이상 후회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인생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다 마음 가는 대로 해보기로 맘먹었다. 김밥이 먹고 싶으면 먹고, 우도가 가보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는 것.  대신 여기서 포인트는 이제 더 이상 후회하지 않기. 



나는 후회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조금 덜 죄책감 갖고 살아가기로 했다. 나는 조금 덜 고민하고 미련없이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우도에 언제 갈 거냐고? 난 반드시 갈 거다! 빠르면 다음 주로 예상 중이다. 어서 빨리 우도에 다녀온 이야기를 할 수 있길 바란다. 더 이상 나에게 후회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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