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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Dec 07. 2021

믹스커피 매니아

역시 삼박자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고, 당도 떨어지고 거기에 카페인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온다. 이럴 때는 믹스커피를 마셔야 해. 손을 떨면서(꼭 떨어야 하니) 물을 끓이고 봉지를 탁탁 털어 넣고 휘휘 젓는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시는 그 순간, 내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나는 믹스커피는 한 봉지로는 감질난다. 언제나 두 봉지다. 사실 마음은 세 봉지를 타 마시고 싶은데 요즘 내 몸을 보면 차마 그렇게까지는 못 마시겠다. 





 오늘은 믹스커피 각이다. 



얼마 전 드라마에서 '너를 닮은 사람'에서 부잣집 사모님 고현정 분이 커피믹스 봉지(봉지가 제격인 이름)로 휘휘 저은 후 커피를 마시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부잣집 사모님도 '서민의 커피'인 믹스커피가 생각날 때가 있지. 믹스커피를 마시던 시절의 기억이 날 때가 있겠지. 고급지고 빨간 니트원피스를 입고 믹스 봉지로 커피를 휘휘 젓는 모습이, 낚시터에서 친구를 만나 둘이 웃으며 믹스커피를 마시는 그녀들이 귀여웠다. 









벌써 10시 이 밤에 믹스커피를 스푼으로 휘휘 젓다가 생각이 났다. 제주도에 온 이후로 매일 하루 한 잔 씩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바로 '살이 얼마나 찌려고'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서울에서 살 때는 아침마다 원두 갈아서 드립 커피 마시고,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어질 때면 가까운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해서 마시고 그랬었다. 내가 커피를 얼마나 좋아하면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그랬는데... 요즘은 모든 것이 귀찮다. 그냥 믹스커피가 최고이다. 



하루 중에 주로 믹스 커피를 마시는 때도 있다. 요즘 나는 아침을 먹고 청소기를 돌린다. 환기를 한참 시키고 창문을 닫는다. 그때가 바로 믹스 커피를 탈 타이밍이다. 왜 요즘은 좀처럼 아메리카노가 안 끌리는 걸까 내가 산 캡슐이 맛이 없어서일까? 꼭 믹스 커피를 타게 된다. 



나는 주로 맥ㅅ 모카골드를 마시는데 또 꼭 이 맛이어야 한다. 왠지 우유가 들어서 건강할 것 같은 화이트 골드는 밍밍하다. 자회사에서 유행처럼 나왔던 티라미수 라테, 바닐라 라테도 마셔봤지만 실패다. 나에겐 언제나 맥ㅅ 모카골드, 역시 커피믹스도 취향이다. 



믹스커피의 생명은 또 물의 양이다. 잠시 같이 일하던 그는 점심을 먹은 후 꼭 '삼박자'한잔 하실래요? 하고 물어봤는데 그때의 나는 "왜 믹스커피가 삼박자인가?" 했었다. 그런데 역시 믹스커피만큼 삼박자가 맞아야 하는 것은 없다. 그런데 내가 타지 않고 다른 사람이 타 주니 물을 너무 많이 넣어서 밍밍한 물 같은 믹스커피를 마시는 게 됐다.  커피를 손 수 타서 주시는 고마움은 잠시 믹스 커피 맛이 너무 없어서 어느 순간 거절하고 내가 타 먹기 시작했다. 내가 마시는 믹스커피는 물의 양이 정말로 적어야 한다. (진짜 진하게 마신다.) 믹스커피를 아메리카노처럼 물이 컵 한 가득 넣는다니!  난 절대 그것만큼은 마시고 싶지 않다. 











제주도의 예쁜 카페에 앉아서 고급진 카페라테, 캐러멜 마끼아또를 마시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집에 앉아서

달달한 믹스커피 한잔이면 충분하다. 나는 이곳에 와서 하루하루를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려고 생각 중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치 의식과도 같은 순간, 티포트에 물을 끓여서 믹스커피 두 개 넣고 휘휘 저어서 어딘가에 스르륵 앉아서 마시는 그 순간! 난 그 때가 너무너무 좋다. 마치 천국인가 싶을 정도로 좋고, 그 달달한 한 모금이면 세상의 근심은 잠시 내려놓게 된다. 



언젠가 커피믹스를 세 박스나 샀는데(또 사은품에 끌렸다) 이제 세 봉지도 채 남지 않았다. 믹스 커피는 필수템이니까 마트에 가서 200들이 커다란 박스로 하나 사서 넣어둬야겠다. 그리고 커피는 언제나 환영이니까  얼마 이상이면 제주도까지 무료배송이라는 ㄴ스프레소 캡슐도 가득 채워 넣고, 밤에 마실 수 있는 디카페인 커피도 주문해 두어야겠다. 언제 어느 때이고 취향 따라 마실 수 있는 커피가 있어서 제주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 나의 마음도 더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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