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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Dec 14. 2021

오늘도 체했다

오늘 제주도의 날씨는 추웠다. 갑자기 정말 추워졌다. 그래서 따뜻하게 보일러를 틀었는데... 

그런데 체했다.



저녁은 맛있는 우거지 감자탕을 사왔다. 마트에 갔는데 정말 맛있다고 몇 번이고 사라고 해서 못 이기는 척 사 왔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밥을 세공기나 말아먹었다. (식신일까?) 그 후 아이와 함께 양치를 하는데 바지가 작아서 아프다는 생각을 했다. 배가 많이 나왔다는 생각을 이때는 못했었다.  양치를 시키고 난 후 엄청나게 부른 내 배를 발견했다. 아이랑 나는 배를 보면서 만져보기도 하고, 뱃속에 아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장난도 치면서, 배에서 나는 소리도 들어보기도 하면서 내 배를 비웃었다. 그만큼 많이 불러있었다. 잠깐 즐거웠다. 



오늘은 유난히 목이 따가웠다. 미세먼지 때문일까? 목감기가 올려나? 그래서 약을 하나 먹었다. 약을 먹느라 벌컥벌컥 물을 삼켰는데.... 그게 문제였을까? 



아이는 아빠랑 자러 갔다. 나는 바닥이 따뜻해서 쭈그리고 앉아 책을 한참 보았다. 계속 바지 때문에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지를 접어서 내려보기도 하고 아예 위로 올려 입어보기도 하면서 한참 책을 보았다. 그리고 일어나 식탁 위에 앉아있는데 영 불편해서 안절부절못하다. 눈앞에 귤이 보이길래 조금 속이 편해질까 싶어서 귤을 먹었는데 소용이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때론 별것 아닌 이유들로 인해 몸이 아파오곤 한다. 



나는 간혹 체하곤 한다. 한 때 정말 자주 체했다. 먹는 것에 욕심은 많은데 몸이 받아주지 않아서 라는 이유도 있고, 먹을 때마다 허겁지겁 먹는 식습관에도 문제가 있었다. 내가 이전에 제주도에서 왔을 때 우도에 간 기억이 왜 없냐면은 바로 체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귤과 물을 먹고 체했다. 내 기억으로는 제주도에서 작은 봉고차를 빌려서 우리 가족과 이모 가족이 여행을 했다. 그리고 여행을 하다가 돌아다니는 길에서 귤을 한 봉지 샀다. 나는 그 귤을 맛있게 먹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 마셨는데 바로 체했다. 그때는 겨울이었다. 나는 그 제주도 여행에서 체해서 힘들었던 기억만 있다.



나에겐 항상 체하는 포인트가 있다.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마셨을 때 , 또는 추운 곳에서 떨면서 밥을 먹었을 때... 남들도 그럴까?  



내가 해외 생활할 때 가장 무서워했던 것은 바로 체하는 것이었다. 워낙 잘 체했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체하면 난 혼자 너무 곤란한데 이러면서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러나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언젠가 한번 체했는데 나는 그때부터 손을 혼자 따기 시작했다. 이렇게 속이 불편한 채로 고생하느니 살아야겠다는 강하게 했다.  아마 이전에 아빠나 엄마가 스스로 혼자 손을 따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아빠 엄마의 손을 찔러 피를 낼 정도로 능숙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후로 지금까지 난 이제 내 손을 딴다. 처음엔 조금 어려웠지만 이제 많이 익숙해졌다. 그래서 오늘도 체하자마자 자연스럽게 손을 땄다. 남편이 마시는 소화제를 찾았는데 역시 그것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손을 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좀 아까 속이 좀 불편하구나 생각하며, 체했는지 몰랐을 때 나는 웹툰을 보고 슬퍼서 울고 있었다. 그 웹툰에서는 젊은 , 암에 걸린 환자가 죽은 내용이 나왔는데 그것을 보고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울고 있자니 지금 내가 뭘 그렇게 큰 고민이라고 힘들게 살고 있냐,  그렇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냥 이렇게 건강하게 살면 되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게도, 그 웹툰을 보고 울다가 도저히 배가 찡겨서 바지를 갈아입었다. 바지를 갈아입으면 속이 편해질 것 같아서 갈아입었으나 여전히 불편했다. 소화가 그래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2층에 올라갔는데 그때 깨달았다. 내가 체했구나! 일단 2층에 올라가 남편을 1층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2층은 너무 추워서 얹힌데 더 얹힐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1층으로 다시 내려온 나는 바늘과 실을 찾았다. 그리고 바늘을 꺼내 소독했다. 원래 바늘을 가스레인지 불에 소독했는데, 하필 이곳은 인덕션이 설치되어 있다. 나는 인덕션을 사용하기 더 좋아하는데 가스레인지 불이 딱 필요할 지금에서야 잠깐 아주 잠깐 아쉬웠다. 아무튼 그래서 알코올 솜으로 소독했다. 괜찮겠지?  그리고 실을 두 줄로 길게 끊어서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이 느릿느릿 2층에서 내려온다.  "남편, 나 등 두드려줘" 이럴 때는 다행이다. 혼자 살지 않아 체했을 때 등 두드려주는 남편이 있어서(그런데 손은 따주지 못한다...)  



톡톡톡톡, "아니 더 세게!" 쿵쿵쿵쿵, 여러 번 등을 두드리고 난 후 나는 팔의 피를 모으듯이 아래로 쓸어내렸다. 손 쪽으로 피를 모으기 위해서다. 그리고 실로 돌돌 묶었다. 그리고 바늘로 쿡 찔렀다. 아 잘못 찔렀다. 아프다. 다시 더 깊게 찔렀다. 피가 나온다. 조금 나오는 피를 더 짜내기 시작했다. 



사실 체할 때마다 바늘로 내 손을 찌르는 것은 무섭다. 그래서 겁내며 살짝 찌르면 피는 나오지 않는다. 더 깊게 찔러야 피가 나온다. 그리고 체할 때마다 손을 따면서 느끼는 거지만 엄마가 등을 두르며주고 손을 따주는 것만큼 시원하지 않다. 역시 엄마 손이 약손이다. 그리고 내가 딸 때 나오는 피가 검정 피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젠가 엄마가 손을 따주던 날은 정말 검정 피가 정말 많이 나와 '진짜 체했구나' 생각한 날도 있었다. 



이제 내 손은 내가 딴다.








오늘 아마도 내가 체한 이유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첫 번째는 저녁을 과하게 먹었다. 변명할 수 없는 확실한 이유다. 두 번째는 부모님이 곧 오셔서 여행 일정을 짜야한다. 미리 대충 여행 일정을 짜 놓았는데 세상에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일정 모두 비가 온단다. 비가 오는 날 제주도에 할 수 있는 여행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이 너무 어렵다. 그것도 내 여행이 아니라 부모님의 여행이라 정말 고민된다. 왜 하필 그때 비가 오는 것일까?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태양광 수리이다. 며칠 전 고장 난 전기 스위치는 쉽게 고쳤지만 아직 대망의 태양광 수리가 남았다. 오늘 왔던 태양광 수리 아저씨는 결국 못 고친 채 다시 돌아가셨다. 우리는 이제 태양광 인버터를 바꿀 것인가 아니면 더 이상 태양광을 쓰지 않을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내가 아니고 집주인이, 그런데 연락이 빨리 오지 않는다. 휴)



늘 사소한 이유로 걱정하는 내가 싫은데, 결국은 이렇게 작고 작은 고민이 나를 아프게 한다. 원래 오늘은 등이 많이 아팠다. 저녁을 먹으며 등이 아프다 생각했는데, 사실 내가 등이 아프다는 건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았다는 이야기다. 보통 원고 퇴고 마지막 즈음에 나타나는 형태의 아픔이었는데... 오늘은 왜 아프지 생각했다. 이런 것들 모두가 작은 스트레스라 어떻게 생각하면 별것 아닌 이유다. 어제 전기 스위치 수리도 끝났고 (수리비가 조금 비싸더라) 잠시 마음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은 아니었나 보다. 가끔은 나도 내 마음과 몸을 모르겠다. 



지금 손을 보니 손 땄던 부분이 보이며 작은 상처가 느껴진다. 미세한 상처라서 아주 자세히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아야 보이는 상처다. 이 상처를 보다 보니 내 마음속에도 이렇게 미세한 상처들이 나 있었겠지 싶어서 안쓰러워진다. 미세한 상처를 눈을 크게 뜨고 볼 것인가, 아니면 덮어두고 조금 마음 편하게 지낼 것인가는 앞으로의 나의 선택이다. 


 

보이지 않는 상처를 다듬으면서 살아가는 일, 오늘의 내가 거쳐야 할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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