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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Dec 20. 2021

사실 엄마도 산타를 기다려



며칠 전 크리스마스가 더 이상 기다려지지 않는다고 글을 썼다가 지웠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매년 크리스마스라는 날을 얼마나 기다리는지 모른다. 크리스마스는 내 생일과 더불어 가장 기다리는 일 년 중의 하루이다. 특히 아이가 조금 크고 나니 집에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려고 12월 내내 바쁘게 지냈었다. , 크리스마스 트리, 벽면에 걸어놓는 가랜더, 산타와 루돌프 머리띠, 크리스마스 스노우볼, 산타할아버지 머그컵 등등 입만 미니멀리스트처럼 얼마나 많이 사모았는지 모른다. 



요즘은 한 달 내내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가 우리 집에 있다. 아이는 작년부터 산타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해서 확실히 안 것 같다. 올해도 12월이 되자마자 산타할아버지에게 받을 선물을 말하며 목메어 기다리고 있다. 산타할아버지가 오실 때 쿠키와 음료를 준비해놓아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말하면서 말이다. 



어제 아이가 왜 어른들은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느냐고 물었다. 그것이 궁금한 아이가 귀여웠다. 

나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채 "올해 엄마에게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을 주실까?" 하고 물었더니 역시 내 아이.  "당연하지! 엄마는 산타할아버지께 선물 받을 수 있을 거야!" 나는 아이의 단호한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사실 엄마도 여전히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고 있단다. 










요즘은 크리스마스와 조금 멀리 떨어진 기분이다. 그냥 단지 제주에서 지내다 보니 예년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덜 느껴졌고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이 조금 더뎌진 것뿐 일 것이다. 이미 12월 초부터 집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내놓고 장식하기도 했고 제주에서도 카페에 가면 크리스마스 트리는 물론, 캐럴송도 들리지만 왜 좀처럼 올해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질 않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잠시 생각해봤는데 일단 오늘은 12월 20일인데 15도의 영상 날씨였다. 그리고 오늘 나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반짝이는 조명으로 치장한 화려한 백화점이 아니라 새별오름에 다녀왔다. 새별오름에는 당연하게도 반짝이는 트리는커녕 아직도 억새가 가득하였다. 그래서일까?



남편은 어제 잠시 서울로 떠났다. 그곳에서 보내오는 사진으로 도시의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화려한 날이었는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오늘의 나는 그 사진을 보며 서울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기억이 없던 것 같았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제주도에 살면서 크리스마스에는 가족들과 집에서 고구마나 구워 먹으며, 또는 방어회를 한 점 먹으며 지냈을 같았던 느낌이 들고야 마는 것이다. 




2022년 서울 시청 앞의 화려한 트리 


2022년 신세계 본점 백화점의 모습







그래도 이곳에서 때때로 크리스마스임을 알아차리는 때가 있기도 하다. 오늘 새별 오름에 다녀온 후 서귀포에 잠시 들렸었다. 그곳에 간 김에 고대하던 과자점에 다녀오게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한라산 모양의 쿠키를 샀는데 내가 모르던 크리스마스 에디션이 있었다. 역시 과자점의 센스가 넘치는군! 나는 흥분하며 "크리스마스 에디션이 새로 나왔나 봐요!"라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일반 에디션에 크리스마스 스티커로 꾸민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김이 새고 말았다. 사실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스페셜 에디션을 기대했던 것이었을까? 



그래도 나는 일반 에디션 과자를 사고 크리스마스 스티커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적어도 오늘 아이가 놀 거리가 하나 생겼군 하면서 기뻐했다. 하원한 아이에게 대충 꾸미는 방법을 알려주고 집안 정리를 하고 있었다. 금세 멋지게 완성한 아이는 나에게 크리스마스 에디션으로 변신한 과자 상자를 전달해주고 가버렸다. 제법이다. 아이 덕분에 나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크리스마스 스페셜 에디션 과자 상자'를 손에 넣게 되었다. (호들갑) 




아이가 스티커로 직접 꾸민 과자 상자, 제법 크리스마스 분위기 










나에게도 산타할아버지가 오셨던 어린 날의 크리스마스가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아니, 사실은 부모님께 전해 들은 산타할아버지의 기억. 나의 어린 시절에도 유치원에서는 산타할아버지를 집으로 파견 보냈고, 어린 나는 막 잠이 들었고, 아무리 깨어도 깨질 않아 산타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는데,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는 깨어 산타를 만나 평생 잊지 못할 그날을. 



이십 대의 나는 크리스마스에는 꼭 남자 친구와 명동에 가야 하는지만 알았고, 한 두 해인가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에 명동에 갔다가 인파에 떠밀려 다니며 다신 명동에 가지 말아야겠구나 생각했다. 그 이후엔 연극을 보러 대학로에 갔던가... 강남 핫플에서 놀았던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그렇게 밖에서 한껏 신나게, 즐겁게 놀기만 했던 크리스마스가 존재했었다. 



삼십 대의 나는 크리스마스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날이 계속된다. 올해도 유난스럽지 않게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준비하지 않았다. (매년 어떤 케이크를 먹을까 고민만 하다가 예약을 놓친다) 그래도 반짝이는 트리와 집에서 울려 퍼지는 유튜브의 캐럴 믹스와 함께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순 있겠지. 



올해 25일, 산타할아버지는 너무도 당연하게 내게 선물을 가져다주지 않겠지? 그런데도 나는 매년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린다. 사실 크리스마스를 꽤나 좋아한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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