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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Dec 23. 2023

아이는 엄마가 아픈 걸 모르는 것 같다.

아이가 아프다. 재채기할 때마다 콧물이 주룩주룩, 쓰레기통에 코를 푼 휴지가 넘쳐난다. 기침도 콜록거리며 다닌다. 혹시나 해서 이마를 만져봤더니 평소보다 뜨끈거린다. 체온계를 가져와 열을 재보니 열이 난다.



해열제를 찾아와 먹이고 자는 동안에도 중간중간 열을 잰다. 아이가 아플 때는 나도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편이다. 아이가 정말 작고 어릴 때보다는 지금 훨씬 편해지긴 했는데 그래도 열이 날 때는 중간중간 체크해줘야 하기 때문에 새벽에 알람을 맞춰두고 중간중간 일어나야 한다.



그렇게 꼬박 사흘을 하고 났더니 이제 내 목이 부었다. 목이 조금씩 아파오는 것이 인후염이 올려나 싶어 집에 있는 상비약으로 달래 본다. 감기가 아이에게 옮은 것 같다. 다음날 목은 살짝 가라앉았는데 몸이 영 이상하다. 타이레놀을 하나 더 먹고, 아이 돌본다는 핑계로 함께 침대에 앉아(누워) 뒹굴거리다 잠이 들었다. 전기장판을 켜고 누워있으니 망정이지 아무래도 몸살기운이 느껴진다. 아... 큰일 났다. 



그날 밤 잠이 들었는데, 밤새 몸이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 발을 얼음처럼 차가웠고, 몸은 움직일 수 없이 아팠으며 몸은 추운데 열이 나는 상황... 밤새도록 시달렸다. 정말 눈물 나게 아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병원으로 가야 했다. 아무래도 약을 빨리 먹지 않으면 몸이 더 고생할 듯하여 병원을 가야 했다. 병원에 가기 전에 열부터 쟀는데...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나지 않았던 열이 나고 있었다. 내가 밤새 느낀 몸의 열감이 기분 탓이 아니라 진짜였다.



그런데 며칠간 제주는 폭설이 와서 외출이 어려웠다. 아이 약도 다 떨어져 갔는데 눈에 고립되어 나갈 수가 없었다. 내일은 병원이 열지 않아 오늘은 꼭 나가야 하는데...  차에 쌓인 눈이 장난이 아니다.



몸은 아프고, 병원도 빨리 가야 하는데 문제는 차에 가득 쌓인 눈부터 다 치워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엄마는 강하다' 입술을 꽉 물고 눈부터 치웠다. 쌓이고 쌓인 눈은 좀처럼 쉽게 털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낑낑거린 후에 눈을 모두 치우고 아직 녹지 않은 눈길을 헤치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다행히도 큰길은 눈이 다 녹아있었다.



무사히 병원이다. 한차례 열이 지나간 아이보다 이제 내 상태가 더 좋지 않았다. 엉덩이에 주사를 맞고 약을 가득 받아 집에 돌아왔다. 이제 이 약만 먹으면 감기는 곧 낫게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선물대신 약이 넘치는구나...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약을 먹은 후에는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오늘 아침도 몇 숟갈 겨우 먹고 점심도 속이 안 좋다고 거의 먹지 않았다. 입맛이 없겠지만 아플수록 잘 먹어야 하는데 걱정이 되었다(나는 아플수록 잘 먹어야 하는 사실을 알아 보이는 것마다 입에 다 넣고 있다).



하루 종일 굶다시피 한 아이가 안쓰러워 나도 침대에 누워있으면서도 '이거 먹을래?' '저거 먹을래?' 하며 아이가 먹을만한 것을 생각하고 물어보았다. 간식으로 감자튀김이 먹고 싶다길래 몸을 일으켜 에어프라이기를 돌리고 저녁은 스파게티가 먹고 싶다길래 그것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종일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있어 쉬긴 했지만, 아이의 저녁을 만들어 주고 나니 머리가 댕댕 울려오고, 다시 목이 조금씩 아파오며 소위 약빨이 떨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빨리 약 먹고 누워있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아이 친구들과 모임이 있었다. 아무래도 몸살감기로 가지 못할 것 같아 약속을 취소했는데, 친구가 찾아와 아이가 크리스마스에 만들 수 있는  장난감을 전해 주고 갔다.



그 후로 아이는 크리스마스 만들기를 보며 언제 만들 수 있을까를 호시탐탐 노린다. (있는 힘을 다 그러모아 만든) 저녁도 먹는 마는 둥 하더니 그것을 만들자고 난리이다.



마지막 힘을 내어 크리스마스 만들기를 도와주는데 그것은 맘처럼 쉽고 빠르게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도와주는 짧은 와중에 내 체력은 더욱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 왜 지금 나도 아픈데 이걸 도와준다고 했지...'






크리스마스연휴인데 집이다. 아이도 아프고 나도 아파 집에만 있는 것이 미안하기도 한데... 지금 내 상태는 아이를 돌볼 체력까진 남아있지 않다.



지금은 나도 아프니까 계속 누워있으면서 누가 챙겨주는 밥이나 먹고 싶은데... 아이는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누워있는 내게 요청하는 것도 많다.



 '아이 눈에는 내가 아파 보이지 않는 걸까?'



곧이어 이런 생각이 든다.



대체 나는 애를 어떻게 키운 거지? 아이가 볼 때는 엄마가 아프다며 다 해주니까 멀쩡해 보이는 거겠지? 나는 너에게 '엄마는 곧 아파 쓰러질 것 같으니 밥은 스스로 챙겨 먹어, 말을 하면 할수록 목이 찢어질 듯이 아프니 이제 그만 말 걸어, 장난감을 가지고 난 후엔 좀 치워줘! 엄마는 며칠간은 장난감을 치울 힘 따위는 없을 예정이라고!



이렇게 상세하게 알려주면 그때는 좀 달라질까?







예전에 선생님인 시절에 우린 아프다고 휴가를 마음껏 낼 수가 없었다(요즘은 달라졌을 수도). 목이 아파 목소리가 안 나오고, 몸살로 몸이 두드려 맞은 것 같이 아파도, 심지어 교통사고 난 당일에도 출근해서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칠 때가 있었다. 그때는 많이 서러웠다.



그런데 엄마가 된 지금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지금은 휴가는커녕 아픈데 시달리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지금도 서럽긴 마찬가지다.



아픈 것도 서럽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남편이 옆에 없는 것도 서러운데(출장 중), 내내 아픈 아이를 돌봐주었는데 엄마가 아픈 것도 몰라주는 것도 서럽다. 몸도 마음도 아프다.


엄마도 아플땐  좀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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