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air Jun 26. 2024

사실 나는 엄마가 하기 싫어

어제저녁에는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다녀왔다. 자두씨를 삼켰는데, 목에 걸리지는 않아 다행인데 씨에 날카로운 부분이 있어 혹시 몰라 엑스레이라도 찍어봐야 할 것 같아서 늦은 밤 병원으로 향했다.



어찌 보면 별일 아닌 고작 자두씨를 삼킨 일이나 나에게는 처음 겪어보는 아주 무서운 일이었다.



실은 이미 오래전 어릴 때 사탕이 목에 걸려 응급실을 간 사건이 있었다. 그 밖에도 여러 번 무엇인가가 목에 걸려 아이가 음식을 겁내하고 두려워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아무리 여러 번 겪어도 왜 마치 늘 처음인 것처럼 무서워지는지 모르겠다.



부모가 된다는 건, 엄마로 산다는 건 때때로 아니 자주 나를 무능력하게 만들었다. 특히 아이가 아플 때마다 내가 의사였더라면, 간호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게 만들었으니까. 물론 모든 엄마가 그렇지 않겠지만 내가 유난인 엄마라 그런가 보다.




부모가 되는 과정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주는 거라면, 나는 사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지금도 어른이 되는 나를 두고 자주 후회하고 있다. 나에겐 육아가, 엄마가 아직도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아래의 글은 얼마 전에 써놓은 글이었다. 많이 화가 나 있는 상태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내내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난 엄마가 하기 싫다. 차라리 그만둘 수 있는 직업이라면 천만금을 억만금을 준다 해도 그만두고 싶다.


애를 몇 년을 키웠는데 나는 뭐가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차라리 처음부터 몰랐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냥 궁금해지도 말고 하고 싶어 하지도 말걸...



속이 답답하다. 아이야말로 답답하겠지. 네가 느끼기엔 엄마가 왜 이렇게까지 화내는지, 왜 속상해하는지, 그렇게까지 슬픈지 이 감정을 알리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안 할 수 있다면 엄마를 안 하고 싶다는 것이다.


될 수 있는 한 아주 멀리 도망가고 싶다.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적어도 걱정은 사라질 테니.




아마도 '엄마'라는  역할이 직업이었더라면 나는 진작에 그만두고, 몇 번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내가 엄마가 된 것은 분명 행운이고, 행복했지만,  그리고 아이로 하여금 매일 사랑을 느끼지만...  사실은 과연 그것을 내가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도 불안하고 버겁기만 하다.



손바닥 위에 유리를 올려놓고 살면서 떨어트릴까, 깨질까 늘 염려하는 상태라고나 할까?









아이 키우기가 힘들다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네가 너무 열정을 다해서 그래"

"아니야~ 말도 안 돼, 내가 아이를 위해 하는 것이 뭐가 있다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왕 낳았으니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옛날처럼 낳아놓으면 알아서 큰다는 소리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키워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힘든었던 걸까?

차라리 처음부터 힘 빼고 대충 키울걸, 어차피 다 똑같은데 왜 혼자 유별나게 유난이었을까...




그 물음에 대답을 한 친구는 올해 둘째를 가졌다. 그 용기가 부러웠다. 나도 조금 마음 편하게 키웠더라면 둘째도 셋째도 가질 수 있었을까?









자식이 생긴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한 생명으로 하여금 평생을 희로애락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태...



그동안 내 깜냥으로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엔  벅찼던 것만 같다. 분명 어렵고 힘든 일은 싫었을 테고 귀엽고 예쁘고 좋은 것만 보고 싶고, 편하게 키우고 싶었을 테니까...



그러나 앞으로는 그 희로애락을 즐겨봐야겠다. 더 이상 엄마로 사는 것이 버겁지 않도록... 그래서 엄마로 사는 것이 싫지 않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는 엄마가 아픈 걸 모르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