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먹고살기
내가 제주도에 와서 주로 다니는 마트는 로컬푸드를 위주로 판매를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고기도 야채도 생선도 참 신선하다. 물론 내가 장바구니에 가장 많이 담는 것은 고기다. 지난번 내가 마트에 간 날이 '소 잡는 날'이어서 육회를 사 왔었다. 내가 처음으로 손수 양념을 해서 먹어본 육회가 생각보다 신선하고 맛있어서 깜짝 놀랐었다! 오늘은 수요일, 나는 육회가 또 있길 기대하며 마트에 갔다. 꼭 육회를 먹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신선한 소고기가 사고 싶었다. 특히 아이를 위한 소고기 안심과 국거리용 소고기가 필요했다.
내가 마트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보통 육류 즉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사는 것이 주된 목표다. 그런데 한 가지 수산물은 살 때마다 고민이다. 한참을 고민하지만 기껏해야 사는 것이 생선이다. 요즘 주로 사는 생선은 갈치인데, 제주도에 와서 반짝이는 비늘을 보고 신선함에 놀라 자주 사 먹기 시작했다. 그밖에 생선 말고는 파스타에 넣어먹을 새우, 조금 더 사자면 오징어 정도를 구매한다. 한때는 연어도 자주 사 먹었던 것 같은데 요새는 손길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워낙 육류만 먹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은 수산물을 꼭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오징어 뭇국을 끓여먹기도 했다.
오늘도 나는 역시 마트의 육류코너로 먼저 가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국거리와 구이용 소고기를 골라 넣었다. 그리고 삼계탕용 닭과 닭 안심살을 골랐다. 자주 사던 종류라 머리 쓸 필요 없이 마음에 드는 것을 손이 가는 대로 담았다. 그 후에 수산물 코너를 쭉 둘러보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러 팩이 포장되어 진열되어 있는 빨간색의 회이다. 무엇인가 보니 방어이다. 아! 방어 철이구나! 이곳에서 판매하는 회는 신선하고, 판매하는 어류의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제철음식으로 들어온 것들이라 그런지 가격도 저렴했다. 오늘은 병어가 5마리에 5800원이었다. 와! 저렴하다! 싶었는데 손질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차마 사 올 수가 없었다. 예전에 아이가 참조기를 좋아해서 사 와서 손질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던 기억이 있어서 생선을 일부러 사다가 손질 해먹을 생각은 못했다. (참조기를 한 두릅씩 사 와 먹었는데 그 당시 너무 많은 생선을 손질하느라 조금 지쳤다.) 병어를 지나치고 조기도 지나쳤다. 난 오늘 어떤 생선을 사 가게 될까 생각하며 오늘도 눈앞에 반짝이는 갈치를 발견했다. 그런데 이미 집에 남아있는 것들이 있어서 갈치도 지나쳤다. 겨울 되니 굴도 제철이라 사다 먹어보고 싶고, 조개도 사다 요리해보고 싶은데 늘 생각만 하며 지나친다.
바로 그때! 내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무엇인가를 목격했다. 분명 흰색 스티로폼 접시에 비닐로 덮여 포장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서 꿈틀꿈틀, 나는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손을 댔다. 그랬더니 쭈글쭈글해지며 몸을 오므린다. '이 녀석들 신기하네~' 굉장히 활발하게 살아있던 그 녀석들은 바로바로 '전복'이었다.
예전 동네 엄마들은 아이들을 준다고 전복을 자주 샀었다. 옛날과 다르게 요즘엔 전복의 가격이 많이 저렴해져서 마트에 가면 늘 쉽게 사 올 수 있었다. 엄마들은 그것을 사서 세척하고 또 손질해서 먹인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에겐 전복은 너무도 어렵고도 먼 음식재료였다. 가끔 별것도 아닌 것들이 나에겐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게 바로 전복이었다. 전복을 솔로 세척하고, 내장을 제거하고, 이빨까지 빼는 것은 내게는 너무도 먼 별나라 이야기였다. (그런 내가 조기를 어떻게 손수 손질해 먹인 거지!!)
사실 그런 이유 말고도, 매주 집에 놀러 오시는 시어머니께서 전복을 너무도 사랑하셨다. 그래서 매번 오실 때마다 전복을 들고 오셔서 결과적으로 난 전복을 직접 사서, 손질하고 요리해서 먹을 기회가 없었다. 내가 하지 않아도 어머님이 가져다주셔서 자주 먹곤 했으니까... 그게 무려 5년이 넘는 시간이다. (전복을 너무 자주 먹던 우리 아이는 이제 전복을 보면 질겁한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전복을 만났다. 무려 활전복을! 그동안 수도 없이 전복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오늘의 나는 마치 전복을 태어나 처음 본 기분이었다. 그동안은 마트에서 전복이 팔아도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달랐다. 생생한 전복을 사다가 요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처음으로 생겨났다.
내가 마트에서 집까지, 그리고 잠시 아이를 하원 시켜 데려오느라 외부에 1시간은 있었는데! 마침내 그것을 가져와서 손질하려고 잠시 식탁 위에 올려놓았는데, 마치 하늘로 날아오를 기세로 움직인다. 엄청 커다란 달팽이의 날 것을 본 것 같았다. 마치 민달팽이 같기도 했다. 보면 볼수록 생김새가 달팽이와 닮아 보였다. 앞쪽의 무엇인가가 달팽이의 더듬이처럼 하늘을 향해 높이높이 솟아올랐다. 나는 설마 저것이 전복의 눈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더듬이라고 했다. 전복을 검색하면 할수록 나는 너무 놀라서(징그러워서) 서둘러 창을 닫아버렸다.
내가 찾은 지식에 의하면 결국 전복은 달팽이과에 가까운 것이었다.
내가 예상한 그것과 맞다니 나는 아마 생물학자로서의 기질이 있는 것이 아닐까?
테이블 위의 역동 넘치는 전복을 들고 아이에게 보여줬다. 우린 너무 신기한 나머지, 아이와 함께 그것을 들고 호들갑을 떨며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남편에게 들이밀며 우리가 먹던 전복의 실체에 대해서 보여주었다. 내가 전복을 들고 1층과 2층을 오를 때에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너무도 활동적이어서 오늘의 나는 전복을 태어나 처음으로 손질하는데, 과연 오늘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일단 12000원 전복인데 8개나 들어있어서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8개 중에 가장 얌전한 전복 3개를 골라서 칫솔로 싹싹 닦았다. 생각보다 닦기는 수월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솔로 닦기 시작하니 원래 얌전하던 전복들이 아주 조용히 죽은 듯이 있어줬다. 전복을 닦은 후 전복껍데기와 전복 살을 분리해야 했다. 그런데 분명 인터넷에서 숟갈로 전복껍데기와 살의 사이를 떠내면, 지렛대의 원리에 의해서 전복껍데기와 전복이 분리된다고 말했는데 쉽게 되지 않았다. 난 할 수 없이 물을 끓여서 전복에 10초 정도 담가 두었다. 그제야 전복의 살과 껍데기를 쉽게 분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분리가 끝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전복의 내장을 분리해야 했다. 간신히 가위로 전복의 내장을 터뜨리지 않고 분리했다. 마지막 미션인 전복 이빨 빼기가 남아있었다. 자세히 보고 싶지 않아 이빨이 들어있을 것 같은 부위에 숟가락을 대고 힘껏 밀어보았다. 다행히도 1개는 너무 쉽게, 1개는 적당히, 그리고 나머지 1개는 영 어려워서 그냥 가위로 1/3 가량 잘라버렸다. 하하하!
전복의 살을 조금 포기하면 손질은 쉽다고 생각했다.
사실 활전복을 사며 그것을 바로 잘라 기름장에 찍어먹는 상상을 하며 구매했는데, 아무래도 살아있는 그것도 엄청나게 역동적인 전복을 들고 씻는 것은 나에겐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마도 주부 10년 차 정도엔(얼마 남지 않았다니!)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암튼 그 손질된 3개의 전복은 끓이던 삼계탕에 함께 넣어주었다. 이름하여 '전복 삼계탕' 이름만 들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은 후에 나머지 전복 5마리를 손질해보자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나는 너무도 머리가 아파와서(꾀병) 그것을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버렸다. 일단 내일 해볼까라는 마음이 컸다. 내일의 나는 전복 5마리를 손질할 힘이 있을까? 그 다음 나는 전복 5마리를 손질 후 어떻게 먹을 것인가 잠시 고민했다. 다음 미션은 전복죽이다. 아마도 전복의 신선함을 잃지 않으려면 내일 아침에 먹어야 할 것인데 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늘 밤 굳은 의지를 먹고 잠에 들어야 할 것이다. 휴...
제주도에 살다 보니 전복죽을 자주 먹는다. 제주도 식당에 어딜 가도 전복죽과 전복돌솥밥은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는 메뉴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전복을 사다가 집에서 손질하기 시작하니 마치 나는 전복 전문 셰프가 된 느낌이 든다. 요리 싫은 내가 오늘은 전복을 만지다니, 전복 덕분에 오늘도 주부 능력치가 3 정도 상승한 느낌이다. 아, 주부 되기 정말 어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