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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an 12. 2024

엄마가 계속 책을 읽으니 아이가 따라 읽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 아니 그보다 앞서 아가씨인 시절 미래의 남편을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그 이상형은 바로 카페에서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남자였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 잠시 스쳐 지나간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카페에 같이 갔는데 나는 함께 책을 읽고 싶은데 남자친구는 계속 나만 바라봤다. 그 남자친구 나름의 매력은 있었지만 미래의 남편은 못되겠다 싶었다. 나는 함께 카페에서 책을 볼 수 있는 남자친구, 남편을 원했으니까.



그 후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완벽한 이상형이었다. 카페에서 함께 책을 볼 수 있는 남자. 그 후 지금까지도 카페에 가면 책을 보고 각자의 일을 한다. 남들이 보면 굉장히 먼 사이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가장 편안한 상태이다.



아무튼 그런 남편과 내가 만나 아이를 낳는다는 가정을 했더니 그려지는 그림이 있었다. 카페에서 아이와 함께 셋이 책을 보는 모습부터가 상상이 되었다. 아이랑 함께 깔깔거리며 노는 장면이 아니라 함께 책을 보는 순간이 상상되다니... 나도 참 별나다.



 





태어난 이후로 지금까지 꽤 오랫동안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가 앉지 못하고 누워있던 시절부터 같이 누워서 그림책을 읽어주었고, 앉아서 보여주었고, 정말 열심히 책을 읽어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는 어릴 때부터 책에 친숙한 아이였다.



어릴 때는 남들 다 산다는 전집도 여러 개 사봤는데, 조금 큰 후로는 책을 사는 속도보다 읽을 책이 많아져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다. 3살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잠자리 도서가 아빠에게  넘어갔다. 아빠는 365일 중에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엄마도 책을 읽어주는 것은 물론, 친정집에 가면 외할머니가, 시댁에 가면 할머니가 책을 읽어주었다. 어쩌다 보니 온 가족이 책에 집중했었다.



그러니까 몇 년 정도를 모두가 아이에게 책을 열심히 읽어줬던 것 같다. 그러나 그중 엄마인 나는 책 읽어주기가 조금 지쳤던 것 같다. 특히 글밥이 많아지며 어느 순간 책을 읽어주다 보면 목이 아프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글, 영어를 읽을 줄 알게 된 후부터는 혼자 책을 읽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봐도 좀처럼 혼자 책을 읽는 법이 없었다. 함께 도서관에 가면 떠들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혼자 읽기는 했으나 그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책을 읽어주기를 바랐다. 할 수 없었다. 목이 좀 아프고, 심지어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원하는 순간만큼은 계속 읽어주었다. 그러다 1학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학습만화(책인데 만화처럼 된) 같은 책 정도를 조금씩 혼자 읽고는 했는데... 그러나 보통의 동화책은 스스로 읽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학교에 입학하면 혼자 책 읽는 것 아니었어???'











아무래도 내게는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아이 앞에서는 좀처럼 책 읽는 것이 쉽지가 않다. 나는 보통 책을 하루에 반권~한 권 정도를 읽어 한 달이면 15~20권 정도의 책을 읽는 편인데,  꽤 오랫동안 아이 앞에서는 책을 읽는 것이 불편했다.



보통 엄마들은 핸드폰을 책에 숨겨서라도 책을 읽는 척이라도 한다던데 나는 대놓고 핸드폰에 빠져있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책에 몰입해서 읽고 싶은데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질문도 많고, 도와줄 것도 많고, 챙겨줘야 할 것도 많으니 책을 읽는 순간순간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끊어봐야 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크니 손도 안 가고, 필요하다고 하면 그때 도와주거나 놀아달라고 하면 잠깐 놀아주면 그 후에는 혼자서도 잘 놀기 때문에 책을 끊지 않고 계속 읽기에 시간이 충분했다. 그래서 이제 아이 앞에서 책을 읽을 수 있겠다 싶어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체 아이는 언제쯤 너 혼자 책을 읽는 걸까 하는 마음도 함께 들었다.



그러던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에 아이가 아파서 3일을 결석하고 이어서 크리스마스 연휴가 3일 그렇게 총 6일을 붙어 있을 일이 있었다. 24시간을 6일 동안 붙어있었더니 저절로 아이 앞에서 책을 볼 수밖에 없었다(보통 아이가 학교에 간 동안, 잠든 후에 책을 읽고는 한다) 아이도 나도 감기가 크게 걸려 아팠기 때문에 크게 다른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이 밥 먹고 약을 먹은 후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연말이라 2023년 계획이었던 고전 읽기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책에 집중하고 있었던 시기였는데, 그 6일 동안 정말 두꺼웠던 조지오웰 소설과 에세이집을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책을 들고 거실로 방으로 옮겨 다니며 읽었다. 게다가 한 책만 읽은 것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과 번갈아 읽기까지 했다. 책 3~4권을 계속 들고 다니며 침대에서 거실로 오가며 쉬지 않고 읽었다. 중간중간 아이를 돌보고 나도 분명 아파 누워있었지만 책을 볼 시간과 힘은 있었다(핸드폰을 볼 시간이 있다면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다).



24시간, 6일을 꼼짝 않고 붙어있었는데 아이는 내 곁에서 떨어질지 몰랐다. 엄마가 쉬지 않고 책을 읽고 있으니 아이도 침대로, 거실로 함께 책을 가지고 따라다녔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연휴에 우리 둘은 계속 쉬지 않고 책을 읽게 되었다.




2023 고전읽기 마지막 책 - 조지오웰







그 이후였다. 아이가 스스로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읽어 달라고 고집했던 책들을 혼자 스스로  읽기 시작했다. 내가 목감기에 걸려 목이 아파 책을 못 읽어주겠다고 선언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으며 더 이상 나의 책 읽기를 방해하지 않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제야 나도 아이 앞에서 책을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 기쁜 소식을 출장에 가있는 남편에게 전했다. "드디어 그 순간이 왔어. 우리 셋이 이제 카페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다고!"



그 이후로는 아이는 하교 후에 책부터 찾는다. 좀처럼 읽어달라는 법 없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한 권, 한 권 가져다 읽기 시작한다. 심지어 어느 날은 빌려온 책이 부족할 정도이다. 게다가 책을 보는 시간은 점점 더 늘어나고, 엄청나게 집중하는 모습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도래했다. 언제고 기다리면 이런 날이 오긴 하다보다.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게 엄마도 책을 읽고 아이도 책을 읽는다. 태어난 지 7년 반 만이다. 아주 잘 기다렸다. 이제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오시면 함께 카페에 갈 일만 남았다. 생각만 해도 참 기쁘다. 감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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