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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an 04. 2024

겨울잠 자는 곰

추운 계절의 하루

자다 보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춥다 정말 춥다. 난방텐트 안인데도 춥다. 밖은 여전히 깜깜하다. 저절로 손이 전기장판 버튼으로 향한다. 전원을 켜고 다시 잠든다. 아니면 텐트 밖으로 나가 온열기를 켜고 들어온다. 그 짧은 순간이지만 몸이 얼어버릴 것만 같다.  



보일러를 예약시간으로 돌리는데 방까지는 열이 전달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거실은 바닥이 따뜻한데 방의 바닥은 얼음장 같다. 방까지는 보일러가 안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그래서 안방은 온열기와 전기장판이 필수이다. 이 집에 태양광이 없었다면 우린 겨울에 난방비 폭탄에도 불구하고 정말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주택의 온도계 인증, 이 온도면 실외 아닙니까...






요즘의 나는 겨울잠 자는 곰 같다. 몸집이 곰처럼 변해버린 것도 맞고(어찌나 식욕이 넘치는지) 하는 행동도 곰같이 돼버린 탓이다. 수십 년간을 여우처럼 살았는데 크게 달라진 것도 이득본 것도 없었다 차라리 조금 둔하게 곰처럼 사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요즘은 마치 겨울잠 자는 곰처럼 잠을 잔다. 밤에 조금 늦게 자긴 하지만 추운 겨울 아침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아이가 태어나고 수년간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보내고 난 후에도 집에 돌아와 다시 잠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원래 부지런했다오) 작년에 전기장판이 생긴 이후로 올해는 특히 아침잠을  자기 시작했다. 잠을 다고 게을러진 건 아닌데 아무래도 연관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렇게 다시 잠들면 한두 시간을 다시 푹 자고  일어난다. 요즘의 나는 정말로 겨울잠 자는 기분이다. 아마 아이가 없었더라면 겨우내 전기장판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전기장판 깔린 침대 위에 누워있을 때 정말 행복하다. 내가 이 세상을 다 가진 자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더욱 집착하나 보다.



오늘도 참 잘 잤다.






간신히 잠에서 이겨내고 일어나 잠옷을 실내복으로 갈아입는다. 잠옷을 갈아입을 때도 정말 춥다. 지겹다 정말 이 추위! 이런 말을 지껄이며 내가 가진 가장 따뜻한 옷을 겹쳐 입는다.



부엌으로 나오니 어제 쪄놓은 고구마가 눈에 띈다 저걸 먹을까? 일단 뜨거운 물을 끓인다. 오늘따라 뱃속 깊숙한 곳에서 빵이 당긴다. 뼛속부터 한국인 체질이라 주로 보통 김치찌개 육개장 콩나물국 된장찌개 이런 것이 당기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버터리하고 고소한 빵이 먹고 싶어진다. 오늘이 하필 그런 날이다. 이런 날 남편이 있으면 맥도널드에 맥모닝이나 먹으러 가면 되는데 없으니 아쉽다.  



할 수 없이 몇 달째 한쪽 구석에서 날 째려보고 있는 시판 스콘가루를 꺼냈다. 정말로 몇 번이고 언제 만들어 먹어야지 고민했으나 이제야 겨우 시도해 본다.



뒷면 조리법을 읽어보니 그냥 스콘에 물만 넣으면 끝이란다. 그런데 물의 용량이 72ml란다. 애매한 용량이다. 얼추 물을 맞춰 넣고 가루와 섞다보니  스콘을 더 맛있게 만들고 싶어졌다.



나의 최애 스콘은 치즈스콘이기 때문에 (마음은 대파도 넣고 싶었다) 집에 있는 고급치즈를 넣어버렸다. 더 맛있어져라!!! 반죽을 4개로 나누라는데 혹시 몰라 5개로 만들어보았다. 에어프라이어 180도에 20분이라는데 내 반죽은 작고 얇아졌으니 18분 정도로 맞춰본다.


 

조금 지나자 그럴듯한 냄새가 집안에 가득해진다. 정말로 18분이 지나자 잘 구워진 스콘이 탄생했다.



와 꿀이다. 꿀!! 스콘 만들기 밥 하기보다 쉬웠다.

갑자기 몇 개월 동안 방치되어 있던 스콘믹스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접시에 두 개를 담아왔다. 보기에도 그럴듯하다.

맛도 좋았다. 중간마다 치즈 부분의 짠맛이 스콘의 느낌함을 눌러주었다. 디카페인 커피와 우유와 함께 먹으니 더 맛있었다. 오늘 아점도 성공적이다.




맛도 제법 좋아요, 인생 첫 스콘






원래 오늘은 우체국에 가서 택배를 보내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고, 은행에 들렀어야 했다. 그리고 커피까지 마시고 왔어야 하는데...



벌써 아이가  하교할 시간이다. 요즘은 아이가 방과 후 수업을 듣지 않아 일찍 하교한다.  나의 자유는 끝나버린다.



잠과 스콘으로 가버린 오전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한다. 밖을 보니 오랜만에 하늘이 화창하다. 아무래도 이불 빨래 해야 하는 날씨 같다. 평일에는 이불은 건들지 않는데 아무래도 새해니까 언젠가 해야 한다. 남은 시간에 서둘러 이불을 세탁해야겠다. 따뜻한 물에 세제 풀어 발로 밟고 세탁기에 넣고 헹굼하고 탁탁 털어 밖에 널어야겠다.



이제 의자에서 그만 일어나야지.

이제 겨울잠에서 그만 깨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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