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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Feb 05. 2024

연락처에서 지워진 사람

핸드폰으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워낙 광고전화가 자주 오는 터라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데 맨 뒷자리가 낯익어서 나도 모르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전화받네?"

"...."


아... 설마 했는데...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아버렸다. 누구의 전화인지, 왜 이 번호가 저장되있지 않은 건지 순식간에 떠올라버렸다. '아! 괜히 받았다.'



수년 전 직장동료로 만난 언니였다. 처음엔 이런저런 사건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둘이 꽤 잘 맞아서 좋은 관계로 지냈었다. 유난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한동안은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같은 프로젝트를 하면서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일을 몸이 아니라 입으로만 하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친해왔던 관계였지만 일을 이렇게 못하는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굉장히 실망했고 결국 내가 일을 그만두며 관계가 1차적으로 끝나버렸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으며 얼굴을 봤는데, 그 후로 자주 보는 사이가 되었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는 그때의 일을 잊고(어떻게 잊을 수 있냐지만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들어있다) 즐겁게 지냈다. 그러나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망하는 수순을 다시 밟게 되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우리의 관계가 틀어졌던 이유를 다시 상기하게 되었고 결국 완전히 관계를 정리하고야 말았다.








언젠가 한번 인간관리 아니 핸드폰의 전화번호 관리를 대대적으로 했다. 마침 핸드폰을 새것으로 바꾼 시점이었다. 연락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의 번호를 모두 삭제했고, 카카오톡에서의 연락처는 숨김 혹은 차단으로 바꾸었다. 그마저도 애매한 사람들은 카톡의 프로필까지 멀티 프로필로 바꿔버렸고 핸드폰의 연락처는 그렇게 깨끗해졌다. 



그런데 그때 전화번호를 많이 삭제해 버렸더니 몇 달 전에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전화가 왔는데 모르고 받아버렸고 그리고 이번에 또 받아버렸다. 벌써 지워진 연락처를 받아버린 것이 세 번째이다. 아... 아예 받아버리지 말 것을!



앞으로 연락하지 않고 지낼 거라며 연락처를 다 지워버린 주제에, 모르는 번호로 온 연락은 왜 받아버렸는지 모르겠다. 이럴 거면 차라리 연락처를 지우지 않고, 연락을 받지 않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앞으로는 저장되어있지 않는 번호 외에는 절대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그 사람 전화는 절대 받지말아야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간관계가 점점 더 협소해지고 있다(안 그래도 티끌만 한 인간관계인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이상 연락하고 싶지 않거나 만나지 않고 싶은 사람,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고민 없이 정리하고 있고, 이제는 억지로 인연을 이어가는 일은 제로에 가깝다. 대신 현재 가진 인연들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나만 이러나 싶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비슷하다 했다. 우리가 비슷해서 친구인 건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가며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이 참 편하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마음을 나눠주는 일은 복되고 즐겁기 때문이다. 마음 또한 얼마나 편안한지 모른다.








오늘은 2년여 만에 반가운 카톡이 울렸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지만 몰래 카카오톡 사진을 훔쳐보며 기다리고 있던 연락이었다. 언제라도 안부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잘 지내냐고, 보고 싶다는 말에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날 연락부터 잡아본다. 어떻게든 이어질 인연은 이어지기 마련이다는 말이 현실화되는 순간이다.




좋은 사람들 하고만 지내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싫은 것보다 좋은 것에 중점을 두고 지내야겠다.



인간관계에도 미니멀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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