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낭만

제주에서 누굴 만나?

by Blair


어릴 때는 누구를 만나도 재밌고 즐거웠는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귀찮다. 이제는 그것이 굉장히 불편하고 어렵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오래도록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한 연유로 지금은 친구나 지인과의 관계는 꽤나 오래된 사이들이 많다. 나와 마음을 나누고 오래도록 보는 사람들... 지금 알고 있는 사람들만 평생 연락하고 지내도 충분할 정도로 나에겐 아주 좋은 인연들만이 남았다.



언젠가부터였을까? 아니면 원래 그랬을 텐데 스스로 알아챈 지는 얼마 되지 않다. 그때 내게는 오래 만날 사람과 그냥 알고 지낼 사람을 골라 만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마음에 들어 오래도록 만날 사람을 정하게 된 이후에는 마음을 전부 주고 정성스럽게 연락을 하며 지내는 반면, 그 반대의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마음조차 열지 않는다.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아닌 거 같고, 어느 순간부터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많아지다 보니 이렇게 변한 것 같다.



제주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기에, 이곳에서 누군가를 알고 만나는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보다는 무관심으로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당연히 제주에 와서는 누구도 만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재택근무 중인 내 절친 남편과 두 번째 베프인 아이가 집에서 늘 함께 지내기 때문에 딱히 외롭지는 않았다. 종종 손님이 오시기도 해서 바쁜 날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곳을 언젠가 떠나버릴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나눠주고 신경 쓰는 것조차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그저 나는 제주를 즐기면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외로워 보이나 전혀 그렇지 않아요.









내가 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이의 친구 엄마들과의 관계였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엄마들은 이 관계를 꽤나 어려워하지만, 아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도 생각한다(물론 지나고 나면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하지만). 그래서 서울에서는 나도 열심히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오랫동안 노력했지만 매번 피곤했다. 매일같이 놀이터에 우두커니 서서 즐겁게 노는 아이를 바라보는 일, 아이가 놀고 싶다는 친구 엄마와 연락해 주말에 함께 놀러 가는 일, 겨우 그런 쉬운 일뿐이었데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나에겐 '엄청나게' 버거운 일이었다. 분명 아이에겐 즐겁고 행복한 최고의 시간이었을듯한데 엄마인 나의 마음은 반대였다. 그러나 엄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늘 참았다.



드디어 그 일상에서 벗어났다. 제주도에 와서 살게 되니 자연스럽게 엄마들을 만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아이는 종일 유치원에서 지내다가 자차로 등원하고 하원하니 친구들도, 친구들 엄마도 만나는 기회가 현저하게 아니 0으로 줄어들었다. 이 생활이 나에겐 정말 잘 맞았다(물론 아이는 힘들었다). 마치 나에겐 엄마 방학이 찾아왔다고나 할까?







그러던 어느 날, 아이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아이 친구의 엄마가 같은 동네에 사는데 연락해서 같이 놀고 싶어 한다고 하셨다. 그 전화에 난 바로 "아니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내 연락처는 아이 친구의 엄마에게 전해졌다.



그 후, 아이 친구 엄마 J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고 만날 약속을 정했다. 감기가 걸려있었지만 역시 빨리 만나는 것이(마치 해치워버리자는 생각) 좋을 것 같아서 이번 주로 서둘러 약속을 잡았다. 일단 아이들을 만나게 해 주기 전에 J엄마를 만나 어떤 사람인지 파악한 후에 아이들을 놀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 약속한 날이 되었다. 비가 온다! 비가 꽤 온다! 비 오는 날은 집콕해야 하는데, 휴... 역시나 내키는 만남은 아니다. 게다가 월요일에 잡은 약속이니 목요일 약속을 기억할까? 싶어 이따 보자는 톡을 미리 남겨놓았다. 약속시간이 가까워서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차를 놓고 우산을 쓰고 나갔다. 5분 거리에 가까이에 사는 터라 동네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걸으면 10분, 차로는 3분이면 가는 카페로 향했다. 비는 점점 많이 내리고, 이 만남에 호의적이지 않는 나는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왜 여기서도 내가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나야 하지!ㅜㅜ' '제주에서는 정말 아무도 필요 없는데' 등등의 부정적인 마음이 샘솟았다.










J엄마를 만나 꽤 오랜 시간 수다를 떨고 돌아왔다. 아이 친구 엄마도 서울에서 온 지 얼마 안 돼서 여기 지인들이 별로 없고, 아이의 성향이나 얘기도 들어보니 같이 만나 놀아도 괜찮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처음 본 사람 치고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분명 나는 제주에서 아무 인간관계도 필요 없다고 한 주제에, 그것치고 꽤나 오랫동안 이야기하고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내내 불평하고 갔었던 내 모습이 우스워졌다. '생각보다 괜찮네~' '그래~ 내가 먼저 손 내민 것도 아니고 먼저 연락해서 놀자고 하는 친구를 거절할 필요는 없지' 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종종 만나 인연을 유지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마음이다. 나는 다시 언제고 제주를 떠나야 할 사람인데 여기서 사람을 만나 무엇하나? 그것도 아이 친구 엄마를? 또 다른 마음은, 그래도 이것도 인연인데 또 서울과 제주를 왔다 갔다 하며 계속 볼 수 있지 않겠어? 이 두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사실은 그 후로 몇 번을 만났는데도 마음이 확 가지도, 오지도 않는다. 어떤 날은 만나면 즐겁고 재밌었다가 어떤 날은 만나면 그냥 그렇거니와 어떨 때는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서, 역시 우린 맞지 않는 듯싶기도 하고 그렇다. 그래서 왠지 마음을 쉽사리 줄 수 없다. 그게 참 이상하다.




제주에서 조용히 지내다 보니 겨우겨우 생겨나는 인간관계라고는 아이의 친구 엄마다. 이렇다 보니 내 위치가 그려진다. 아마 내가 제주에서 일했으면 '직장동료'라도 생길 텐데 고작 여기에서 만나는 사람은 아이의 '선생님' '원장님' '친구 엄마' 이 정도다. 여기에서 다른 인간관계를 조금 더 노력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여기에서 멈춰야 할까? 조금 더 살다 보면 또 뭔가 생기겠지? 이러다 결국 제주를 떠날 때쯤 아쉬워하며 떠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제주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관계라니 나도 정말 모르겠다.






사진 출처 : https://pin.it/3 BFjH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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