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낭만

손님들이 떠났다.

제주 낭만

by Blair

오늘 아침 손님들이 모두 떠났다. 그래서 지금 나는 조용한 집에 앉아 있다. 지금 우리 집에는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새가 지저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들으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 나에겐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다.



오늘의 아침은 게으른 나다. 손님이 오시면 부지런해야 한다. 특히 아침 일찍 기상해야 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그리고 손님을 위해 거창한(?) 아침을 차리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남편, 아이에게 차리는 아침도 여전히 어려운데 손님들의 아침상을 차릴 때면 나는 정말 고민이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저녁 차리기는 수월하다. 며칠간의 아침을 고민했으니 나의 아침 식사는 건너뛴다. 원래 나는 아침을 먹지 않는 습관이 있어서 괜찮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속이 편안하다. 아침 대신 차를 끓여 마시거나 디카페인 커피를 내려 마신다. 햇살 좋은 날엔 정원으로 나가 커피를 마신다. 때론 이렇게 햇빛을 쬐며 비타민 D 도 듬뿍 흡수한다.



SNOW_20211014_113730_431.jpg 정원에서 마시는 모닝커피





원래 이렇게 극도로 조용한 집을 좋아한다. 그리고 요리보다는 청소를 좋아한다. 모닝커피 후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시키고, 집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며, 청소기를 돌리고, 그리고 세탁기를 돌리고, 침구를 정리하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정말 평화롭다. 집안에 적막이 흐르는 시간, 건조기의 종료음이 들리면 넷플릭스를 재생시키면서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낸다. 빨래를 개면서 그 잠깐 사이에 보는 영상은 더 재밌기도 하다.



손님들이 떠난 그날은 보통 오전엔 집안을 정리를 하고 노래를 듣거나 점심 즈음엔 낮잠을 잔다. 손님들이 다녀간 후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졸리기도 하다. 요즘에는 잠이 오면 머리가 아픈 신호가 먼저 나타난다. 그래서 잠깐 누워있자고 누우면 금세 잠에 빠진다. 오늘도 낮잠을 그렇게 오래 자려고 하던 게 아닌데 한 시간이나 자고 일어났다.



이렇게 낮잠을 자고 일어난 후에 나는 급격한 허기짐을 느낀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서둘러 라면을 끓여 먹는다. 손님들이 계시는 동안은 충분히 맛있는 것을 많이 먹었다. 쉬는 날은 이렇게 라면을 먹어도 충분하다. 맛있게 라면을 그동안 미뤄놓은 예능을 보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다들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살겠지?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데 집안에 허브 향기가 가득하다. 오늘 아침 집안을 정리한 후에 정원에 나가서 뜯어온 로즈메리이다. 집안에서 나는 허브 향기는 나를 더욱 기분 좋게 만든다.




20211223_145259.jpg 정원에서 따온 로즈메리









내가 제주도에 내려와 살기 시작한 이후로 손님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가족들은 물론 친구들까지 겨우 두 달 동안의 시간에 나는 거의 매주 쉬지 않고 사람들을 만났다. 물론 코로나의 여파로 자주 볼 수 없던 친구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 즐거움이 먼저였다. 그동안 제주도에서 만났던 사람들 모두가 굉장히 친했던 친구들이었고, 오랜만에 만났다는 반가움에 기쁜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특히 가족이 방문했을 때는 같이 제주도 구석구석 여행을 하기도 하고, 친구들과는 요즘 유행하는 제주를 느끼며 색다른 체험을 하면서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아이가 조용한 집에서 혼자 지내다 오랜만에 손님들과 함께 지내며 정말 즐거워했다.




그런데 사실 제주에 내려가며 했던 "놀러 와" 한마디가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 내가 제주도에 내려온 이후로 갑자기 친구들의 제주도 여행 일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연말, 내년 연초엔 모두가 제주도로 여행 오는 느낌이었다. 사실 나에겐 친구들도, 지인들도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제주도에 살다 보니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니 신기했다. 한가한 이곳에 손님들이 놀러 와서 즐겁기도 하고 가끔은 내 체력이 한계구나 하고 느낄 때도 있다. 사실 나는 제주도에 살면서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조금 더 좋아하긴 한다. 이 적막함과 외로움 그리고 한가로움을 느끼러 제주도에 왔기 때문이다.



며칠 전 제주도에서는 지진이 났었다. 사실 평소엔 서로가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자주 하지 않고 지냈는데, 내가 제주도에 산다는 이유로 많은 친구들에게 "제주도에 지진이 났대, 괜찮아?"라고 연락을 받으니 조금 감동을 받기도 했다. 어쩌면 이 제주도 섬 전체에 너희들의 친구 '나'만 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내가 제주도에 살고 있다. 넓은 정원이 있는 돌담집에 살고 있다. 꿈에 그리던 2층 집이기도 하다. 그 정원엔 내가 이름도 모르는 나무들이 심겨있고, 한라봉, 하귤, 황금향이 자라는 그런 집에 살고 있다. 때론 고양이들이 오가며 들리기도 하고, 우리 집 작은 연못엔 물고기들도 산다.



나는 제주도에 사는 것이 참 좋다. 여기에 사는 것은 어쩌면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친구들과 더욱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평화로운 공간에 살면서 나를 찾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가치 있게 사는 사람이 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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