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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y 07. 2024

어버이날만큼은 잔소리를 들어야겠지

벌써 5월이다. 엊그제 어린이날을 보냈고 내일이면 어버이날이다. 매년 5월 우리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챙기기 바쁘다. 올해 어버이날은 시부모님이 제주로 오셨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겨우 며칠 간격이라 부모님은 어린이날에 더 마음 쓰셨고 나는 어떻게 하면 어버이날을 잘 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제주에 살게 되며 자주 뵙는 것이 아니라 어버이날이 더욱 신경 쓰인다. 평상시에 꾸준히 효도를 하면 좋으련만 그게 생각보다 참 어렵다.








제주에 내려오기 전 2년 동안 시부모님을 매주 만났다(그전에는 더 집이 가까워서 더 자주 만났다) 평일에 한번 우리 집에서, 주말은 우리가 시댁에 방문했다. 만남의 주된 이유는 하나뿐인 아들도 아니었고 아들이 낳은 손자가 주된 이유었다. 어차피 만남 속에 며느리없었다.




그러다 서울 집의 계약이 갑작스럽게 만료되었다. 그럼 새로운 곳에서 재밌게 살아볼까 싶어서 제주로 떠났다. 그때도 그전에도 지금도 제주살이가 이기니까. 시부모님도 우리가 제주에 가서 산다니 재밌게 살라고 하셨다. 물론 제주에 사는 장점은 정말 많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좋았던 모든 중에 특별한 이유가 하나 숨어 있었다. 어른들을 매주 뵙지 않아되지 않다는 것, 덕분에 부부싸움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관계였던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며느라기 시절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들은 좋은 시부모님이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같은 말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는 것. 처음에는 멋모르고 당하다가 이제야 그것을 잔소리라 부르고 있다. 게다가 아이를 낳은 후에 잔소리는 100배 아닌 1000배, 10000배까지 늘어났다.  



수년간의 그들의 사소한 잔소리는 쌓이고 쌓여 며느리의 정신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가스라이팅인가? 특히 지난 2년 매주마다 오셔서, 매번 같은 이야기를, 매주에 한 번씩 혹은 두 번씩 아니 세 번씩 반복해서 말하는 에는 어느새 집을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였다



어른들의 사소한 잔소리가 그렇게 힘들었냐고? 정말로 그러하다..



그래도 다행히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사니 많이 잊혔고 괜찮아졌다. 남편과도 싸울 일이 현저하게 줄었다(참고로 우리 부부는 그것 외엔 싸울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얼굴을 보는 순간 제자리다. 이번 연휴에 제주에 오셨다. 역시나 똑같은 잔소리다. 지난 3월에도 오셨었는데 그때도 2년 전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5월에도 무조건이다. 그러나 ㅇ올해 방문의 문제 아닌 문제는 그때마다 아이 아빠는 장기출장으로 집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그 잔소리를 오롯이 혼자서 들어야 했다.



사실 고작 2박 3일이다. 그러나 2박 3일 같은 잔소리를 듣다 보면 사람이 점점 피폐해진다. 그러나 올해는 견뎌야 했다. 며칠 후면 어버이날이니까. 이럴 때라도 그 잔소리 잘 들어드려야 하니까...




카네이션 대신 잔소리 듣기






때로는 의아했다. 몇 달 만에 가끔 보는 며느리에게 할 말은 오직 그 잔소리가 다일까? 나는 시부모님의 일반적인 잔소리 말고 제발 어른들의 대화를 하고 싶었다.



예를 들면 "아이가 학교에서 과학 수업을 들었는데 이런 것을 만들어 왔어요. 지난번에는 그리기 상도 받았고요. 달리기 대회에서는 3등을 해서 아쉬워했어요. 요즘은 취미로 점토를 사용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만드는데 아주 솜씨가 좋아요. S가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들어 보실래요? 요즘 춤도 얼마나 잘 춘다고요. 마치 아이돌 같아요. 아이돌은 누구를 제일 좋아하고요" 



"저는 요즘 일을 하는데요, 제주 아이들은 참 착하고 예뻐요. 오랜만에 일을 하니 참 즐겁고요. 학원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고 이제 운전하고 가는 길도 익숙해졌어요. 얼마 전 벚꽃이 피었을 때 그곳은 참 예뻤어요. 저희는 가끔 닭곰탕을 끓여 먹는데 참 맛있어요. 아이도 잘 먹고요. 최근에 서귀포에 있는 카페에 갔는데 바다뷰가 참 예쁘더라고요. 내일 함께 가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아버님, 어머님이 오셔서 오랜만에 외식을 하네요. 여기가 맛집이래요. 바다 풍경도 멋진 곳이네요. 갈치가 커다란 게 참 실하고 맛있어요. 빨간 양념이 조금 짜긴 하지만 맛집들은 이렇게 간이 세더라고요, 어쩔 수 없나 봐요. 여기 새우장, 게장도 참 맛있게 하네요. 다음에는 더 맛있는 집으로 모실게요." 



등등등...



결코 잔소리를 말고는 평범한 대화는 불가능한 걸까?







알고 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 며느리인 나조차 이상할 때가 많다.



분명 다른 면에서는 좋은 시부모님이지만 그들은 잔소리를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한다는 것. 같은 말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면서 결코 듣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나는 왜 며느리가 돼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요즘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고, 애를 낳지 않는 것은 이런 상황을 모두 알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내 발등을 내가 찍었으니 앞으로도 쭈욱 똑같은 잔소리를 들으며 살아야겠지...



단지 어버이날을 앞두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이런 마음으로 대체 어떻게, 얼마나 효도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내가 한 효도는 그 아들과 결혼하고, 매일 밥을 해먹이고, 손자를 낳은 것만으로도 효도를 다한 것일 수도 있겠다.







사실 이번 어버이날만큼은 그까짓 잔소리, 눈 꼭 감고 그냥 들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또 실패했다. 그리고 결국 남편에게 전화해서 한 소리 했다. 남편도 이제는 이러는 나를 이해한다. 그나마 우리가 얼굴 보고 있지 않아서 크게 싸우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내년 어버이날은 조용히 잔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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