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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Aug 29. 2024

아직도 버리지 못한 욕심 2

가방

때는 바야흐로 5년 전 어느 여름이었다. 집을 나서는데 앞에 어떤 여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 잠깐의 순간에 그 여자가 메고 있던 가방이 눈에 띄었다. 테두리가 검정바탕의 라탄나무로 이루어진 가방이었다. 정말 뻤다.




태어나길 가방 욕심이 많았던 나는 인터넷에서 그 가방을 열심히  찾았다 아니 사실 그렇게 열심히 찾았던 것 가지는 않은데 금세 찾고야 말았다. 그 여자가 메고 있던 가방은 'ZARA'매장에서 팔고 있는 가방이었다. 세상에 그런데 마침 세일도 하고 있었다. 쇼핑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당장 가까운 매장으로 달려가 가방을 구매하였다.




바로 이 가방인데, 세월의 흔적이 물씬...



가방의 재질 특성상 여름에 자주 드는 가방이었다. 가방 사이즈도 넉넉하고, 가방디자인도 예뻐서 여름마다 참 잘 썼다. 그리고 올해 다시 여름이 되어 자연스럽게 가방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가방이 이상하다. 군데군데 가죽이 벗겨져있는 것이었다. 진짜 가죽이 아니라 인조가죽이라 그런가? 아니면...? 아무튼 가죽이 삭아서 군데군데 벗겨지고 있었다. 분명 작년 여름만 해도 멀쩡한  같았는데 올해는 완전히 가죽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리고 그 가죽이 집안 곳곳 여기저기, 들고 다닐 때에는 옷에도 묻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하필 여전히 예쁘고 아끼던 가방이었다. 여름마다 나의 최애템으로 자리 잡을 정도로 한 5년 정도를 매년 열심히 들었던 가방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보내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값비싼 가방이었더라면 as 라도 보냈을 텐데, 그러면 가죽이라도 조금 바꿔서 다시 가방에 소생해 봤을 텐데 그럴 수 없는 처지의 가방이었다.



아쉬웠다. 이렇게 가방을 보내야 한다니...




처참한 상태의 가방



  






그러니까 가방욕심이 많아 수많은 가방을 가지고 있는 내가, 가방이라면 돈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던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하나의 가방을 오래 사용해서 버릴 수밖에 없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 것이다.



그동안 싫증 나거나 지겨워서 버리는 가방은 많았지만, 이렇게 처음으로 가방을 오래 쓰고 린 것은 처음이라 오히려 신기했다.



스무 살 이후부터 정말 많은 가방을 샀지만 그중에 이처럼 생명을 다 하도록 써본 가방이 있었나? 아니, 이 가방이 처음이다! 




드디어 끝까지 잘 쓴 가방이 생겼다는 게 기뻤다. 미니멀리스트가 된 이후로 이렇게 물건을 끝까지 잘 사용하는 기쁨을 자주 느끼게 된다.




물론 이 가방이 나의 마지막 가방은 아니다. 미니멀리스트 이전부터 금방 쓰고 버릴 가방은 웬만하면 사지 않는 편이어서 (나름 가방을 사는 기준이 확고한 편이라) 가방이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어떤 물건보다 애정하고 아끼는 품목이라 이처럼 잘 쓴 것이 참 뿌듯하다.




아직도 내게 남아있는 가방이 한가득이다. 앞으로도 이미 가지고 있는 가방들을 더 열심히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 평생을 사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웃음) 꼭 노력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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