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름사이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정원의 잡초를 뽑고 잔디를 깎고 있었다. 그런데 정원 한 부분에 떨어진 낯선 것을 보았다. 그것은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뱀의 껍질 같았다. 으...
정원에서 처음 발견된 뱀껍질이지만 그 정도야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그보다 더 전에 하수구를 청소하러 집에 오셨던 as기사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그러셨었다. 뒷마당에 뱀 껍질이 있는 것을 봤다고... 순간 그때 생각이 났다. 뱀껍질을 보며 이렇게 생겼구나,뱀껍질도 참 징그럽다 생각했다. 그래도 뱀은 보고 싶지 않았다.
한참 동네에서 뱀을 봤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어느 집의 주차장에서 혹은 자전거 옆에서... 때때로 제주에서 오름이나 숲 등 어느 장소 가면 '뱀을 조심하세요'라는 푯말을 많이 봤었다. 그래도 설마 진짜 뱀이 나오겠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문제는 정원에서 발견된 뱀껍질조차 무서워서 버리지 못하고 그곳에 계속 두었다. 그래서 뱀껍질 주위로 잔디나 잡초를 제거할 수 있어서 수북이 자라났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뱀껍질이 삭아 없어질 즈음 눈을 감고 그곳의 잔디를 밀었다. 으으... 정말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교를 하던 아이가 학원 차에서 내렸다. 그러더니 집을 들어오다 말고 정원에서 가만히 서있는 것이었다. 집안에서 보니 무엇을 한참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 나 방금 뱀 봤어"
"뭐라고 뱀???????" 우리는 깜짝 놀랐다. 우리는 뱀의 생김새나 사이즈에 대해서 물어봤고 아이는 상세하게 대답해 주었다.
아이는 조금 놀라긴 했다. 그러나 후에는 아무렇지 않게 "별로 안크던데?, 귀여워" 하는 것이었다. 뱀을 보지도 않았지만 보지도 않고 엄청나게 놀라버린 아빠, 엄마보다 용감해 보였다.
그 후로는 정원에 갈 때마다 무서웠다. 이곳 어디에 뱀이 있으면 어쩌지... 분명 정원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특히 풀로 뒤덮여 버린 뒷마당이 제일 무서웠다. 그곳은 지난겨울 한차례 풀을 잘라냈는데 올봄과 여름을 지나고 나니 잘라낸 흔적도 없이 동산을 만들었다. 마치 하나의 숲이 그곳에 생겨난 것만 같았다. 처음 조금씩 자랄 때는 가서 풀을 뽑기도 했으나 그곳에서 풀이 자라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버려 둔 곳이었다.
그런데 분명 그곳엔 뱀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제발 내 눈에만 띄지 말아 줘... 하면서 애써 무시했다. 제발 내가 이곳에 사는 동안 뱀을 만나질 않길 바랐다.
추석연휴 집주인이 정원을 싹 관리해 주셨다. 너무 커버린 나무들은 잘라주고, 정원가장자리 풀도 정리해 주시고, 연못 가득 자라난 잡초들도 모두 정리해 주셨다. 심지어 그 풀이 가득하던 뒷마당도 싹 정리해 주셨다. 정원이 정말 깨끗해졌다.
정원이 깨끗해져서 그런지 모든 것들이 잘 보이기 시작했다. 놀러 왔다가 숨은 아기고양이도, 자주 놀러 오는 새들도, 곳곳에 벌레들도... 뭐 그 정도는 충분히 괜찮았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평상시에는 생전 가보지 않던 연못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곳엔 금붕어 몇 마리가 살고 있다. 이곳에 사는 내내 밥을 주지 않는데도 잘 놀고 잘 자란다. 원래 처음엔 개수가 많고 작았는데 이제는 개수는 적어지고 대신 커졌다(설마 집주인이 올 때마다새로 사다 넣는 것은 아니겠지?).
정원의 연못
아무튼 오랜만에 본 금붕어는 색도 더 선명해지고 아름다워졌다. 특히나 연못주위의 잡초들을 싹 제거했더니 연못 속이 더 잘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참을 금붕어를 보고 있다 보니 연못에 있는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기다란 것이 물속에서 신나게 수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게 뭐지?
"아악!!!!!!!!! 뱀이다!!!!!!! "
그렇다. 진짜 뱀이었다. 성인 팔길이만 한 사이즈로 길지만 아직 얼굴이 작은(몇 살이나 되었으려나?) 뱀이 신나게 수영을 하고 있었다. 너무도 신나 보여서 저게 뱀인가 물고기인가 잠시 헷갈릴 정도였다. 맙소사 정말 뱀이 나타나다니!!!!!!
집에 남편이 있어 함께 보러 가자고 했다. 어쩌면 좋을지 의견을 구했다. 그러나 남편은 뱀이 보고 싶지 않다며 서둘러 약을 사서 뿌려야겠다고 말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혼자 다시 연못으로 갔다. 여전히 뱀은 그곳에서 돌에 올라갔다가, 풀에 올라갔다가 그리고 한 번씩 수영을 하며 놀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을 검색했다. '뱀 잡는 법'
그러나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뱀을 잡으면 위험하니 119에 신고하라는 것이었다. 119에 신고하기 너무 죄송스러웠다. 이깟 뱀 가지고 귀하고 바쁘신 분들을 부르기가 좀 그랬다. 그러나 딱히 다른 방법이 없어서 119에 전화를 했다.
"출동하고 있습니다"
십여분을 기다렸다. 좀처럼 119가 도착하지 않아서 숨죽이며 내내 뱀을 지켜보고 있었다. 119에 전화했을 때 물어보니 뱀이 사라지면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사라진 뱀을 찾으면서까지잡아주진 않는다는 소리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뱀을 지키고 있었다.
드디어 119 대원들이 도착했다. 나도 모르게 호들갑을 떨며 저기에 뱀이 있다고 알려드렸다. 그들은 장갑을 끼고 집게와 통을 들고 뱀의 위치에 가까이 가셨다. 그리고 순식간에 뱀을 잡으셨다.
'응? 뱀을 저렇게 빨리 잡는다고???'
119 대원분들은 정말 멋졌다. 그들이 도착한 지 겨우 5분 정도가 되었을까?뱀은 이미 잡혀서 통 속에 들어가 있었다. 겨우 뱀 따위로 119에 전화한 우리는 그들에게 죄송합니다와 감사합니다를 동시에 여러 번 외쳤다. 그분들이 돌아가신 후 우리는 손뼉 치며 환호했다.
최고 멋진 119대원들
그렇게 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연못주위가 깨끗하길 망정이었다. 연못주위가 정리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뱀을 잡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고 그러면 또 뱀이 도망가서 다음을 기약해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휴... 정말 다행이었다.
가을철에는 뱀이 유난히 많이 나타난다고 했다. 겨울잠을 자기 전에 영양을 채우려고 음식을 섭취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뱀은 변온동물이라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는데 큰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온도가 뱀의 활동이나 생존, 번식에 영향을 미치는데 기후 변화로 나타난 이상 고온 현상이 뱀의 생태습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집이야 정원이 있는 집이니 뱀이 나타나도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아파트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게 더 무서웠다.
어제저녁엔 뱀을 쫓는 약을 검색해서 주문했다. 다시 뱀을 보고 싶지 않으니 집 밖 구석구석 열심히 뿌려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