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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Sep 26. 2024

여행을 간직하는 방법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다. 올해는 가을이 돼서야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보다 선선한 날씨, 맛있는 음식  모든 것이 완벽한 여행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을 준비하던 설렘을 잊을 수가 없다. 며칠 동안 여행을 갈까? 어느 항공사 비행기를 예약할까? 잠은 어디에서 잘까? 어디를 가볼까? 가서 무엇을 먹을까? 거기는 어떤 맛있는 음식이 팔까? 그곳에서 무엇을 하면 재밌을까?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근거림이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의 탐험... 그 설렘이 그리워 자꾸 여행을 가게 되는 것 같다.




비행기 두 시간 내외로 가까운 다른 나라여서 환경이 비슷한 듯, 다른 듯. 그 속에 섞인 나도 비슷한 듯 다른  겉으로는 크게 이질감이 없었다. 특히 입을 다물고 있는다면 말이다. 갑자기 눈이 까막눈이 된듯한 어지러이 쓰여있는 글자들 그 속에 아는 단어를 찾아 숨은 그림 찾기를 해보고, 그것도 안되면 나에겐 파파고가 있으니까 간단했다.




그래도 답답했다. 여행 가는 나라의 언어를 잘 모른다는 것... 물론 물건을 사고, 식사를 한 후 들려오는 질문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돈만 잘 가지고 있으면 뭐든 구매할 수 있었고, 딱 한 가지 음식점에서 '알레르기가 있습니까?'를 알아들었을 뿐이었다.



그래 다음 여행 전에는 꼭 미리 언어를 조금 공부해서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다음번 여행에서 입으로 말하고, 눈으로는  조금 더 알아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덜 답답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여행을 다녀온 사이 제주의 계절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분명 한여름에 떠났는데 거짓말처럼 가을이 와 있었다. 선선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어제저녁 늦게 집에 도착한 터라 아직 몸이 찌뿌둥하다. 이곳저곳 아픈 몸을 느끼며 의자에 앉아 내가 여행을 다녀온 것이 맞긴 한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이제 막 돌아온 여행에서 벌써 사라져 가는 기억을 붙잡고 싶어 여행에서 가져온 것을 하나씩 꺼내보게 된다.



일단 첫 선택은 드립커피이다. 여행을 가면 들렸카페의 드립커피를 한 두 개 사 온다. 예전에는 드립카페도 한 팩으로 여러 개 사 왔지만 생각보다 그 기쁨이 그만큼 가지 않아서 한 두 개로 충분한 것 같다. 드립커피는 적당량의 물을 천천히 부어가며 커피를 내려야 맛이 잘 느껴진다. 여행에서 가져온 드립 커피를 내리고 있다 보면 여행지에서 갔던 그 카페가 떠오른다. 특히나 카페에서 만든 블렌딩이라면 공간, 카페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커피 한 모금에 감성 한 스푼 마치 다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가장 쉽고 빠르게 여행의 기억을 소환할 수 있다.







원래 여행에서 무엇을 많이 사는 편이 아닌데 이번만큼은 좀 달랐다. 덕분에 여행의 여운을 진하게 느끼고 있다.




두 번선택은 쿠키이다. 평소에도 작게 소포장된 쿠키를 좋아하는 편이라 남편이 육지나 출장을 갈 때면 꼭 부탁하는 편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내가 선별해서 사 왔다.



한 브랜드의 다양한 간식이 들어있는 패키지를 사 왔는데 그중에는 그곳에서 유명하다는 바움쿠헨도 들어있고 또 다른 들도 들어있어 어떤 맛일까 궁금해진다.



일단 상자에서 가장 작은 쿠키를 꺼냈다. 안에 하얀 초코가 들어간 웨하스 같았다. 하나를 먹고 정말 맛있어서 바로 같은 사이즈의 쿠키를 먹었다. 그 쿠키에는 갈색 초코가 들어있어 미묘하게 맛이 달랐다.



아직도 상자 안에는 쿠키, 바움쿠헨, 빵이 남아있다. 보기만 배가 부른다. 이래서 내가 낱개포장 쿠키를 사 온 것이다. 유통기한 내에만 먹으면 되니까 언제고 여행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기쁘다.



겉은 바삭 안은 촉촉





마지막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이다.

여행 가면 꼭 잔뜩 사 와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던 초콜릿이었다. 문제는 냉장보관이 필요한 탓에 비행기 타기 직전 마지막에 구매할 수 있다. 그래서 면세점에 들려 초콜릿을 세 개나 사 왔다. 사실은 더 사 오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막상 구매할 때 덜 사 오게 되었다. 사다 보면 이걸 어느 세월에 다 먹을 수 있으려나 싶어 지기 때문이다.



한 조각씩 아니 세 조각씩 그릇에 담아 하나씩 음미하며 먹는다. 그래 이 진한 초콜릿맛이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그 맛이 맞다!


이제 이 초콜릿을 두고두고 먹으며 다음 여행을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진짜 마지막 화룡정점은 바로 한 잔의 술이다. 늦은 저녁이 되어 입이 심심할 즈음 슬그머니 냉장고로 간다. 그리고 보관된 차가운 술을 꺼낸다. 도수도 별로 높지 않은 그리고 달콤한 '한정판' 술을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기분이 한층 좋아진다. 다시 내가 그 여행지로 돌아가 주전부리와 함께 먹고 있는 기분이 또 들고야 만다.



술은 많이 사오지도 않고 먹다 남은 것을 들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다음엔 반드시 더 많이 사서 가져와야지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암튼 매우 즐겁다.





저녁마다 한 잔씩




결국 커피도 간식도 맥주도 부족해진다. 몇 가지는 주위에 선물로 주었더니 더 그렇다. 다음에는 좀 더 욕심부릴까 싶지만, 부족한 듯 적당한 이 정도가 충분하지 않나 싶다.



앞으로도 간식을 하나씩 꺼내먹으며, 때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마지막 남은 한 캔의 맥주를 아껴마시며, 지난 여행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어야겠다. 그리고 그 여운이 사라질 즈음 다음 여행을 계획하며 설렘을 느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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