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낭만

고구마를 굽는 시간

겨울 간식

by Blair


간밤에 조금 더 눈이 내렸나 보다. 어제 눈 위에서 놀았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다시 평온해 보이는 눈 덮인 정원만이 남아있다. 오늘은 눈이 더 오려나 흐리고 추운 날씨가 계속된다. 우리는 눈에 갇혀서 이틀째 집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집 앞엔 눈이 가득하고 차가 다닌 흔적도 없다. 우리 동네 사람들도 눈이 와서 꼼짝없이 집에 갇혔나 보다. 밖을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뿐만이 아니라니 반갑다.



오늘은 아침 겸 점심으로 간단히 먹었다 그랬더니 시간이 지나며 점점 배가 출출해지기 시작한다. 마침 지난주 사다 놓은 작은 사이즈의 고구마가 눈에 띄었다. 그 고구마를 쪄먹을까 구워 먹을까 잠시 고민을 했다. 이사 온 제주집엔 벽난로가 있다. 집주인과 계약을 하던 날, 벽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맛있다고 했는데 우린 엄두도 못 내보고 있다. 역시나 지금 당장 벽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먹는 것은 무리니 에어 프라이기에 고구마를 굽는 방법을 검색한다. 언제나 에어 프라이기는 만능이다. 180도에서 30~40분 정도로 구우면 맛있는 고구마가 완성된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을 굽네!'라고 생각했다. 작은 사이즈의 고구마니까 금방 익을 것이라 예상하고 30분 정도로 맞춰놓고 에어 프라이기를 돌렸다. 에어 프라이기에서 끝났다는 알람이 울려 열어보니 속이 촉촉한 군고구마가 완성되었다. 에어 프라이기에 많은 음식을 넣고 돌려봤는데 고구마를 구워본 것은 처음이었다. 고구마가 더 달콤하고 맛있어졌다. 그동안은 우리 집 꼬마가 고구마를 좋아하지 않아 간식으로 만들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맛있고 간편하다니, 앞으로는 자주 만들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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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군고구마를 들고 껍질을 까며, 호호 불어가며 먹고 있자니 겨울 길거리 간식이 하나씩 떠오른다. (먹으면서 먹는 것을 생각한다) 붕어빵, 호떡, 호빵, 어묵, 군고구마, 군밤, 계란빵..



나는 붕어빵보다 잉어빵을 좋아하는데 그게 뭐가 다르냐고 물어본다면 잉어빵은 더 부드럽고 촉촉하다. 원래 팥만 들어있던 잉어빵에 요즘엔 슈크림도 넣어 팔더라. 세월이 흐르며 가격은 점점 오르고 개수는 점점 줄어드는 잉어빵인데, 예전에 살던 집 앞에 여전히 천 원에 4개를 주는 가게가 있어서 종종 사 먹곤 했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는 시내와 떨어져 사니 겨울이 된 지 오래인데 잉어빵 사 먹기가 어려워졌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붕어빵, 잉어빵 대신에 한치빵, 문어빵이 눈에 띄었다. 한치빵, 문어빵은 한치와 문어 모양에 모짜렐라 치즈를 안에 넣고 구운 것이다. 제주 관광지를 오가며 파는 것을 보고 그 맛이 궁금하긴 했는데 계속 못 먹어보다 드디어! 이번에 먹어보았다. 특이한 모양이 비해서 생각보다 무난한 맛이었던 문어빵, 관광객들을 위한 스페셜한 아이템이라고 느꼈다. 단지 나는 이것을 겨울 간식에 포함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20211220_130402.jpg 제주올레시장에서 먹어본 문어빵








요즘에도 계란빵이 팔까? 내가 어릴 적엔 계란빵이 간식으로 유행이었다. 그때가 초등학생 때였다. 천원도, 오천원도 나에겐 큰돈이었을 때가 있었다. 아마도 그때 계란빵이 하나에 오백원인가 했다.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 계란빵이 파는 노점을 보고 사 먹을까 말까 고민하며 몇 번을 지나쳤다. 그렇게 벼르던 어느 날, 너무도 먹고 싶어서 돈을 내고 계란빵을 하나 샀다. 집에 와서 보니 지갑에 있던 오천원이 사라졌다. 계란빵을 사며 천원을 건네고 거스름돈을 오백원을 돌려받았는데, 알고 보니 오천원을 내고 거스름돈 오백원을 받은 것이다. 그때도 겨울이니 이미 깜깜해진 저녁 무렵이어서 아마 아줌마도 나도 오천을 낸 것을 서로가 확인하지 않아 전혀 몰랐을 것이다. 다시 돈을 돌려받으러 갔었나 안 갔었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다시 돈을 돌려받지 못한 것만큼은 확실하다. 나는 그 이후로 절대 계란빵을 사 먹지 않는다. 다시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다. 내 오천원...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겨울 간식은 호떡이다. 이전에 살던 동네에는 줄 서서 먹는 호떡가게가 있었다. 언제고 사러가도 금방 만들어진 호떡은 얼마나 맛있어 보이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호떡을 만드는 아저씨는 새로 이사한 아파트의 하자건으로 통화 중이셨다. 아마도 우리 동네의 제일가는 호떡집이었으니 아파트 한 채 사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조금만 찬바람이 불면 호떡집이 불이 났다. 나도 종종 줄을 서서 사 오곤 했다. 나는 보통 호떡을 1개, 2개 정도 사서 먹는 소극적인 구매자였는데, 줄 서있던 사람들은 한 번에 몇 개씩 포장을 해서 사가곤 했다. 그래서 종종 내 앞에서 호떡이 떨어져서 새로 굽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호떡 반죽을 일정량 떼어서 손에 올려놓고 안에 호떡 소를 넣는다. 그리고 호떡 소가 터지지 않게 잘 여며서 기름이 둘러진 철판에 올려놓는다. 시간이 지나 아래가 살짝 익었을 즈음 뒤집어서 호떡 누르개로 누르고 조금 더 익히면 완성이 된다. 호떡 장인이 호떡을 만드는 모습은 매우 간단해 보이고 쉬워 보이는데 정작 내가 집에서 해보면 늘 호떡은 터져서 꿀을 흘리고 그것을 만드는 일은 정말 어렵다. 그래서 몇 번 해 먹어 본 후에는 절대 다시 시도하지 않는다. 겨울이 되니 그 호떡집에서 가서 줄을 섰다가, 종이컵에 호떡 하나를 받아 들고 조금씩 뜯어먹으며 집에 가던 길이 생각나 그리워진다. 뜨거운 호떡 꿀에 혀가 데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먹으며 걷던 겨울밤, 나는 마음이 풍요롭다 느꼈다.




SE-434d1110-67dd-11ec-bc19-59d3a214ee16.jpg 시장에서 먹은 호떡과 어묵




겨울 아침은 몸이 떨릴 정도로 춥다. 그래서 몸을 녹이기 위해 길 가다 하나 사 먹는 어묵꼬치도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그 어묵을 먹고 난 후 호호불어 식혀가며 먹는 어묵 국물을 너무도 좋아해서 겨울 아침이면 거의 매일 어묵을 사먹던 나였는데... 코로나 이후 길에서 누군가와 가까이 서서 무엇을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사먹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 겨울, 제일 그리운 것은 그 어묵이다. 집에서 아무리 맛있는 고급 어묵으로 어묵탕을 끓여도 그 맛이 나지 않아 아쉬움이 가득하다. 코로나가 사라지고 나면 제일 먼저 길거리 어묵 포장마차로 달려가 어묵을 하나 집어 먹을 것이다. 아니, 두 개, 세 개 원 없이 먹어봐야겠다. 어묵 국물도 종이컵 가득 꼭꼭 챙겨 먹어야지 하고 생각한다. 아! 생각만 해도 배가 불러온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겨울 간식이 정말 많다. 그리고 제주도에 오니 먹어야 할 간식들이 더 많아져서 금세 살이 찔 지경이다. 그래도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이 겨울을 날 생각하니 너무도 든든하고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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