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구순이 넘어 돌아가신 친할머니와 팔순이 훌쩍 넘으셨는데도 정정한 외할머니 한분이 계시다. 그나마 할머니들과는 오랫동안 자주 만나 뵈어서 많은 기억들이 있지만, 친할아버지와 외할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기억이 드문드문 밖에 나지 않는다. 이제는 거의 할머니들과의 추억뿐이다.
한참을 진짜인지 의심했지만, 사실에 의하면 할머니 두 분은 옆동네에서 살면서 언니 동생 하는 사이였다고 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결혼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저 멀리 농사를 짓는 용인에서 선 자리가 들어왔지만 할머니는 딸이 멀리 시집가는 것이 싫어서 거절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만난 사람이 아빠이다.
사실 어린 마음에 남자, 여자가 어른들의 주선으로 겨우 몇 번 만나 결혼을 한다는 그 '선'이라는 것이 참 이상했다. 그러나 그때는 원래 그랬다고 했다. 어쩌면 좋을 수도, 별로 일수 있는 그 자리에서 그 둘은 만나 가정을 꾸리셨다. 그래서 오빠와 내가 태어났다.
어쩌면 할머니들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나는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 대단한 인연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몇 해 전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 내게는 외할머니 한분만 계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은 할머니들을 자주 찾아뵙지는 못했다. 현재는 친정, 시댁 오가기도 먼 곳에 살고 있어서도 그렇지만 그전에도 결혼 전에나 자주 찾아뵈었지 요즘은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러한 연유로 할머니를 만나는 것은 일 년에 한 번도 채 안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제주에 사니 오히려 할머니가 우리를 만나러 오셨다. 다른 곳에 살 때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늘 내가 할머니 집에 갔었지 우리 집에 온 적은 없기 때문이다. 제주에 사니 할머니가 고사리를 꺾으로 오신다. 대체 고사리가 뭐라고 팔순이 넘어서 평상시 걷기도 힘들어하시는 할머니가 제주도까지 오시는 것이다.
나로서는 할머니가 와주니 감사한 일이다. 당연히 내가 찾아봬야 하는 것을!
실은 친정엄마가 준비한 효도여행으로 제주로 오셨던 것이다. 그런데 효도여행을 가장한 고사리 꺾기인지, 뭐가 먼저인지 결국 알지 못하는 여행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할머니는 직접 집 가까이 들과 산에서 쑥을 캐서 떡을 만들어 가져오셨다. 인절미 고물이 듬뿍 묻은 쑥 떡을 가져와 먹어보라고 하셨다. 우리는 생전 쑥으로 만든 떡을 사 먹을 줄만 알았지 직접 만든 떡은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제주에 오신다고 쑥을 뜯고 그것을 손질하고 방앗간에 가서 떡을 만들어 오셨던 것이다.
그게 할머니가 표현하는 사랑이었다.
언제나 자식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김치와 음식을 만들어주고, 나눠주시는 늘 할머니는 우리 집안의 큰 손이셨다.
할머니가 큰 손이 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옛날 누구나 그렇듯이 할머니도 정말 가난했다고 했다. 우리 엄마가 그중에 둘째인데 신발이 작아서 발이 아프다고 했는데, 그 돈이 없어서 신발을 못 사줬을 때가 있었다고 하셨다. 그때 밥도 없어 며칠씩 죽만 끓여서 먹었을 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엄마가 발이 아프다고 하는데 신발을 사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두고두고 한이 되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동안 그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고 보살피셨나 보다.
며칠 동안 할머니랑 있다 보니 이런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그동안 몰랐던 엄마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잠시 할머니와 엄마가 살던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할머니 얘기를 들을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엄마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 적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오직 할머니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선명한 기억이었다.
할머니는 내게 그동안 잘 지냈냐고 물어보셨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할머니,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라고 슬픈 대답을 해버렸다. 할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렇지,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지. 그런데 원래 사는 게 그런 거여"라고 대답하셨다.
할머니만이 할 수 있는 작은 위로였다.
그리고 할머니는 다시 육지로 떠나셨다. 나를 바라보며 '잘살아~'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 말씀대로 잘 살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잘 살아 할머니를 다시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할머니 빨리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