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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랑이 여기에 있었다.

by Blair

"냉장고에 육개장이랑 곰국이랑 들어있어, 반찬 없을 때 꺼내 먹어~"



엄마는 집에 돌아가셔도 잘 챙겨 먹지 않을 딸을 걱정했다. 그러나 단단한 오해다. 엄마가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잘 챙겨 먹고 지내고 있다. 그래도 엄마가 해준 반찬은 언제든 좋다. 두고두고 꺼내먹으며 엄마의 사랑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엄마는 제주에 올 때마다 비행기에 부칠 수 있는 수화물을 가득 채워서 오신다. 그것도 모자라 어깨에 짊어지고, 손에도 가득 들고 말이다.



제주에 산 첫 해와 둘째 해에는 정말 자주 오셨다. 그러다 작년에 내가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그 횟수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래도 작년에도, 올해도 고사리 시즌에는 무조건 제주에 오셨. 그 고사리, 그놈의 고사리가 뭐라고 엄마를 붙들었다.



그리고 고사리 덕분에 나는 엄마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었고 말이다.





엄마가 오면 엄마 밥상







김치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딸과 손녀이다. 지난번엔 파김치와 오이김치를 이번에는 오이김치와 열무김치를 들고 오셨다.



그동안 푹 익은 오이김치를 먹다가 갓 만든 오이김치를 먹으니 더 맛있었다. 그때 먹던 오이김치도 처음에는 눈이 번쩍 뜨일 맛이었다.



딸에게 가져다 줄 이것저것을 챙기느라 제주에 오기 바쁘게 움직였을 엄마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번에는 돼지갈비도 해서 오셨다. 오기 전날 고기를 사 오고, 양념을 만들어 재우고, 오이를 자르고 다듬고, 양념 소를 잘라 만들고 얼마나 바빴을까.



그러다 제주에 와서 바다 구경이나 하고 맛있는 음식이나 먹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커피나 마시면 좋을 텐데 그러질 못하신다. 특히나 이 시기 제주에 오면 고사리를 꺾고 삶고 말리느라 바쁘시기 때문이다.



제주에 오기 전부터 제주에 와서도 너무너무 바쁘다.



나는 그저 바라만 본다. 맛있는 과일을 준비해 두고, 먹을 고기를 좀 사다 놓고, 겨우 고사리 삶는 물을 올려놓을 뿐이다 그리고 가끔 마르는 고사리를 뒤척일 뿐이다.








엄마는 며칠을 분주히 지내시다가 집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엄마가 남기고 간 흔적을 냉장고에서 찾는다. 두고두고 먹어도 한참을 먹을듯한 양의 음식에 깜짝 놀란다.



아마 당분간은 오시지 않을 것이다. 제주에 고사리가 없으니까.




비행기를 타야만 만날 만큼 멀리 사니 일 년에 고작 세네 번 보는 것이 전부이다. 가까이 살았으면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이 봤을 것이다.



나이가 이렇게나 많이 먹었는데도 가끔 엄마 아빠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이 글을 쓰다가 점심을 먹는다. 오이소박이를 보며 엄마의 사랑이 여기 있구나 느낀다.



당장에라도 친정에 가서 눕고 싶다. 삶이 너무 팍팍하다. 오늘은 오이소박이를 더 많이 먹어야겠다. 그럼 좀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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