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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떠날 준비

by Blair


요즘은 제주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다. 사실 글을 쓸만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너무도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는 바다도, 오름도, 맛집도 심지어 돌담도, 야자수도, 고사리도, 주택살이도 그 모든 것이 다 새롭고 신기했다. 그러나 그러한 시절을 지나고 또 한참의 시간이 흐르니 더 이상 신기하지도 않고, 재미도 덜하다.



제주에 산 첫 해에는 정말로 완벽했다. 제주 일년살이 정말로 꿈만 꿔오던 삶이 이루어졌던 것이었다. 아쉬웠다. 그래서 딱 일 년만 더 살고 싶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마지막으로 한 해만 더 살자고 했다.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될 만큼 제주를 즐기면 이제 더 이상 그리워할 것도, 아쉬워할 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3년까지만 해야 했다. 4년이라는 시간이 가까워오자 이제 모든 것이 그만하고 싶어졌다.



그냥 지금은 육지에 사는 것이랑 비슷하다. 물론 바다가 가까운 것도, 조금만 가도 여행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전혀 다르긴 하다. 그러나 분명 특별한 것이 없다. 이제 모든 것이 다 익숙해진 기분이 든다.








제주! 그동안 엄청나게 재밌었다. 진짜 잘 놀았다. 정말 잘 놀았다. 바다면 바다, 관광지면 관광지, 오름이면 오름, 맛집이면 맛집, 카페면 카페 정말 놀 것이 무궁무진했다. 물론 더 할 수 있는 것이 많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는 마음이 들만큼 잘 지냈다.



특히 마지막으로 한라산을 다녀왔더니 정말로 제주에서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기분이 들었다.

'다 했다. 이제 제주에서 할 일을 다 했다' 그 후로 제주를 떠나기로 한 마음에 더 가속이 붙었다.



사실은 언제고 내가 원하는 때에 떠나면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 누가 잡은 적도 누가 억지로 이곳에 놓은 적도 없다. 그동안 내가 떠날 용기가 없었다. 분명 떠날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 그만 가자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제주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엄청난 행운이었다. 아이는 신나게 놀기만 해도 될 만큼 어렸고, 우리 부부에게도 여유가 넘쳤다.



태어나 처음으로 살아보는 이층 집이었다. 사실 2층에서는 거의 지낼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넓은 집에 마음도 넉넉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이는 작은 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과 가족처럼 어울렸다. 모두가 좋은 친구들이었고 그들은 좋은 부모님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멋진 카페가 많아서 좋았다. 카페 많이 다니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커피를 좋아했는데, 제주에서 원 없이 카페에 다녔다.



어디를 가도 바다와 오름이 그리도 갈 곳이 지천이라 심심할 틈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정말 바쁘게 놀았다.




제주는 어딜가도 바다에요






그러나 아이의 비염이 더 심해졌다. 그게 제주 때문이냐고 하냐만은 가까이 산이 있고, 집이 습하고 이러한 이유가 더 영향을 준 것은 맞는 것 같다. 어쩌면 아이에게 맞지 앉는 환경을 제공해 준 것 같아서 아쉽다.



우리 집이 도서관, 마트, 학원 이런 것들과 거리가 멀다 보니 편리함은 좀 아쉬웠다. 자주 가던 도서관도 가깝지만 걸어갈 수는 없었고, 종종 하고 싶었던 쇼핑도, 집 앞에 마트가 없어서 늘 차를 타고 장을 보러 왔다 갔던 것 그리고 도심과 약간의 거리가 있을 뿐인데 학원이 없어서 보낼 선택지가 적었다는 것 또한 아쉬웠다.




여러 가지 아쉬움은 있지만 이왕 떠나는 마당에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고 싶다.






얼마 전에 제주를 떠난 친구가 말했다. "제주는 꿈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좋은 사람들, 좋은 배경이 너무도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떠나고 나면 더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이제 진짜 제주를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지난봄 고사리를 캐러 온 엄마에게 말했다. '이번엔 쓰던 것들 다 버리고 가! 내년에는 오지 못할 테니 다 버리고 가'라고 말했다.



여전히 제주에 아쉬움이 남았다고 또 일 년을 더 있으면 이제는 정말로 싫어질 것만 같다. 그래서 그전에 떠나려고 한다. 한 5~10% 정도의 아쉬움이 남았을 때 말이다.




이제는 떠나도 괜찮다.

제주야 이제 그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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