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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사려고 버렸어.

by Blair

좋아하는 옷이었다. 봄과 여름 사이에 입는 원피스였다. 하늘색과 파란색 사이의 깊고 은은한 그런 옷이었다. 별로 비싸지 않던 옷이었는데 나에게 너무도 잘 어울리는 옷이라 아껴서 입었다. 게다가 그 옷을 입는 날이면 몇 살 정도가 젊어 보여서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조금씩 나이를 먹어갈수록 젊어 보이고 어려 보이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더 손이 가던 옷이었다.




그러나 하필 면으로 되었던 그 원피스는 세탁을 할 때마다 낡아갔다. 면이 아니었으면 그나마 조금 더 잘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세탁할수록 옷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짱짱하던 원단과 컬러는 점점 변해갔다. 그래서 아껴입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일 년에 한두 번 입고 잘 세탁해 걸어놓았다.



그러나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순 없었다. 게다가 아껴입는다고 옷을 더 오래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편하게 자주 입고 버릴 것을 그랬다.




게다가 그 와중에 나는 살이 더 쪄버려서 이제는 더 이상 못 입게 되었다. 매끈한 뒤태가 있어야 어울리는 옷인데... 더 커진 엉덩이와 울퉁불퉁한 내 몸을 드러낼 여건이 되지 못하니 보내줘야 했다. 사실 한두 번은 더 입을 수 있을 것만 같지만 그러기에는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았다.



결국 정리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물건을 정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요즘 입을 옷이 없다.



이 글을 보면 잠시 웃음이 나올 것이다. 옷장을 열어봐라 정말 입을 옷이 없냐고 물어보고 싶을 것이다.



며칠 전 옷장을 열고 옷을 고르다가 말했다.

"입을 옷이 하나도 없네~" 그랬더니 마침 옆에 있던 아이가 대답했다.

"맞아, 엄마! 여자들은 옷이 있어도 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고 했어"



물론 그 말을 하는 아이도 여자아이다. 매일 아침 옷장 앞에 서서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다 엄마에게 혼나고 쫓기듯 옷을 입고 가는 그런 상황이다.



그러니까 정말로 나는 입을 옷이 없어서 옷을 구매하고 싶은 상황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 옷장을 보니 여전히 입지도 않으면서 가지고만 있는 애매한 옷들이 있어서(여전히) 이번 기회에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우고 채우고 차곡차곡






그동안은 먼저 마음에 드는 옷을 사고 그 후에 옷을 버리는 것이 수순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옷을 사면 어쩔 수 없이 그것에 맞춰서 어쩔 수 없이 버리는 것들도 있었기 때문에 점점 더 옷을 사지 않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현명했지만 그러다 보니 미니멀리스트 생활이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며 패셔니스타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가진 것들을 잘 활용해서 예쁘게 코디해서 재밌게 옷을 입는 것이 내가 가진 옷장의 목표이다. 그러나 옷은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선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정말로 새로운 옷을 사기 위해 옷을 먼저 정리하는 것이다. 사실 옷을 먼저 사고 정리할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전에 옷을 정리하고 옷을 사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 내로 몇 년간 입지 않았던 옷이나 오래된 옷, 낡은 옷 중에 몇 가지 더 정리하려고 한다. 그리고 비워진 옷장을 채우러 새 옷을 사러 가야겠다. 물론 그렇다고 비워낸 만큼 옷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한 두 개 정도를 더 살 생각이다.




여전히 미니멀리스트와 패셔니스타 사이를 넘나드는 날들이지만 이런 것을 고민하는 순간도 참 즐겁다.



그럼에도 내가 가진 옷장부터 잘 활용하는 것부터! 앞으로도 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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