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낭만

제주, 마지막 관문

한라산 2

by Blair

한라산을 올라가는 성판악 구간은 총 9.6km이다. 그 절반은 숲길과 약간의 나무데크와 돌 위를 걷는 구간이 섞여있다. 3/4 지점부터는 완전 돌바닥 구간인데 경사가 있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 지점에서는 완전 야외이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다녀온 사진에서 얼핏 본 적은 있던 것 같은데 그런 길 일 줄은 상상을 못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구간은 모두 나무 데크로 이루어진 계단이다. 이곳은 완연한 야외인데 날씨가 수시로 변한다. 구름이 지나갈 때는 흐리기도 하고, 갑자기 잠깐 소나기가 내릴 때도 있고, 해가 쨍하고 내리쬐기도 한다. 그래도 눈이 아닌 게 다행이다.



어떤 글에 의하면 그 구간을 '죽음의 계단'이라고는 하던데 평소에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것이 돌 위를 밟으며 가는 것보다는 훨씬 편하고 좋았다. 그리고 여기만 끝나면 한라산 정상이라는 것을 아니까 더욱 힘내게 다. 물론 나무계단은 내려갈 때도 편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경우에 한라산 정상에 올라갈 때는 수월했다. 분명 올라가는 것도 힘들긴 했지만 내려오는 것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려올 때는 이미 정상에 올라갔다 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아니면 내려가는 구간이라 그런 건지 정말로 무릎이 아파오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힘들었다. 한라산 등반의 포인트는 하산할 때 이다.



특히 가장 힘들었던 구간은 한라산을 정상을 찍고 나무 계단을 내려온 후 만나는 돌바닥이다. 온통 돌로 이루어진 바닥이었는데 아래로 경사가 있어서 그런지 '이 돌을 잘못 밟으면 내 발은 삐끗하게 된다'라는 생각이 깔려있어서 그런지 굉장히 조심해서 내려오게 된다. 그래서 무릎과 발목에 힘을 주면서 당연히 무리가 가게 된다. 이때 등산스틱(지팡이)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몇 달 동안 발목이 아파 꽤 고생을 하고 있던 터라 한라산 등반이 망설여졌었는데, 결과부터 말하면 발목은 전혀 무리가 가지 않았다. 오히려 다녀와서 무릎이 정말 아파서 고생했다. 그래도 무릎은 당일저녁 찜질을 하고 아니 아픈 것이 금방 사그라들었는데 그동안 안 쓰던 근육이 많이 놀랐다. 흔히 '알이 배었다'라고 표현할 때가 있는데 허벅지 부분이었다. 그래서 서고, 걷는 것은 그나마 괜찮았으나 앉았다 일어날 때, 특히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신음이 나와서 힘들었다. 마치 막달 임산부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기분이었달까. 한숨에 한 계단 이러면서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러나 이러한 진통도 사나흘에 끝이 났다. 해볼 만한 등반이었다 지나고 보니 한라산 등반 별것 아니네!







내가 느끼고 왔던 몇 가지 팁을 조금 말해볼까 한다. 너무도 소박하고 개인차가 있지만 그래도 알아두면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산을 자주 가는 사람이 아닌 것이 이렇게 티가 난다. 볕이 이렇게 셀지 몰랐다. 하필 팔토시를 한 개만 가져가서 아버지에게 하나를 (반강제로) 얻어냈다. 그래서 한쪽엔 하얀색의 팔토시를 다른 쪽에는 검은색의 팔토시를 했다.



아침에 씻지 않아서 모자를 썼는데... 캡 모자라 그런지 얼굴이 나와있는 공간이 더 많았다. 물론 집을 나오며 가볍게 선크림을 바르긴 했는데... 이 정도로 볕이 셀 줄 알았다면 선크림을 반드시 챙겨 와야 했다.



여름에 한라산을 오르는 등반가라면 팔토시는 필수이고, 모자와 선크림도 가져오면 좋다. 선크림이 짐이 될 것 같으면 그냥 모자나 손수건이라도 꼭 챙기면 좋겠다.






여름이라 그런지 물을 생각보다 더 많이 마시게 되었다. 330ml 3병을 가져갔는데 500ml 3병씩은 가져와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거기에 추가하여 달달한 음료수나 커피도 한 병 가져가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내 경우는 200ml의 작은 음료수를 한 개 가져갔는데 힘이 부족해질 때 한 모금씩 마셔주니 도움이 되었다. 물론 당연히 사탕이나 초콜릿도 도움이 되었다. 특히 내 경우 작은 사탕을 입에 물고 오랫동안 녹여먹으며 걸었는데 그것이 가장 큰 도움이었다.



예외적으로 이번 산행에 음식은 별로 필요 없었다. 김밥 한 줄과 오이 한 개 그 밖에 과일이나 사탕이면 충분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건 정말 개인마다 다르므로 먹는 것이 많이 필요하신 분들은 꼭 여유 있게 가져가면 좋을 것 같다. 그곳에는 음료 파는 자판기도 없기 때문에 어쩌면 생존에 걸린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잘 생각하고 챙겨가면 좋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름에는 라면과 뜨거운 물은 필요 없었다. 한라산 꼭대기에 해가 내리쬐는 데 그 빛이 굉장히 따갑고 더워서 그렇게 라면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겨울이라면 또 다른 얘기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너무도 힘들어서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아이스커피 한잔이 있었더라면 더 힘내서 내려올 수 있었을 것 같다. 커피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가져가길 추천하고 싶다.








사실은 한라산에 오를 때 남편과 함께 걷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부모님과 오르게 되었다. 부모님은 곧 칠순을 바라보는 연세라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도 무사히 다녀왔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부모님과 9시간 반을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다녀올 수 있어서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결혼하고는 이렇게 긴 시간 함께 붙어 있어 걷거나 이야기하는 기회가 적었는데 이번에 서로가 함께 하며 이야기 나누고, 물을 나눠마시고, 오이를 나눠먹고 하던 순간이 참 좋았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걷는 내내 두 분의 뒷모습을 보면서 훗날 이 순간을 많이 그리워할 것 같아서 틈틈이 영상으로 사진으로 많이 남겨놓았다. 때때로 어릴 적 부모님과 오르던 산이 떠올랐다. 부모님은 어린 우리를 데리고 종종 산에 올라가셨다. 오빠와 나를 데리고 함께 산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오가는 길에 간식과 맛있는 밥도 먹고 그런 휴일을 즐겼던 추억이 자꾸만 생각났다. 그때는 분명 부모님이 날쌘 다람쥐 같았는데 몸이 예전 같지 않은 부모님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함께 오지 못한 친오빠가 떠올랐다. 넷이 올랐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오히려 부모님과 함께하니 제일 젊은 내가 힘들어하면 안 되는 생각으로 씩씩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물론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남편과 아이와도 함께 오르고 싶다.



한라산 등반을 함께한 아버지와 어머니






한라산을 몇 번이나 올라갔던 사람들이 보면 코웃음 칠 글이지만, 겨우 제주에 사는 동안 꼭 한번 다녀오고 싶었던 곳이었다.



사실 한번 한라산에 올라갔다오면 다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겨울의 한라산이 점점 궁금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언젠가 내가 산을 더 많이 좋아하게 되고, 기회가 된다면 겨울의 한라산을 한번 다시 만나보고 싶다.

물론 희망사항일 뿐이다.







사실 두 번째 글을 쓴 가장 큰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한라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길은 마치 인생과 같았다. 한라산의 초입 숲길처럼 평탄할 것만 같은 인생이 어느 순간 돌길을 무수히 만나며 고비를 맞이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중간중간 편한 나무 데크를 걷기도 한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면 결국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내려올 때 만났던 돌길은 정말 수준이 달랐다. 그러나 경사가 급한 돌길이 엄청나게 계속될 것 같은데 중간에 갑자기 평탄한 길이 나타나기도 하고,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과 벤치가 있어 중간중간 쉴 수 있게도 해준다. 정말로 한고비 한고비 마치 미션을 깨는 게임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적어도 인생이 계속 돌길처럼 힘들기만 한 게 아니라, 중간중간 나무 데크나 벤치처럼 쉬엄쉬엄 쉬며 즐거움도 쫓고, 재밌게 지낸다면 인생이라는 그 과정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정상을 향해 가보기는 해야겠다는 마음을 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라산을 다녀오며 인생력이 10 정도는 상승한 것 같다. 앞으로도 여러 순간들이 내 인생에 나타날 테니 그저 묵묵히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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