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1
제주에 꽤 오랫동안 살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 가야 하는데... 한 번쯤 가긴 가봐야 하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엔 그곳에 꼭 가보고 싶은데 할 때도 있었고, 어떤 날에는 못 가면 말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바로 '한라산 정상 등반'이다. 가봐야지 하던 것이 벌써 4년 가까이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작년 가을 10월 어느 멋진 날에 한라산에 등반하려고 예약해 놨다가 취소하는 일이 있었다. 하필 그 전날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날 교통사고를 당하며 '한라산에는 절대 가지 말라는 경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가지 않았다. 아이를 혼자 놓고 가거나 맡기고 가기도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혼자 한라산에 오르고 싶지도 않았고, 다친 발목이 아팠고 등등등... 핑계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까짓 핑계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한 번은 꼭 올라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부모님께서 제주에 놀러 오시는데 아버지께서 한라산에 등반하자는 의견을 전달하셨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몇 달 전 무릎 수술을 하셨기 때문에 과연 올라가는 게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의지가 강하셔서 이번 기회에 부모님과 함께 한라산을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혼자 가기 싫은 마음이 컸는데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날씨요정과는 전혀 반대의 사람이기 때문에 늘 제주에 오시면 비와 눈을 만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부모님과 나의 몸의 컨디션도 걱정되므로 안 갈 수도, 혹은 못 갈 수 있다는 생각도 잠시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당일까지 날씨도 몸 상태도 모두 괜찮았고 마침내 우리는 한라산에 등반을 시작할 수 있었다.
등산 당일 오전 5시 무렵 기상을 했다. 평소라면 엄청 피곤하겠지만 오히려 개운했다. 어제저녁 챙겨놓은 짐을 가방에 넣고 출발했다. 집에서 30여분 차를 타고 가야 성판악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판악 주차장에 도착해 한라산에 입산하는 순간의 시각은 오전 5시 50분이었다.
한라산 입구는 아직 어둑어둑했다. 이제야 막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조금 걷고 있는데 등 뒤에서 해가 떠올랐다.
사실 등상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마음이 반반이었다. 몸의 컨디션이 안 좋으신 부모님이 계시니 너무 힘들어하시면 내려가자. 혹은 나라도 꼭 혼자 한라산 등반에 성공하자! 이런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나 우리 셋은 모두 빈속이었다. 워낙 아침 일찍인 시간이라 무엇을 먹고 올라가는 것보다 그냥 가는 것이 나았다. 특히 내 경우 전날 먹은 저녁이 덜 소화된 상태에서 잠든 터라 무엇을 먹고 올라가면 배가 아플까 봐 더욱 무엇을 먹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빈속으로 올라가는 것이 소화도 되어가는 듯하며 몸도 가볍고 편했다.
한라산 입구에서 속밭 대피소까지는 1시간 20분이 걸린다. 그 기간은 아주 가뿐히 올라갔다. 걷는 길도 아주 평탄하고 잘 관리되어 있어서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었던 것 같다. 며칠 전 2만보씩 걸으며 다녀왔던 여행이 큰 도움이 되었다.
말로만 듣던 속밭 대피소에 도착했다. 처음 휴식하는 속밭대피소에는 아주 시원한 물이 나오고 있다. 그곳에서 화장실을 갔다가 손을 씻었는데 정말 시원했다. 그곳에서 잠시 쉬며 가져갔던 오이를 꺼내 먹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걷는 동안 물로 수분을 보충했고, 힘들어질 때는 사탕을 하나씩 입에 물고 올랐는데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 한라산 등반의 1/3 지점에 도착했는데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이다. 속밭대피소를 조금 넘어가서부터는 돌밭과의 싸움이다. 경사도 조금 있는데 그 아래 돌로만 이루어진 길이 계속되기 때문에 그것을 밟고 올라가는 것이 조금 불편했다. 하지만 그래도 올라갈 때는 별것도 아니다. 내려올 때가 이 돌밭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게다가 몇 달 전 발목 다친 것이 온전히 낫지 않은 상태라 발목이 다치지 않게 조심하느라 더 긴장했던 것 같다.
한라산 2/3 지점을 거의 올라갔는데 그때 이미 정상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날라서 내려오고 있었다. 정확히 날아오지는 않았겠지만 마치 축지법을 쓰는 느낌으로 콩콩 뛰면서 가벼운 몸으로 내려가고 있어서 신기했다. 나중에 내려올 때 보니 내려오는 것이 훨씬 어렵고 힘들었기 때문에 더욱 그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게다가 올라갈 때 슬리퍼 신고 올라가는 젊은이들도 보았다. 뒤로 멘 백팩도 아니고 에코백을 들고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뒷동산에 놀러 온 분위기였다. 가장 부러웠다. 어느 컨디션에도 가볍게 한라산을 올라가는 청년들이 부러웠다. 심지어 우리보다도 더 빨리 올라갔다. 그 젊음이 가장 부러웠다.
정말 걷고 또 걷는다. 생각보다 다른 생각은 별로 들지 않고 끝까지 올라가야지 하는 마음만 든다.
마지막 구간을 남기고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했다. 다리를 수술하신 아버지보다 한라산을 몇 번 올라와보신 그러나 무릎이 아프신 어머니가 더 힘들어하신다. 이곳에서 쉬고 계시라고 권유했지만 어머니는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 더 올라가고 싶어 하셨다.
진달래 대피소에는 마지막 구간 1시간 반 정도만 오르면 된다. 3시간을 올라왔고 1시간 반만 가면 된다. 중간에 가져간 김밥과 간식을 먹고 힘내서 올라갔다.
저 멀리 한라산 꼭대기가 보인다. 얼마 안 남았다. 고지를 조금 남기고 쉬고 있는데 먼저 갔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해주며 힘을 더해주었다.
조금만 더 힘내서 올라가자.
등산로에서 서로에게 웃으며 건네는 인사와 힘을 북돋는 말들 그리고 나눠먹는 사탕이 참 도움이 되었다.
드디어!!! 한라산 정상에 도착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무려 4시간 반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그 시간이 거짓말 같았다.
정상에 데크가 쫙 깔려있었다. 그 오른쪽에는 다른 사진에서만 보던 정상석이 있었다. 저곳에서 인증사진을 찍는 것이 목표였다. 드디어 찍게 되다니 감동적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사진이었다. 칠순을 바라보는 부모님과 한라산을 올라오다니... 부모님이 건강하셔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백록담도 볼 수 있었다. 조그맣게 고여있는 물이 있었는데 하늘색과 같은 물이 신기했다. 내려가 볼 수 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정상에서 가져간 김밥과 간식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실 올라가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했고, 즐거웠다.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는 목표가 있어서 그런지 힘든 것은 당연했고 사실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 그러나 올라가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내려가는 길이었다. 올라왔을 때 돌을 밟고 내려갈 때마다 무릎과 발목이 조금씩 무리가 느껴졌다. 겨우 올라온 길을 내려가는 것인데 그 길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장장 5시간을 내려갔다. 오히려 내려가는 길 무릎이 점점 무리가 가며 아파왔다.
오히려 내려가는 길에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어서 입술을 꼭 깨물며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 몸이 천근만근이라 굴러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총 9시간 반의 산행을 마쳤다.
그리고 마지막 인증서까지 프린트하며 내가 정말로 한라산에 도착했다는 증서까지 얻을 수 있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앞으로 마음을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드는 하루였다.
한라산 등반을 함께한 부모님이 정말 대단하시다고 느꼈다. 이렇게 건강하신 부모님이 정말 자랑스럽다.
한라산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
*글이 길어져 2탄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