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서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기'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싹 바뀌는 마치 영화 같은 장면처럼 말이다.
평소에 나는 늘 익숙하고 안정된 것만 추구하는 편인데, 어느 순간 이렇게 아주 새로운 것만 찾고 싶은 순간이 한 번씩 찾아온다.
그렇게 한참 상상만 하다가 용기를 내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했다.
나와 가족만 그대로이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사는 곳, 가는 곳, 먹는 것 심지어 타는 차까지 모든 것이 모두 새로운 것이다.
지난 글을 쓰고 다시 이렇게 자리에 앉기까지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분명 처음 오는 위치의 카페이지만 너무도 익숙한 브랜드의 카페에 왔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새로우니 사실은 조금이라도 아는 곳에 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아이스 라테를 주문했다. 커피를 한 모금 쭉 마셨는데 이미 알고 있던 맛. 갑자기 모든 것이 안정되는 기분이다. 분명 모든 것이 새로워지길 외쳤으면서 결국 익숙한 것이 그리웠다.
이곳에 도착한 지 벌써 보름이 훌쩍 넘어간다.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기 위해 나는 필요한 것들 채워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집을 구하고, 집에 필요한 세탁기, 냉장고, 침대, 청소기등을 구비하고, 이곳에서 지낼 때 나의 발이 되어줄 차를 샀다. 어느 정도 큼지막한 것을 끝냈으니 이제 거의 다 되었나 생각할 즈음 다시 제대로 시작했다. 늘 사용하고 익숙한 것들 그러나 지금 내게는 없어서 불편한 것들을 모두 새로 구비해야 했다.
내 기준 꼭 필요한 것들만 골라 하나씩 두 개씩 꼭 필요한 것만 품목을 적어가며 구매했는데... 그 과정은 너무도 귀찮았다. 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물건이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인간이 새로운 곳에 정착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너무도 많았다.
사실 막연하게 새로운 곳에서는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내가 원하던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할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현실은 당장 밥을 해 먹을 냄비부터 챙겨 온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이었다. 이럴 거면 쓰던 것들을 모두 가져왔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짐의 용량은 한정적이었다. 겨우 큰 트렁크 2개와 작은 트렁크 2개가 전부였다. 심지어 작은 트렁크 한 개는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한 의약품(의약품)과 한국 전통선물로 가득 채웠고, 사계절 중에 겨우 여름옷과 봄가을 옷 몇 벌을 들고 왔다. 아이 것을 챙기다 보니 내 겨울옷은 입고 온 것이 전부였다.
아무튼 밥 해 먹을 냄비는 있으니 당장 요리를 할 수 있는 프라이팬이 필요했고, 그릇과 숟가락은 당연할뿐더러 매일 잠을 자기 위해 이불과 베개도 필요했다. 샴푸는 물론 세탁세제 심지어 설거지를 위한 퐁퐁과 수세미마저 사야 하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랩이나 일회용 비닐 또한 늘 당연히 갖고 있어서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것들은 내겐 모두 필요한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것이 꼭 가지고 있지는 않아도 되었지만 많은 것들이 있을수록 편리했으므로 내게는 마치 필수품처럼 모든 것이 필요했다.
꼭 필요한 것...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최소한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결국 말뿐인가. 오늘은 고무장갑을 샀다.
분명 꼭 필요한 것만 사야 하는데 어쩌면 내게 고무장갑은 있어야 하는 존재인 것 같다. 하루 세끼를 만들며 하루 종일 설거지하다 보면 손이 거칠어지니 고무장갑이 필수가 된 것이다. 고무장갑뿐만이 아니다... 내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겨우 이런 것까지 있었다니 하고 놀라고 놀랄 뿐이다.
앞으로 내 일상에 꼭 필요한 것이 얼마나 더 있을까?
당장 햇빛으로 그을려지는 몸을 보니 선크림도 사야 할 것 같다. 휴... 필수품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벌써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