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에드만 -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영화 에세이

by 분의일



이 영화는 독일 영화다.

익숙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나라의 이야기다.

그 나라의 법체계를 사용하고, 그 나라의 차를 타고, 그 나라의 축구를 본다고 해서 그 나라의 영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자기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 인간이 타국에 사는 타인이 만든 영화를 이해하는 건 무리다.

좀 구차한 변명이려나!

에세이를 쓰기 위해 이 영화를 이해해 보려 애써 보지만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과 며칠간의 되새김질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영화에세이라기보다는 영화를 매개로 드러난 내 안의 잡념들에 가깝다.


모르는 것을 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된 노동이다.

이미 부족한 에너지를 그런 일에 쓰고 나면 당을 충전하거나 잠을 보충해야 한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은 문제들은 몸 안 구석구석에 쌓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단단하게…

내 표피 아래 만져지는 몽울들이 그렇게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든다.


영화 〈토니 에드만〉에는 다양한 갈등이 등장한다.

직장 내 갈등, 국가 간 갈등, 성별 간 갈등,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녀의 갈등.

이 갈등들도 오랜 시간 풀리지 않아 꽤 단단해진 듯하다.


“오 마이 갓. 아빠가 왜 거기서 나와?”


집에 간다던 빈프리트가 딸 이네스의 직장과 사교의 공간에 다시 등장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순간이다.

더벅머리 가발과 툭 튀어나온 의치를 낀 빈프리트는 아무렇지 않게 이네스의 친구들 사이에 끼어든다.

변장을 했지만 이네스는 곧 알아챈다.

빈프리트 또한 딸을 속이려는 의지는 없어 보인다.

이네스는 잠시의 충격을 뒤로하고 어색한 상황을 받아낸다.

당황했을 법한 이네스는 의외로 빠르게 적응하고,

정작 불편함을 느끼는 쪽은 화면 밖에서 이를 지켜보는 나였다.


왜 불편했을까?

나라면 이런 상황에 얼굴이 뜨거워지고 눈꺼풀에 경련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를 침범한 아버지는 무례한 사람이 되고,

나는 그 자리를 빠져나가거나 강하게 제지했을 것이다.


이네스의 친구들 또한 낯선 이를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속으로 불편할지언정 겉으로는 그 기묘한 침입자를 대화의 장 안으로 받아들인다.

이 장면 또한 내겐 이질적인 풍경이다.


내 불편함은 어쩌면 내가 가진 ‘경계’에 대한 감각이 이 영화의 세계와 맞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빈프리트의 침입은 무례한가, 용기인가?

이네스의 반응은 수용인가, 체념인가?

나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내가 가진 기준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다름’이 거기 있다.


이미 난 이런 실수를 했다.

아버지 빈프리트는 68 혁명의 시대를 지나온 세대이고, 딸 이네스는 신자유주의의 한복판에서 성과와 효율을 요구받는 세대다.

이 관계를 한국의 386세대와 MZ세대의 갈등으로 단순히 치환하려 했다.

그것은 나의 게으름과 무지로 비롯된 잘못이었다.

독일의 68세대가 품은 이상과 좌절, 그들이 겪은 역사적 맥락은 한국의 386세대와는 다르다.


그래서 나는 각 세대를 정의하는 노력을 포기했다.

대신 갈등의 원인을 좀 더 고민해 보았다.

갈등의 원인은 서로의 ‘다름’에 있다는 뻔한 결론이 남았다.


이해하려는 태도는 언제나 옳지만 항상 가능하지는 않다.

수천 년 전 철학자들도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이분법이란 편법을 썼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같은 이유로 갈등한다.

수천 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해 왔지만 여전히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어차피 이해 못 할 거면 그냥 다름을 ‘인정’하며 살면 안 되나?

좀 비겁한가? 너무 손쉬운 타협인가?


생각해 보면, 〈토니 에드만〉 속 이네스도 결국 그런 생각을

한건 아닐까?

영화의 끝날 무렵 이네스는 할머니의 모자와 아빠의 의치를 끼워보지만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벗어낸다.

그녀는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한 건 아닐까!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타인의 다름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것.

불편함을 감내하면서도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끝내기로 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나쁘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