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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Nov 21. 2024

세상의 마지막 첫사랑 8

너를 만나러 가는 시간

  "하아.. 미치겠네.."

 겨울에 스키장은 다녀도 동네 뒷산은 올라가보지도 않던 내게 등산복이나 등산화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고민 고민하다 결국은 청바지에 흰 운동화를 신고 나가기로 했다.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힙합 바지 시대가 가고 2004년 그 당시엔 다시 나팔바지가 유행했는데 둘 중 그나마 나팔바지가 나았다. 힙합 바지를 입고 온 산을 비질하듯 쓸면서 등산할 수는 없지 않은가..


 

 화장도 정성 들여 꽤 오랜 시간동안 했다. 평소엔 얼굴에 선크림이나 대충 바르고 다니지만 오늘은 - 비록 등산이지만 - 정식 첫 데이트이니 예쁘게 보여야지. 누구에게? 후진을 잘하는 멋진 오빠에게 말이다.



 그런데 등산하는 복장은 참 예뻐 보이기가 애매해서 우선 얼굴이라도 곱게 가꿔서 지훈이에게 어필해보려 한 것이다.


 

 복층인 내 오피스텔 1층에는 화장대와 옷장, 식탁 겸 책상과 의자, 싱크대, 작은 드럼 세탁기 등이 구비되어 있다. 화장대는 평소에 잘 쓰진 않지만 지훈이를 만나고부터 나는 자주 화장대 거울 속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곤 했다.


 스스로에게 가장 자신 있는 부위는 역시나 얼굴형과 이마였다. 갸름한 얼굴에 톡 튀어나온 환한 이마는 우리 아버지도 인정한 나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물론 딸 바보인 아버지라 객관적이진 않은 시선이긴 하지만...



 그 흔한 쌍꺼풀 수술조차 하지 않은 나는 이만하면 빼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비록 평범하고 밋밋하긴 해도 그래도 자연산 미인 쪽에 가까 거라고 마음속으로 내 외모에 대해 늘 작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쌍꺼풀 진 적당한 크기의 눈은 이마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부위였다. 어릴 때부터 눈이 예쁘다는 말을 종종 들었기 때문이다. 은수야, 가만가만... 근데 눈만 예쁜 건 아니고? 크하하! 에라, 모르겠다...



 비록 동글동글한 코가 쪼금, 아주 쪼금 낮아서 그렇지 이도 건치에 가지런했고 키도 168cm는 되니 꽤 봐줄 만한 몸매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나의 생각을 한 번도 입 밖으로 표현해 본 적은 없다. 그냥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 뿐.



 볼터치가 너무 과했나.. 오랜만에 한 화장이 어색하기만 하다. 거울 속의 비친 나의 모습은... 화장이 많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뭐, 안 예쁘면 어때! 원래 인기는 연예인 같이 아주 예쁜 애들만 있는 건 아니다. 얼굴이 평범하고 밋밋해도 몸매 좋고 성격 좋으면 되는 거야. 오히려 너무 예쁘면 부담스러워서 남자들이 못 다가서지.



 손재주가 없어 서투른 솜씨에도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까지 그려가며 때론 발라가며 눈 화장에 특히 공을 들였다. 내가 제일 자신 있는 부위가 이목구비  중에 그나마 눈이었으므로..


 그런데 언제 산 건지 기억도 안나는 화장품을 바르니 오래돼서 그런지 눈도 살짝 따갑고 아이라이너는 벌써부터 좀 번지 것 같기도 했다. 지웠다가 다시 바르고, 덧 바르고 그렇게 한참을 화장하는데 띠링~ 지훈에게서 문자가 왔다.


 은수야. 이제 회사에서 출발해. 도착하기 5분 전에 전화할게.


 꺄아아아악!! 저번부터 계속 반말이네.. 근데 반말이 이렇게 멋있는 거였나? 뭔가 더 박력 있어 보이기도 하고..



 나도 오늘은 슬쩍 말을 놓아볼까? 그러면서 지훈 씨 말고 오빠라고 해보는 거야. 뭐, 한 살 오빠도 오빠긴 하니까.. 지훈이는 막내로 자라서 아마도 '오빠'란 호칭에 환상이 있겠지? 분명 좋아할 거야...


 지훈의 짤막한 문자에도 혼자 끝도 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그러다 이내 그가 곧 도착할 거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토요일이라 많이 막힌다 해도 30분이면 올 거리인데.. 마음이 급해진다. 오랜만에 립스틱을 꺼낸다. 신입생 시절 친구와 백화점 가서 샀던 C 사 제품인 것 같다. 오래되긴 했는데 몇 번 바르지도 않은 거라 아깝기도 하고 대체제가 없어서 일단 꺼내서 바른다.



 윽. 립스틱이 상하기도 하나?

 오래돼서 그런 건지 이상한 맛이 난다. 그래도 바른다. 일단 바른다.



 나를 데리러 오는 운전 잘하는 그 오빠한테 그저 조금이라도 예쁘게 보이고 싶다. 썩은 맛이 느껴지더라도 파리한 내 입술을 붉게 만들어주는 그 색을 기꺼이 바른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입술색이 참 곱고 예뻤다.



 주 5일제 근무는 아직 시범단계라 토요일도 출근한 지훈이를 기다리던 그 시간이 나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충분히 나 자신을 가꾸고 준비할 시간을 가져다준 선물 같았다.

 


 그동안 가끔 화장하고 꾸미고 나가긴 했어도 이렇게 특정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토록 온 신경을 써본 적이 있었는가? 단연코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훈이의 차는 하얀색 suv였다. 지난번에 딱 한 번 타봤는데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멀리서도 운전석에서 빛이 났기 때문이다. 아주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사실 내 눈엔 지훈에게는 한낮의 태양보다도 더 눈부신 후광이 있었다.


 그 눈부신 빛 같은 사람이 깜빡이를 켜며 차를 인도 쪽으로 잠시 붙여 주더니 창을 내리며 내게

 "은수야! 타!"라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준다.


  "안녕하세요."


   조수석에 올라타면서 난 다소곳하게 인사를 했다.


 "어? 말 높이는 게 더 편해요?"

 "아무래도 아직 몇 번 안 봐서... 입이 안 떨어져요."

 나는 말 끝을 얼버무린다. 사실 반말이 익숙지 않고 내 입에서 안 나오기는 했다.


 "그럼 나도 말 안 놓을게요. 더 친해지면 서로 말 놓기로 합시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더 존대했던 것 같다. 서로 말 놓기가 안된다면, 그걸 빨리 하자고 재촉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상대방이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주는 그의 모습을 통해 나는 다른 이를 배려하는 방법을 지훈에게서 조금씩 배우게 된다.



 지훈이는 나랑 나이차도 얼마 나지 않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현명하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후진뿐만이 아니라 운전 자체를 참 잘했다.



 우리는 베스트 드라이버 지훈 덕분으로 주말이라 많이 막혔던 도로를 무사히 뚫고 인왕산 자락 중턱에 차를 세우게 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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