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빌딩 전문가 앞에서 리브랜딩 PT
체질 개선(안) : 리브랜딩
사장님은 전용경기장을 기반으로 팀이 바뀌길 바랐다. 계기만 있으면 조직원들이 변화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사장님의 높은 스탠다드를 감당할 내부 인력이 없었기에 외부 인력을 찾았던 것 같았다. 이렇게 변화를 원하는 조직의 상황은 기획자에겐 기회다. 내부자가 아닌 외부자의 시선으로 구단을 바라봤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았다. 프로축구연맹에서의 경험을 잘 살려보라고도 하셨다.
허니문 이펙트로 끝나면 안 된다
사장님의 가장 큰 고민은 애써 대구시에 제안한 새 경기장이 완공됐을 때 관중이 반짝 오다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도심 안의 전용구장이라는 최고의 기회가 '허니문 이펙트' 혹은 '일시적 개장 효과'로 끝나는 상황을 우려하셨다. 팀의 성적과 경기력은 당신이 워낙 꿰뚫고 있는 분야라 크게 걱정 안 하는 눈치였다. 젊은 직원들이 많은 회사였지만 아이디어가 대부분 위에서 아래로 하달 되는 구조였다. 오랜 경험으로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고 젊은 아이디어와 지치지 않는 실행력이 필요한 영역이 있다는 것이 고려되거나 반영될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밑에 직원들은 뭘 하려는 의욕이 넘쳤지만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늘 머뭇거리기 일쑤였다.
체질개선
구단의 겉과 속을 모두 바꿔야했다. 브랜딩이라고 하면 겉모습만 바꾸는 걸로 생각하는데, 일하는 방식과 생각을 바꾸는 일이다. 개인의 생각과 일하는 방식의 합이 브랜드 그자체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조직문화 전체를 손대는 작업이다. 대구FC에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만드는 상황들이 많았다.
여타 스포츠단이 그렇듯 군대와 같은 분위기에서 근무해야했다. 느는 것은 눈치 뿐이었다. 휴가도 쉽게 갈 수 없는 분위기였다. 프로젝트를 하다 결과가 안 좋으면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실패를 그 일을 한 사람에게 묻는데 누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까. 아이디어가 생각나도 꺼낼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러다보니 다들 어떤 일을 했을 때의 이득보다 실패시 손실을 먼저 계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시도를 꺼리게 하는 구조를 바꿔야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행동을 반복할수록, 뇌는 그 행동들을 하는 데 더 효율적인 구조로 변한다고 한다. 신경과학자들은 이를 ‘장기적 강화’라고 부르는데, 최근에 패턴화된 행동들을 기반으로 뇌에서 뉴런들의 연결이 강화되는 것을 말한다. 조직에도 뇌에서 일어나는 장기적 강화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뉴런들을 직원들이라고 해보자. 어떤 행동에 어떤 보상이 따르느냐에 따라 뉴런들이 그 방향으로 강화된다. 브랜딩은 우리 구단이 바람직하게 여기는 가치와 그에 따른 보상 체계를 잡아주는 방향으로 진행이 돼야 할 것이다. 리브랜딩은 기업의 겉모습 뿐 아니라 일하는 방식까지 바꾼다.
커뮤니케이션 갭을 줄여주는 시각화
어떻게 브랜딩이 일하는 방식에까지 영향에 미치냐고?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뭔지 한 번 생각해보자. 일을 하다가 서로 어떤 이벤트에 대해 의견을 나누거나 영입할 선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생긴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말로 설명하는 것이 빠를까? 보여주는 것이 빠를까? 보여주는 것이 가장 빠르다. 언어는 사람마다 서로의 배경과 이해도가 다르기 때문에 자칫하면 오해를 부르기 쉽다. 회사 입장에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커뮤니케이션 효율성이 떨어져 두 번 하게 되면 귀중한 인력들의 시간과 회사가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날리는 셈이다. 즉, 회사의 목표나 진행 방향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시각화 통해 내부 구성원과 외부 고객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비주얼 아이텐티티나 시각적 장치들을 체계화 하는 것이 브랜딩이 회사 조직 문화에 기여하는 일 중 하나다.
리빌딩 전문가 앞에서 리브랜딩 PT
대표이사님을 모시고 전체 직원 앞에서 리브랜딩의 당위성을 설명해야 했다. 프로축구연맹에서 정몽규 총재(현 대한축구협회장)와 연맹 위원들을 모시고 한국프로축구 승강제 네이밍 및 브랜딩 담당자로 PT를 한 경험이 있었다. 외국계 마케팅 대행사에서도 마이크로 소프트와 같은 굵직한 회사의 이사 앞에서 제안 PT를 했었다. 이상하게 그 어느때보다 떨렸다. 자료를 준비하는 며칠동안 안경을 살짝 내리고 내 눈을 쳐다보며 질문하는 대표님의 꿈을 꾸기도 했다.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축구에 대해서는 사장님 만큼 전문성이 없지만 홍보마케팅과 브랜딩 분야는 나도 오랜기간 깊이 생각해왔다. 사장님이 바로 판단하시기 쉽게 자료를 만들기만 하면 해볼만한 승부였다. 사장님이 입버릇 처럼 말하는 것을 해결할 요량으로 PT를 준비했다.
"직원들도 프로다 아니가. 단디 해야 된데이. 선수들만 프로가 아닌기라. 우리가 직원들 처우도 확 개선해주고 하는 이유가 그만큼 일을 제대로 하라는기다. 홍섭이 니 연맹에 있어놔서 알 거 아니가. 대구 자금 사정하고 이전에 직원들이 받았던 대우 말이다. 다들 열심히 하지마는 내 눈엔 아직 멀었다.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가야 된다. 직원들이랑 잘 지내고 후배들 잘 알려줘라. 단디 해라고 내가 캐쩨?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고"
단디 VS 뙇
단디라는 단어에는 '체질개선'이라는 의도가 숨어 있어 보였다. 대구로 이적이 결정되고 나서 조광래 대표이사의 이력을 살펴 봤다. 어딜 가든 팀의 수준을 자기가 원하는 기준에 부합하게 만드는데 도가 튼 사람 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구단의 체질개선을 도와야 한다. 그럼 내가 하려는 브랜드 체질개선이 뭘 가져올 것이고 왜 해야하는지를 한 번에 사장님 뇌리에 '뙇' 박히게 설명해야 해.
나는 가끔 '뙇'이라는 단어를 쓴다. 발표를 할 때 상대방이 내가 제안한 생각에 '뙇'하고 납득하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걸 '뙇'이라는 단어 외에 적절하게 설명할 방법을 아직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혹시 더 나은 단어가 있음 제안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