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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섭 Oct 22. 2023

브랜드 재생(2)

리빌딩 전문가 앞에서 리브랜딩 PT



 제안 당일의 분위기



 사장님을 중심으로 직원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공개 처형대 앞에 선 포로가 된 기분이었다. 특히 수사자 갈귀 같은 머리를 목까지 늘어뜨린 가운데 앉은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끌려 나가 댕강 목이 날아갈 것 같았다.

 

 키노트를 열었다. 어떤 프로젝트든 어떤 글이든 처음에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하면 끝이다.



 어떤 느낌 어떤 직관



 햇볕이 부서져 내리는 하늘에 나이키 모양의 구름이 떠있는 그림을 보여준다. 구찌 로고가 그 다음으로 나온다. 사장님께 친숙한 브랜드 두 개를 먼저 배치했다. 취향저격이 됐으려나? 이후 삼각별 벤츠가 나오고 챔피언스리그 로고가 나온다. 오히려 사장님은 챔피언스리그 로고에 반응을 하셨다. 역시 축구에 진심인 자. 챔피언스리그 로고를 누르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식전 세레모니 장면으로 이어진다. 초록색 잔디 위에 깔린 시트지 위로 별이 둥글게 수놓인 모양의 챔피언스로고 천을 20명 남짓의 사람이 함께 들고 흔들고 있다. 왼쪽에는 검은 색과 흰색의 유벤투스로고. 오른쪽에는 축구계의 로얄 팸, 왕족 레알마드리드의 왕관 쓴 로고가 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이 장면을 녹화하고 있다. 물론 우리를 새벽마다 깨우고 설레게 하는 챔피언스리그 테마곡이 흐르고 있었다.


 벅찬 감동이 고조에 이르자 대구FC 로고를 띄웠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후 하늘색 바탕에 어떤 느낌 드셨나요?라는 글자를 띄운다. 아직 사장님과 직원들에게 대답을 얻을 필요는 없다.





그저


'응?어떤 느낌이 들었지?'


 라는 생각만 하게 해도 성공이다.





 다음 화면에서 어떤 한 사람의 머리에 햇볕이 비치는 그림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떤 느낌이란 단어를 왼쪽 위에 직관 이라는 단어를 아래에 둔다. 사람의 시선은 좌에서 우로 간다. 그래서 메인 키워드인 어떤 느낌을 좌에 두고 그것을 좀 더 풀어쓴 직관을 아래에 뒀다.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소비하는 것 같지만 직관에 의해 소비를 한다는 사실을 어필하고 저 브랜드들이 어떤 느낌을 줬다면 그것은 그 브랜드가 오랜기간 쌓은 브랜드 자산이라는 것을 설명했다. 그리고 직관을 가지는데 있어서 빠르게 인식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어필했다.


 그 다음은 하늘색 넥타이를 맨 남자를 위에서 내려다 본 화면이다. 잘 닦인 그의 구두 앞에 화살표가 있고 앞에서 본 나이키 구찌 벤츠 대구FC가 일렬로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까지 본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 프리젠테이션의 목적이 뭔가? 혹은 저 놈 뭐하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 프리젠테이션의 가장 큰 목적은 이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어필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브랜드들을 복잡하고 정리가 안 된 대구FC의 로고와 나란히 뒀다. 조 대표님의 무의식에 우리 로고가 뭔가 좀 밀리는데라는 생각만 해도 성공이다.



 좋은 브랜드는 마법의 열쇠





 뇌가 최대한 빠르게 인식하려면 강렬하거나 단순해야한다고 설명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다음 장에서 열쇠 화면을 보여주며 강제로 주입식 설명을 한다. 좋은 브랜드는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해 뇌리에 꽂히는 마법의 열쇠와 같다고. 앞의 그림들을 잘 따라오며 이해한 사람들에게 이 문장은 깊이 와닿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와닿지 않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태껏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렸다.



 7 < 3.5



 이젠 팩트로 모두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줘야할 시간. 대구FC 로고를 보여준다. 오른쪽 아래에 7이라는 숫자를 배치해 둔다. 사람들은 7이라는 숫자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의 궁금증에 답을 할 시간이다.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 구단은 로고 커뮤니케이션에 7가지 색상(흰색 포함)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현실적인 비교군을 비교 대상으로 놨다. K리그 1에 있는 축구팀들의 엠블럼에 들어간 색상의 평균 숫자가 화면에 나타낸다. 우리 팀을 제외하고 총 11개 팀이다. 다들 화면을 주목했다.


 3.5





 이때 직원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성공이다. 근거를 마주한 모두는 감정적 동요와 더불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리가 2배 더 많은 색상을 쓰네. 어쩐지 우리 엠블럼이 뭔가 좀 복잡해 보이는 이유가 있었네'


 사장님을 슬쩍 봤는데, 다른 구단들의 엠블럼이 나온 페이지에서 시선이 멈춰 있었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관심이 없을 경우 자료를 빨리 넘긴다. 휘적 휘적. 내가 만난 임원급은 다들 그랬다. 눈을 사로잡는 것이 없다는 걸 몸의 언어로 좌중에 알리는 것이다. 한 페이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관심을 가진다는 증거였다.



 '스탠다드'



우리는 시각에 대부분의 정보를 의지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각으로 많은 것을 판단하면서 시각에 대해 꽤나 무시를 한다. 피티를 준비하며 7 vs 3.5에 가장 많은 힘을 쏟았다. 사장님은 앞선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의 스탠다드를 높이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축구는 머리로 하는 거라며. 행정도 머리로 하라고 하셨다. 생각을 자주 하라고 했다. 그런 사장님이라면 K리그 스탠다드에 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만 환기 시켜드리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봤다.



 인식의 순서



 사람들의 인식의 순서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는 시각에 대부분의 정보를 의지합니다. 인간의 뇌는 형태를 먼저 인지하고 색상을 인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콘텐츠는 맨 마지막에 읽힙니다. 뇌가 이를 인지하는 데 더 많은 프로세스 즉, 노력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태가 복잡하거나 색상이 많은 것은 인지 측면에서 매우 불리합니다."


 

인식의 순서 - 앨리나 휠러 '디자이닝 브랜드 아이덴티티'



 

 나는 브랜드 네임에서 우리 구단이 참고할만한 사례를 대표님께 보여드렸다. 파리 생제르망은 파리라는 도시의 가치를 높게 판단했다. 엠블럼에 그 기조가 반영이 됐다. 파리라는 글자가 기존 엠블럼에 비해 얼마나 커졌는지 확인 할 수 있다. 이 사례에서 우리가 착안할 점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렸다. 우리는 지역을 대표하는 시민구단이었고. 어떤 팀보다 연고에 더 가치를 둬야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구단 엠블럼의 대구라는 워드마크의 크기가 더 커질 필요성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다.





네이밍은 20%의 크리에이티브와 80%의 정치적 결정으로 이뤄진다.

-대니 알트만-



 심벌 마크인 태양은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대체할 수 없는 정체성의 느낌이 강했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K리그에 최초로 시민구단이라는 태양이 떠올랐다'는 문장과 이미지를 생각했다. 이것이 대구라는 도시의 끈끈함과 뜨거움을 대변한다고도 봤다.


 끝으로 구단 전체 브랜드의 아키텍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실무자적인 내용이지만 사실 전사적인 노력과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간단하면서 대표님이 알기 쉽게 설명을 했다. 우리의 다음 스탭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발표를 끝냈다.


 어떻게 됐을까? 리빌딩 전문가는 자신 앞에 놓인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을까? 물론이다. 새로고침 버튼은 눌러졌고 지난한 리브랜딩 과정은 이제 모든 직원 앞에 놓이게 됐다. 경기장 뿐 아니라 조직 모두의 변화의 싹이 움트던 2017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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