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의 정체성
우리 안에 다 있다
정량조사로 부족한 부분은 팬들과의 좀 더 깊은 대화를 통해 해결했다. 내게 또 다른 인사이트를 제공해준 팬과의 대화를 공개한다. 그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성적과 관계 없이 대구FC를 응원한 팬이다. 평생의 짝도 대구FC를 응원하다가 만났다고 한다. 그들에게 이 팀의 의미는 남달라 보였다. 'K리그를 왜 보냐. 대구FC는 인기도 없지 않냐. 성적도 안 좋고' 라고 은근한 무시를 받던 시절부터 이 팀을 지켜왔다. 이제 우리가 주목 받는 팀 됐으니 그들은 어떤 기분을 가지고 있을까? 인디 밴드 시절부터 응원한 홍대 인디 밴드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는 느낌일까? 그의 말을 들어보자.
"대구FC는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던 시절부터 우리가 직접 뛰어다니면서 만든 팀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2002 월드컵 끝나고 붉은 악마로 인연이 된 회원들 몇이 모여서 우리 동네에도 우리 지역에도 프로축구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구시에 건의도 했죠"
이 대목에서 나는 J리그의 '동네에서 세계로' 라는 슬로건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러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을 지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는 말까지 이어졌다. 여러 말들이 한 번에 연결되는 폭발적인 경험을 했다.
'결국 모든 것이 우리 동네에 우리 한국 안에 우리들 개개인 안에 있구나'
는 깨달음을 얻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퍼포먼스 이슈로 등지지 않는 이유
내가 물었다.
"성적과 관계없이 팀의 홈과 원정에 동행하고 응원하는 이유가 뭘까요?"
당연한 거 아니냐는 표정으로
"우리가 만든 우리들의 축구단이니깐요. 가족 같아요"
그랬다. 당시 내가 자주 반복해서 보던 마케팅 그루 사이먼 사이닉의 TED 강의의 한 장면이 바로 내 머리속에 소환이 됐다. 사이먼 사이닉의 TED 강의 Why good leaders make you feel safe를 잠시 재생해보자.
위대한 리더, 부모, 팬의 공통점
"제가 위대한 리더에 대해 드릴 수 있는 가장 비슷한 비유는 부모가 되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대단한 부모가 되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원하는게 뭡니까? 무엇이 대단한 부모를 만드나요? 우린 아이들에게 기회와 교육, 그리고 훈육을 필요로 할 때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성장했을 때 우리가 그럴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이 이룰 수 있게끔이요."
잠시 말을 멈춘 그가 청중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위대한 리더들도 똑같은 것을 원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기회와 교육, 그리고 훈육을 필요할 때 제공하고 싶어합니다. 자신감을 세우고 시도하고 실패할 기회를 주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이룰 수 있게끔 말입니다. 만약 가족이 힘든 일을 겪고 있다면 단 한번이라도 아이 한 명을 버릴 생각을 하실 건가요? 우린 절대 그러지 않을 겁니다."
왜 사이먼 사이닉의 강의가 대화 중간에 내 머리에서 어른거렸는지 알겠다. 정확히 같은 관점이었다. 다시 그의 말로 돌아가보자.
"그는 잘할 때나 못할 때나 우리 팀이잖아요. 계속 응원할 수 밖에 없어요. 더 잘하길 바라는거고. 쉽지 않겠지만 구단 분들도 힘내주세요."
부모는 자식에게 팬은 팀에 자신을 투영한다
투영하며 To Young(젊은 시절로 향한다) 한다. 자신과 같은 DNA를 가진 존재를 보고 응원하며 과거의 자신을 응원한다. 자식을 응원하는 마음엔 자기가 못 누려본 기회와 교육에 대한 회한이 서려있기도 하는 것이다. 브랜드와 팬의 애착 관계는 이렇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축구단이 좀 더 깊다. 브랜드는 실망하면 바꿀 가능성이 있지만 축구단과의 관계는 좀처럼 끊어내지 못한다. 완전한 객관의 관계가 아니다. 남들은 별 관심 없지만 자식자랑 하는 사람 있지 않나? 남들이 내 팀에 관심가져주길 바라며 홍보하는 팬의 마음도 이와 닮아있다. 그제서야. 나는 오랜기간 축구 비즈니스에 대해 품어오던 의문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왜 꼴찌를 해도 강등이 돼도 일부 팬들은 팀을 떠나지 않을까? 죽이니 살리니 하면서 응원할까?"
팬의 인터뷰와 테드 강연을 통해 알게 됐다. 자식이 공부를 못 한다고 버릴 순 없는 노릇인거다. 물론 일부는 자식이 탄 버스를 막아서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며 나오라고 하기도 한다. 성적이 좋아야 내 자식인 극성인 학부형이 더 많은게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축구산업의 기반은 이런 끈끈한 유대감이라는 사실이었다. 팬과 팀 사이의 이 관계를 언어화 하면 DAEGU, Deep Trust였다. 한 번에 와닿지 않기 때문에 바로 쓸 수는 없었다. 좀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젊은 직원들과 스폰서들과의 인터뷰에는 팀에 대한 기대가 담겼다. 대구다움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인터뷰에 참가해준 모든 분들이 크거나 작게나마 영향을 미쳤다. 이 자리를 빌어 고개숙여 감사를 드린다.
-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