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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섭 Oct 22. 2023

WE ARE DAEGU 기획(3)

대체 불가의 정체성



대체 불가의 정체성 : 한국 최초의 시민구단



대구FC의 대표부터 팬까지 모두가 우리는 한팀이라는 연대 의식이 있었다. 또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대구FC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기여를 했다. 우리 안의 대체 불가의 정체성은 한국 최초의 시민구단이었고, 이해관계자들은 이러한 자부심을 '우리들의 축구단, 대구FC'라는 언어로 표현하고 있었다.


 '한국 최초의 시민구단'과 '우리들의 축구단, 대구FC'의 의미를 한번에 다 담을 수 있는 단 한 문장을 찾기 위해 고심을 했다.  자료를 취합한 후 기획자들이 반드시 해야하는 작업. 브랜드의 에센스가 되는 문장을 정갈하게 내리는 작업은 늘 어렵다. 나는 일이 이렇게 막힐 때면 온라인 무기고를 연다.


 온라인 무기고에는 내가 직접 경험하며 믿게 된 몇 가지 원칙들이 거치돼 있다. 브랜드 에센스나 빅 아이디어를 찾을 때 자주 쓰는 예리한 칼 같은 문장을 꺼냈다.



 'Less is more'



 적을수록 풍부하다는 로버트 브라우닝의 말이다. '덜'이라는 음의 개념과 '더'라는 양의 개념을 동격으로 표현함로써 역설이 주는 진리를 나타내는 명문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 되는 개념이긴 한데, 나는 디자인 을 할 때 이 문장을 이렇게 사용한다.


 "덜 드러내야 더 많은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왜 그런 것일까? 그림을 감상한다고 생각해보자. 너무 사실적인 그림이나 지나치게 친절한 그림은 나는 오히려 불편하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꼭 그렇게만 보길 바라는 것 같다랄까? 내가 해석에 개입할 여지가 줄어드는 느낌이다.


 '한국 최초의 시민구단이자 우리들의 축구단인 대구FC'라고 쓴다고 생각해보자. 물론, 이렇게 쓸 일은 대게 없다. 설마? 없겠지? 있나? 이 문장을 읽으면 어떤 감정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저 서술에 그친다. 너무 자세하게 설명해서 내가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다른 감정을 넣을 공간이 하나도 없다. 일방적이다.


 나이키의 유명한 슬로건 Just do it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개입할 여지가 많다. 누구에게 뭘 어떻게 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문구 하나를 던져 놓는다. 그런 차원에서 디자인이나 글쓰기에서 덜어내기나 빼기는 굉장히 중요하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럼 Less is more이라는 칼을 한 번 휘둘러 보자. 중복되는 내용을 합치거나 빼보자. 우선 한국 이건 사족이니 그냥 빼자. 넣고 싶은 분은 그대로 두면서 따라와도 괜찮다. 정답은 없으니까. 시민구단과 우리들의 축구단이 중복이 된다. 우리라는 단어는 중히 써야하니 시민구단을 빼겠다.


 - 최초 우리들의 축구단, 대구FC


 음. 괜찮아 보이나? 아직 더 뺄 여지가 있어 보인다. 축구단과 대구FC가 겹친다. 축구단을 빼기로 했다. 대구FC라는 브랜드명은 더 자주 노출돼야 하니깐.


 - 최초 우리들의 대구FC


 최초라는 의미를 이 안에 담기가 참 어렵다. 최초라는 문장이 전체를 좌초시킬 위기에 놓였다. 최초가 매우 중요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잠시 배제해보자.


 - 우리들의 대구FC


 어떤가? 좀 나아보이지 않나?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해야한다. 엠블럼 리뉴얼을 위해 직원들에게 자주 물었던 질문이기도 한데 여러분과 다시 한 번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대구와 FC 중 어떤 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더 많이 담고 있는 표현일까?


 그렇다. 대구다. FC는 축구단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FC를 빼보겠다.


 - 우리들의 대구



 우리는 대구 or 우리 대구



 Less is more 원칙에 따라 최총 후보로 '우리는 대구'와 '우리 대구'가 남았다. 당초의 자세한 설명 보다는 내가 문장에 개입할 여지가 많아졌다. 개입할 여지를 줘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미지와 언어는 팬들 입장에서는 방아쇠 혹은 불쏘시개가 돼야 한다고.



 이미지와 언어라는 불쏘시개와 방아쇠



  이미지와 언어만 보면 바로 어떤 감정이 불처럼 타오르거나 반사적으로 뇌가 행동의 방아쇠를 당기게 되는 것 말이다. 대구FC는 아직 그런 브랜드 자산이 없었다. 나이키의 Just do it이나 애플의 Think Differnt 같은 이미지와 언어 말이다. 두 메가 브랜드를 보고 불이 붙거나 방아쇠를 당기는 주체는 역시 고객이다. 브랜드를 정의하는 것도 그들이다. 그러니 팬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문장 하나를 줘야 한다. 어떤 맥락에서 그들이 우리 브랜드를 접할지 모른다. 그러니 자신들의 가치관을 투영할 만한 여백을 품은 심플한 문구를 고객들의 손에 쥐어줘야 한다.



 낯설게 하기



 우리는 대구라는 문장이 아름다웠지만, 너무 뻔해 보이는 느낌이 있었다. 우리들의 축구단이라는 슬로건에 익숙해진 팬들의 뇌리를 강하게 때릴 낯선 형태로 변경이 필요했다. 낯설게 하기에는 외국어만큼 좋은 게 없다. 동네에서 세계로 나갈 팀이니(결국 2019년 국제선 타고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감) WE ARE DAGUE 라고 적어놓고 후배와 같이 괜찮니 어땠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WE ARE DAEGU라는 구단의 비전을 담은 장기 슬로건이 탄생했다. 사실 더 복잡한 기획의 과정과 의미 부여의 과정이 있었지만, 내용이 길어지니 여기선 그만 적도록 하겠다.


 다시 류승범으로 돌아가자. 왜 갑자기 류승범으로 가는지 모르시는 분은 'WE ARE DAEGU 기획(1)'을 보고 오면 된다( https://brunch.co.kr/@16a306985d06436/230) 류승완 류승범 형제는 외모만큼이나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외모가 좀 더 잘생긴 류승완이 감독으로. 외모가 상대적으로 평범하다고 여겨지던 류승범이 배우로.



 브랜드도 천성을 연기해야 한다



 류승완은 감독으로서는 성공했지만, 배우로서는 큰 감명을 주지 못했다. 궁금하신 분은 영화 짝패를 찾아봐라. 배우로는 좀 어색한 모습이었다. 감독이 그의 천성인 것이다. 류승범은 양아치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한다. 양아치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봐도 양아치 그자체였다. 류승범은 기본적으로 날린다. 예전에는 양아치로 지금은 자유로움으로 보인다. 여튼 둘다 날리는 느낌이다. 그 날림이 그가 가진 기질이라는 생각이다.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날것의 천성을 그는 연기하고 있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그의 연기가 우리에게 와 닿는다고 생각한다.


 브랜드도 천성이 있다. 타고난 기질 혹은 그렇게 생겨먹은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대구FC가 전북과 울산 같은 방향으로 브랜딩을 전개했다면 어땠을까? 최강 대구. 이런 느낌. 실적이 쌓이면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 있다.


 브랜드도 류승범처럼 천성을 연기해야 한다. 그래야 보는 이의 마음에 깊이 가 닿는다. 그래야 대체 될 수 없다. 류승범도 독특한 자신만의 영역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것을 천성이라고 하기도 하고 대체불가의 정체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구FC의 디자인 자문위원인 이태희 교수님은 대체불가의 DNA라고 표현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랬다. 우리는 DNA중 가장 발현 가능성이 높은 딱 하나의 형질을 극대화 시키는 브랜드 연구자가 돼야 한다.

 

 안방에 누워 만화책만 보고 있던 류승범은 연기라는 재능을 류승완에 의해 발견 당했다. 우리 기획자들의 과제도 마찬가지이다. 브랜드에 새로운 감각을 제대로 선물 하려면,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를 잘 세세히 살펴 천성에 맞는 역할을 극대화 시켜줘야 하는 것이다.



빌려온 생각들



 WE ARE DAEGU라는 이 문장은 대구FC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빌려온 생각이다. 나는 모두의 도움으로 발견한 이 문장을 새로운 전용구장에 경험으로 구현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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