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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섭 Oct 22. 2023

WE ARE DAEGU 기획(1)

대체불가한 정체성



  류승완이 양아치 연기자 찾듯



 리브랜딩을 할 때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뭘까? 다들 고개를 들고 외부에서 미래를 실마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미래의 실마리를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이 왜 문제일까? 브랜드가 가야할 방향성을 찾지 못했기에 리브랜딩이라는 탐색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수도 있다.  


 그런 의문을 잠시 덮어두고 류승완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류승완 감독이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준비할 당시 이야기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어려웠지만, 배우 섭외가 특히 어려웠다고 한다. 다른 배역은 어찌저찌 다 구했는데, 양아치 역할을 맡길 배우를 못 찾았다고 했다. 류 감독은 "양아치 역할을 할 배우를 사방팔방 찾았다. 도무지 구할 길이 없어 집에 왔는데, 웬 양아치 한 명이 방에 누워있었다"며 그렇게 어렵게(?) 류승범이라는 배우를 집에서 캐스팅 했다고 밝혔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속 류승범 



 우리가 가진 것?



그렇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가리켜 '류승완 양아치 연기자 찾듯 한다' 또는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다. 이미 가까이에 우리가 정말 필요한 것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우리는 늘 잊는다. 우리 안에 가장 큰 가능성과 재산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구단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자산을 면밀히 검토했다. 구단이 가진 자산 중 가장 가치 있어 보이는 자산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최초 시민구단' 이라는 사실이었다. 시각적 자산 중 가장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은 단연 하늘색의 구단 고유의 색이었다. 이렇게 하나 하나 구단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자산들을 새롭게 정리함과 동시에 리브랜딩을 위한 본격적인 조사를 했다. 구단 내 외부를 열심히 다니며 정성조사와 정량조사를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했다. 이를 통해 대구FC와 관계된 이해관계자들이 생각하는 현재 구단의 자산과 앞으로 구단의 주요 자산으로 발전시켜야 할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정성조사 



 조광래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직원 인터뷰를 먼저 진행했다. 사장님의 대외 인터뷰와 구단 보도자료를  면밀히 살폈다. 구단이 가진 가장 가치있는 인적 자산이기에 꼼꼼히 체크했다. 축구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누구보다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었고, 축구인과 경영자 양쪽 모두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입체적 인물이기에 가장 많은 참고를 했다. 



축구와 시민구단이라는 기본기



 대표님은 기본기를 강조했다. 축구의 기본은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좋은 축구상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팬들 가슴에 울림을 줄 수 있다고. 그 울림이 동력이 돼 팀과 나를 동일시하고, 우리 팀으로 자랑스러워 한다고 했다. 시민구단의 기본은 축구를 통해 대구라는 공동체와 함께 숨을 쉬는 것이라고 덧붙이셨다. 두 기본만 잘해내면 된다고 했다. 



 팀  



 직원 인터뷰는 어땠을까? 보통 높은 직급의 답변이 더 나을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대구FC가 축구팬들에게 향후 어떤 모습(이미지)로 전달되기를 원하십니까? 동물이나 사물로 표현 된다면 어떤 모습이 되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문항에 넣었었다. 구단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원하는 구단의 이미지상을 찾고 싶기도 했고, 동물이나 사물로 표현해준 것을 가지고 내가 새로 구상하고 있는 캐릭터의 힌트를 얻을까 하는 욕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김홍범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자, 호랑이 등 왕의 이미지 보다는 독립적으로는 강하지 않지만, 단체가 되었을 때 강해지는 동물. 끈기 있는 동물. 빠르고 날카로운 역습. 늑대, 들개, 코뿔소, 표범 등"


 인상 깊은 답변이었다. 특히 '왕의 이미지보다 단체가 됐을 때 강해지는' 이라는 워딩이 너무 맘에 들었다. 한 명의 스타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팀으로의 결속력이나 조직력으로 전세를 뒤집는 팀의 기본적 정체성과도 닮아있었다. 이 워딩은 지속적으로 나의 뇌리에 남아 리브랜딩에서 개인의 강함보다 팀으로서의 '유대감'을 강조하게 되는 계기가 돼주기도 했다.



 더할나위 없이 좋은 우리 존재     



 대구FC를 사랑해 하늘색 미니를 타고 다니고, 회의 때마다 주제에 맞는 유니폼을 입고 등장하는 이태희 교수님의 말도 내게 큰 영감을 줬다. 


 "시민구단들이 비록 행정은 더디고 문제가 많을 수 있지만 시민구단이라는 그 자체의 가치는 매우 뜻깊고 우수해요. 바르셀로나나 맨시티(눈치없이 교수님께 맨시티는 만수르의 구단이라고 말씀 드렸더니, 시민구단만 지향점이 되란 법이 있냐고 말씀하시며 덧붙였다. "가장 각광 받는 하늘색 팀 정돈 목표로 잡아야지"라고.)처럼 되지 말라는 법 있어요? 이번 기회에 팀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한 번 제대로 만들어봐요. 실망하시지말고. 폐쇄적 조직에서 체감적 변화가 생기기까지는 미니멈 10년 걸려요"


 그렇다. 우리 구단도 조광래라는 보호막이 사라지면 간섭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대구에서 대체 불가한 존재가 돼야했다. 시민구단이라는 미명하에 타 시도민 구단들에 이뤄지는 지나친 간섭은 줄이고 시민구단이 가진 가치는 살려가야한다. 



 정량조사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팬 인터뷰를 빼놓을 순 없었다. 스폰서와 엔젤클럽도 우릴 응원해주는 고마운 팬이기에 인터뷰를 했다. 다만 대면 인터뷰를 담당자인 내가 직접 한 것은 아니었고 업체를 통해서 했다. 아무래도 내 몸은 하나고 구단의 이해관계자는 너무나도 많았다. 경기장에 직접 찾아올 팬들은 다양했다. 그렇기에 정성적 조사만 할 수 없었다. 정량적 조사도 병행했다. 정량적 조사는 소셜미디어에서 했다. 앞으로 우리 기획자들이 데이터에 기반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점점 많아질 것이다. 사람들이 #대구FC로 적어놓은 글만 모아도 그 안에 우리에 대한 팬들의 생각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들이 온라인 상에 남긴 발자국을 따라 걷다보면, 우리가 가야할 길이 보이는 듯 했다. 어떤 글에는 우리의 부족한 점이 보였고 어떤 글에는 팬들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한 우리와 관련된 내재된 욕망이 숨어있었다.



 -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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