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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섭 Oct 22. 2023

독점(1)

우리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독점이다


 전술의 재구성 : 공을 독점해라



출처- 스포르트


 

 공은 하나 뿐이다. 그러니 네가 가져야 한다

 - 요한 크루이프 -



 현대 축구 전술에 대한 글을 읽다가 만난 요한크루이프의 말이다. 그는 점유율 축구의 근간이 되는 생각을 축구계에 던진 사람이다. 공을 상대방 보다 의도적으로 더 오래 소유하는 것이 요한 크루이프 축구 철학의 핵심이다. 공을 최대한 오래 소유하기 위해 크루이프는 각 선수들의 역할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내 팀에서는 골키퍼가 첫 번째 공격수고, 스트라이커가 첫 번째 수비수다

 -요한 크루이프-


 한 마디로 선수마다 고정된 역할이 없고 공의 점유에 따라 매번 역할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축구선수 11명에게 고정된 포지션을 부여하던 기존 사고에서 골키퍼는 공만 잘 막으면 됐고 스트라이커는 골만 잘 넣으면 됐다. 스트라이커가 수비를 해야한다는 개념은 가히 파격적이었다.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힘을 아꼈다가 폭발적으로 대시해 골을 넣는 장면을 보고 자랐기 때문일까? 손흥민이 수비를 하기 위해 전력으로 뛸 때마다 저 힘을 아꼈다가 공격에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요한크루이프의 말은 동시대의 사람 뿐 아니라 나같은 무지랭이조차 축구를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해줬다. 이후 현재 가장 뛰어난 감독으로 여겨지는 펩 과르디올라가 요한크루이프의 철학을 이어받아 독점에 가까운 볼 점유율을 목표로 하는 '티키타카'를 완성시켰다.



생각의 재구성 : 비즈니스를 독점해라



 같은 게임을 보고 남과 다른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행해 전체 판을 이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기획자의 역할이다. 문제를 발견하고 새롭게 정의하는 힘이 요한크루이프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믿음이 내겐 있다.  


 축구 비즈니스의 궁극적 목표는 뭘까? 내가 속한 산업은 어떤 비즈니스를 메인으로 가져가야 하는가? 나는 늘 이 질문을 품고 있었다. 프로축구연맹에서도 대구FC에서도 다들 열심히 일을 하는데 비해 결과는 기대에 늘 못 미쳤다. 도대체 우린 뭐에 집중을 해야하는거지? 경기력? 스타선수? 팬 서비스?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무는 나날이 쌓여 10년을 훌쩍 넘긴 2018년 초 어느날, 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경기에 지면 뭘 할 수 없어요. 위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니 눈치만 볼 수 밖에 없어요."


 어느날 회의실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와 마케팅을 해보자는 나의 이야기에 후배가 볼멘 소리를 한다. 후배 말대로 경기에서 패한 뒤 사무국은 자숙(?) 또는 충전 모드로 들어가곤 했다. 상사도 사장님께 드릴 보고를 당분간은 안하는 게 좋겠다고 내게 눈치를 주곤 했다. 축구단에 있어 승리는 지상 최고의 과제이고 유일한 성과 같았다. 그날따라 후배의 말이 왜 그렇게 아프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축구단은 승리를 파는 비즈니스 인가? 패배는 가치가 없나? 그럼 패배가 승보다 많은 팀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는 건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대구FC의 승과 패 비율을 한 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마치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연맹 기록 사이트로 로그인을 했다. 자료를 보면 2부리그 격인 K리그 챌린지에 있을 때인 2016년 시즌을 제외하면 대구FC는 기본적으로 승보다 패가 많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선수단의 질이 좋고 깊이가 풍부해야 성적이 좋다. 좋은 선수단을 갖추려면 연봉 총액이 높아야 한다. 자금 사정이 뻔한 시민구단인 대구FC가 패가 많은 이유이다. 


2016년 19승 13무 8패


2017년 11승 14무 13패


2018년 14승 8무 16패


 2018년 초의 그래픽을 보면 빨간 색으로 그려진 패배 표시가 유독 초반에 몰려있다. 이때는 정말 뭘 할 수 없었던 분위기가 맞았다. 팀이 자칫하면 2부리그로 강등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팀에 가득했을 때였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성적을 기준으로 봤을 때이다. 한 사람의 기획자로서는 1년 뒤 있을 전용구장 개장 오픈을 위한 빌드업이 한창 이뤄져야 하는 중요한 시기기도 했다. 그런 중요한 시간을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대표님이 아무말도 안해도 알아서 몸 사리는 상사가 더욱 새로운 일에 대해 조심스러워져 프로젝트 진행이 늘 난항이었다. 


 나는 또 다시 생각했다. 


'지면 사랑 받을 수 없는 걸까? 현재 우리는 절반 이상을 질 수 밖에 없는 팀인데. 선수단 구성도 다른 팀에 비해 나을게 없고 예산도 적은데, 승보다 패가 많은 기간도 있을건데. 지면 이렇게 죄 지은듯 자숙의 시간만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사이로 스치는 어떤 이미지들이 있었다. 


 연패 속에서도 팀을 계속 응원하는 가변석의 팬들이 먼저 떠올랐다. 7위가 딱이라며 7위한다고 '칠버풀'이라고 놀림 받던 리버풀 팬이 그래도 리버풀을 응원한다며 You will never walk alone을 부르는 장면. 


출처 - tvN


 멍때리기 대회에서 우승한 한화팬의 웃픈 사연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대회 참여 계기를 묻는 질문에


 "10년째 한화 팬인데, 한화 이글스 선수들에겐 죄송하지만 경기를 보면 멍 때리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며 


 '한화 팬들한테 멍 때리기는 그저 일상인데 뭐 대회까지 하고 그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기사에 이어지는 그 다음 말이 감동이었다.


  "한화 선수들이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저희도 많이 서운했으니까 서로 샘샘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10년째 한화 팬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한화 팬일 예정"


 이런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팬들이 승리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 승리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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