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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섭 Oct 21. 2023

이적생 투입

기획자의 역할


 영입의 목적


 

이적시장에서 용병을 영입한다고 생각을 해보자. 목적은 하나다. 영입을 통해 팀이 더 나아지는 것.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할 세 가지 질문이 있다.


 첫 번째, 팀에 이미 있는 유형인가? 없는 유형인가? 팀에 있는 유형이라면 스쿼드의 뎁스를 깊게 가져간다는 의미에서 비슷한 유형의 선수들과 비교 우위를 따져본다. 팀에 없었던 새로운 유형이라면 좀 더 모험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팀에 변화가 필요하거나 팀의 전술이 바뀌는 시기가 아니라면 꺼려지는 선택일 수 있다.


 두 번째, 검증은 됐나? 각 리그 환경에 따라 선수들의 퍼포먼스가 달라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금이 풍부하다면 리그 내 검증된 선수를 데려오는 일이 수월하겠지만 그만한 돈을 가진 팀은 극소수다.


세 번째, 팀에 잘 녹아들 것인가? 앞의 두 가지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뛰어난 용병이라도 팀 분위기에 적응 못 해 실력 발휘를 못하는 경우가 있다.



 실전 투입



 K리그 이적시장이 열리고, 나는 대구FC 사무국에 용병으로 합류했다. 영입의 목적은 앞서 말했듯 단 하나, 영입을 통해 사무국이 나아지는 것. 조광래 대표이사와의 첫 면담에서 나는 '무한자유 무한책임'이라는 작전 지시를 받았다. 사무국에 새로운 시선과 감각을 불어넣어 줄 팀에 없던 유형의 선수로서의 내 역할을 기대하셨다.


 그전까지 직원들이 당연히 봤던 것이 사장님 눈에 당연히 보이지 않는 지점이 있으셨던 것 같았다. 기획자인 내겐 그 지점이 언제나 늘 중요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 당연하지 않게 한 번 더 파고들어 보는 것.



정신병 말고 정신력으로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우리는 전용구장이라는 새로운 미래를 다르게 맞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용구장이 생긴다고 오지 않던 관중이 갑자기 올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대구스타디움에 있는 지금부터 그동안 안 했던 노력들을 하나씩 해야 했다.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가 필요했다.



발견 : 창문 안을 들여다보다



 그런 맥락에서 용병적 시각에서 발견한 팀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승리에 지나치게 과몰입했다. 사장님과 선수강화부야 그럴 수 있다. 프로축구단이 모두 추구하는 목표인 승리를 가성비 좋은 가격에 사와야  했기 때문이다. 모든 신경을 거기에 올인해야 한다. 우리 같은 중소클럽은 전략적으로 선수를 영입해야 했다. '최소비용 최대효과'의 야구를 추구하는 머니볼로 유명한 피터브랜드의 말을 보자.





'당신의 목표는 선수를 사는 것이 아닌 승리를 사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는 보드진에 홈런을 뻥뻥 때려대며 팬들을 만족시키지만, 비싼 선수가 의외로 승리에는 기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통계로 보여준다. 대신 그보다 홈런은 덜 치지만 출루율이 높아 팀에 득점을 가져올 수 있는 선수들을 영입해야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선수가 승리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득점이 승리를 가져온다고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선수들은 당시 저평가 받고 있어서 영입비가 많이 들지도 않았다.

 

 우린 이름값뿐인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이 아닌 승리를 영입하는 데 주력해야 하는 팀이었기에 대표님과 선수강화부의 어깨가 무거울 만했다. 선수강화부 외에도 내가 속한 홍보마케팅팀도 승리가 지상 명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승리에 모든 포커스를 맞춰 홍보와 마케팅을 진행했다. 이 부분은 추후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둘째, 대외 의사소통의 일관성이 부족했다. 특히 디자인적인 관점에서 그랬다. 홍보마케팅팀 내 김홍범이라는 직원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언론홍보에 디자인과 영상 편집일을 하며 겨우겨우 상황 상황에 맞는 디자인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이건 대구FC 꺼야' 라는 명확하고 직관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셋째,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보도자료를 비롯해 대외로 나가는 모든 것들이 그랬다. 이건 공조직의 특징(대구FC는 시민구단이다)이기도 한데, 중심 아이디어 하나가 빤짝이며 시작됐다가 결재 라인을 올라가면서 이 말이 더해지고 저 말이 더해졌다. 결국 온갖 아름다운 언어의 옷을 걸친 기괴한 상태의 아이디어가 되거나 여러 가지 메시지가 혼합돼서 정작 누구에게도 와닿지 않게 됐다. 상대방이 이 말 저 말 정신없이 너무 수다스러우면 듣고 싶지 않지 않나. 그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팬들에게 말만 거는데 팬들은 뭐야?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넷째, 하는 일은 많은데 정작 해야 할 일은 집중하지 않았다. 가령 이렇다.


"아니 왜 홈경기에 직원들이 전동차를 저렇게 막 몰고 다니고 물건 나른다고 뛰어다니고 A보드를 들고 다녀요? 이러면 정작 중요한 일을 못 하는데."


"아. 괜찮아요. 저희 때는 이거보다 더 많이 했어요. 직접 해야 애들 실력도 늘죠."


 "실행은 우리보다 더 전문적으로 잘하는 이벤트 대행사가 있잖아요. 우린 기획해야죠. 새 경기장 지어지면 우리 직원들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다 저렇게 맹목적으로 뛰기만 하면 누가 새로운 기획을 하겠어요. 기획하면 자기가 뛰어다니고 들고 날라야 하는데. 일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지기 어려운 구조 같은데요?


 그렇게 여러 이견 조율을 거쳐 기획은 직원이 실행은 대행사 중심으로 일을 하게 변경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밑에서 올라오는 기획이 확 늘어난 것은 아니다. 이건 지난 편에 말했듯 기획하는 자리에 있는 직원들의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오히려 기획에 운영까지 하는 대행사 직원이 가져오는 기획이 더 좋은 경우가 많았다.



가운데 옛날 로고가 버젓이 협약식 사진에 올라와 있다



다섯째, 아낄 것을 안 아끼고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을 아낀다. 사무국에 떡하니 예전 로고와 현재 로고가 섞여 있었다. 그런 장소에서 오피셜한 사진이 찍히고 있었다. 심지어 옛날 로고가 박힌 파일철과 사무용품은 외부에 들고 나가기도 했다. 이것은 정말 큰 일이었다.


 '예전 구단 로고가 팬들 SNS나 기자들 뉴스나 광고 이미지에 나오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군.'



공식 행사에 계속 사용되고 있던 구단기와 파일철에는 구 엠블럼이 박혀 있었다


 

 내가 사색이 돼서 이거 왜 쓰죠 했다가 혼났다. 아직 멀쩡한데 왜 버리냐는 거였다. 우리 어머니 말씀이었다면 엄마 제발 좀 버리라고 했겠지만, 상사의 말이었기에 이해할 때까지 설득해야 했다. 하지만 도저히 말이 안 통할 때는 들키지 않는 선에서 감추어 두거나 일부를 창고에 두곤 했다. 대신 내가 앞으로 함께 해야 할 후배들에겐 나의 기준을 알려줬다.  


"애써 돈 들여서 성형수술 해놓고 예전 얼굴로 다닐래?"


라고 하며. 브랜드 자산을 돈 들여서 바꾼 후 그걸 제대로 쓰지 않는 것도 낭비라는 의식을 팀에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환기 : 가능성의 창문을 열다



문제점은 언제나 내게 곧 가능성이었다. 문제점들을 바로 잡으면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발견했으니, 해결책과 함께 사장님께 보고하는 일만 남았다. 나는 이제 막 이적해 창문 안을 들여다본 수준이었다. 오랜 기간 이곳을 매의 눈으로 관찰한 그의 손에 모든 것이 달렸다. 문제를 개선하는 가능성의 창문을 여는 것은 오직 그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물론 창문을 그냥 닫고 있는 것도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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