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다.
나름 현생을 사느라 정신없이 보냈는데, 오래간만에 강석희 작가의『녹색광선』을 읽고 감상평을 남기러 들렀다.
이 책의 말미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돌봄에서 희생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을까"
그 답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검은 돌 '묵묵'이다.
처음엔 다소 황당하게 들리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돌이 상징하는 바가 또렷해진다.
주인공 연주는 상처가 많은 인물이다. 첫 시작은 학교에서, 그다음은 가족에게서, 결국 그 상처를 주는 주체는 점차 좁혀져 '자기 자신'이 된다. 외로움과 상처가 깊어질수록 그녀는 자신에게 검은 돌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연주가 실물로 마주하게 되는 시점은 '채운사'의 동자승으로부터 건네받을 때다. 처음 본 검은 돌은 매끈하고, 얼굴이 비칠 정도로 맑고 완벽하다. 이 완벽에 가까운 검은 돌은 연주에게로 넘어가 친구들(혜영, 다해, 정연)에게로 옮겨진다. 그때부터 검은 돌은 '묵묵'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돌봄의 '대상'이 된다. 묵묵을 품은 연주는 서서히 안정감을 되찾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묵묵은 연주와 친구들 사이를 오가며 서로의 마음을 달랜다.
이 장면이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돌봄에서 희생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돌봄의 주체는 곧 대상이며, 돌봄 자체는 순환한다.”
돌봄은 상대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하기에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동반한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돌봄을 '희생'과 동일시한다. 하지만 돌봄이 반드시 자신을 소모해야 가능한 것은 아니다. 돌봄의 방향도 정해져 있지 않다. 강요된 교환이나 완벽한 순환의 원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복잡한 결 속에서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이어진다.
그러니 힘들 때, 무너질 때, '지금은 묵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느껴질 때면 주변의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돌봄을 요청해 보자. 그건 약함의 표현이 아니라, 순환을 시작하는 첫걸음이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그 요청을 거절하지 말자. 언젠가 자신 또한 그 돌봄의 한가운데에 서게 될 테니까. 돌봄은 해결을 강요하는 일이 아니다. 그저 묵묵히 곁에 머무는 일,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