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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Nov 07. 2023

15. 외로움을 달래다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예쁘다.

아내와 함께 간 마트를 서성이다 식물코너에서 염좌라는 다육식물을 발견했다. 아기 손같이 작고 포동포동한 잎사귀들이 모여 피어있다. 온갖 공산물과 식료품 사이에 좀 생뚱맞긴 하여도 예쁘긴 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갑자기 물고기가 키우고 싶다며 눈망울을 반짝다. 아이들의 관심은 수시로 옮아감을 잘 알기에, 물고기를 식구로 들인다 해도 돌보는 것은 곧 내 차지가 될 것을 직감하였다. 그래도 어쩌랴. 아이들의 감성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작고 예쁜 물고기들과 적당한 크기의 어항을 작은 거실에 들였다. 예상대로 아이들의 관심은 약한 바람에 촛불 꺼지듯 금방 사그라들었고, 나는 물고기 밥을 주고 주말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어항청소도 하고 있었다. 그래도 퇴근해서 어항 속 작은 공간을 노니는 귀여운 물고기들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 좋았다.  내가 게을러서인지, 물고기를 기르는 방법을 잘 몰라서인지 그렇게 1~2년을 지낸 뒤 기르던 물고기들을 모두 잃었다.


나이가 들면서 왠지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 강아지를 식구로 들여 같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물고기를 키우다가 실패한 처절한 경험 때문인지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면 식물을 키워보는 은 어떨까 해서 길러본 적이 있었는데, 삶의 번잡함을 핑계로 제대로 돌보지 못하 식물마저 저 세상에 보낸 경험도 있다. 이 지경에 이르니 반려동물, 반려식물과 함께 하는 자격증이 있다면 우리 부부는 절대 획득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쓴웃음이 지어진다.


"여보! 새순이 너무 예쁘게 돋아 났어~"

아내의 탄성에 뛰쳐나가보니 거실에 놓여 함께 살고 있는 무성한 녹보수 잎사귀들 사이에서 엷은 바람에도 파르르 떠는 연녹색의 조그마한 잎사귀가 아침햇살에 반짝였다. 어제 저녁 잠들기 전에는 분명히 보지 못했는데, 밤사이 고개를 어렵사리 내밀고 아침 해를 받고 있는 새순을 보노라면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식물 기르기에 실패한 뒤 1년 정도 지났을 때.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잘 길러보자고 아내와 의기투합하여 다시 농원을 찾았다. 조금 큰 녹보수, 그보다 작은 크로톤이 살고 있는 두 개의 화분을 조심히 자동차 뒷좌석에 모시고와 키우기 시작한 지 어언 2년이 되어간다. 이제는 쑥쑥 자라나는 식물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알았고, 꽃의 피고 짐도 목격하였으며, 파란색만 좋아하던 아내는 연녹색 좋아하게 되었다.


제야 식물 기르는 기쁨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서인지, 마트에서 우연히 발견한 염좌도 길러보고 싶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식물코너의 주인장한테 배운 대로 갓난아기 옷을 갈아입히듯 조그마한 화분에 조심스레 옮겨 심었다. 이제 거실에는 화분이 세 개가 되었고, 나란히 세워두니 올망졸망 예쁘다.


식물 기르기는 완전 초보이지만, 식물들과 거실에 드는 햇빛을 공유하고 집안에 떠도는 공기를 나누며 서로의 흐르는 시간 속 변화를 보여주는 풍요로움을 느낀다. 탁 트인 푸르른 초원에서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인간들의 작은 삶의 공간에서라도 동물, 물고기, 식물들과 반려하는 삶이 한없이 외로운 인간들에게 조금의 위안을 주는 것 아닐지. 오늘도 인간관계의 이기심, 질투심, 경쟁심에 휘둘려 찾아오는 외로움을 말없이 좁은 화분에 담겨  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실의 식물들을 바라보며 달래 본다.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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