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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Nov 01. 2023

14. 악몽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마음이 답답하다. 새로운 미션의 책임자가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주어진 업무과제를 서둘러 끝내야 하는데 계속 문제가 생겨난다. 분명 아침이었는데, 깜깜한 밤이 되었고 아직도 문제 해결이 안 된 부분이 많다. 내일 아침이면 완성물을 발표야 하는데. 발표할 회의장이라도 먼저 정리해 놓으려고 회의장을 찾아가는데 미로에 빠져 길을 찾지 못한다. 시간이 없다. 어떡하지. 너무 답답하여 눈을 번쩍 뜬다. 꿈이다.


현직을 물러나 퇴직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도 가끔 업무 관련 악몽을 꾼다. 계획형 인간인 나는 미리미리 준비해 놓지 않으면 불안했다.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상정하여 해결책을 마련해 놓아야 했다. 그렇지만 세상일이 늘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려운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고민하다 새벽이 깊어간 수천의 날들. 그렇게 퇴직이란 단어가 귓가를 두드리는 오늘을 맞이하였다.


악몽에 일찍 눈떠 거실로 나왔다. 아파트단지에 세워진 가로등이 온밤을 밝히고 있어서인지 커튼 뒷면은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희뿌연 하다. 부엌 구석에 있는 어렴풋한 정수기를 더듬어 물 한잔을 따라 마신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불 꺼진 거실벽에 웅크리고 있는 소파에 다가가 머리를 기대고 앉았다. 제법 오래된 소파가 한 사람의 체중 받아내기 어려운 듯 뿌드득 소리를 낸다.


그간 계속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은 '퇴직 후 제2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였다. 혼자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기 전 퇴직 후 예상되는 여러 상황을 그려보고 결과도 상해 다. 짬나는 대로 이곳저곳에서 정보를 얻고 각 정보별 장단점도 따져다. 확신을 가진 완성물을 내고 결단하여 나아가야 하지만 계속 흔들리며 성에 차는 답을 얻지 못다. 꿈속의 답답함이 재현되는 느낌이다. 


요즘은 '인간극장'이란 프로그램을 아하 즐겨본다.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예쁘게 장식하지 않고 편안히 풀어내는 것이 좋다. 특별한 교훈을 주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다듬지 않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데도 감동이 인다.  이러한 다양한 삶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이룬다. 자극적이거나 서민들이 살기 힘든 부러운 삶들이 주로 뉴스로서 공유, 기저의 평범한 삶들이 일상을 만들어 낸다.


퇴직 후에도 해는 뜨고 질 것이고, 죽음 전까지는 삶이 계속되며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어떠한 삶이 될지는 정확히 예상할 순 없어도 인간극장의 삶처럼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우는 평범한 날것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때는 부디 악몽을 꾸지 않고 평안한 잠을 잘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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