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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Oct 30. 2023

13. 구석증후군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나는 '구석증후군'이 있다. 내가 이름 붙여본 증후군인데, '구석에 앉아야만 마음의 안정을 누리고 중앙에 자리하면 불안함을 느끼는 현상'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회사에서 회식을 하면 나는 유독 구석자리를 찾았다. 최대한 상사의 눈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가 아늑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증후군을 가진 동료들이 있어 회식이 잡힌 날에는 최대한 일을 빨리 마치고 회식이 예정된 음식점으로 달려가 구석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애썼다. 


어디 그뿐이랴. 예전에 찍었던 단체사진을 들여다보면 여지없이 맨 구석자리에 서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단점은 가장자리에 선 사람의 얼굴이 똑바르지 않고 좀 찌부러진 듯 그로테스크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때도 들어서자마자 구석자리를 찾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문제는 흔히들 '상사'라 부르는 자리에 있을 때 생겨났다. 상사는 중앙에 앉아 회식모임을 주관하는 것이 거의 전통으로 굳어진 우리나라인데, 나는 계속 구석에 앉고 싶었다. 상사로서 회식이 있던 첫 저녁, 음식점에 도착해 맨 구석자리에 앉았다. 직원들의 당황한 얼굴들이 보여 나도 살짝 멋쩍어졌다. "중앙에 앉으시라"는 직원들의 다급한 권유에도 "나는 이 자리가 좋으니 부담 갖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회식이 시작되었지만 회식자리의 분위기가 매우 어색해져 결국은 중앙에 앉고야 말았다.


내가 구석증후군을 갖게 된 이유는 구석에 앉아 있어야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가장 크겠으나, 이목이 집중되는 빛나는 자리를 타인에게 양보한다는 마음도 조금은 있다. 구석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수줍어하고 자기주장을 잘 드러내지 않는 동료나 후배를 챙기기 위해 쭉 신경 써왔다. 


요즘 핫한 '회식문화'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회식을 자제했고, 부득이하게 회식 갖게 될 때에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중앙에 앉게 되었지만 구석에 앉은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최대한 관심을 보이며 그들의 편안한 마음을 깨뜨다. 그들도 구석에 앉지 않은 사람들만큼 중요하고, 여러 사람들 가운데 밤하늘의 별처럼 돋보여도 좋은 인재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있어 구석증후군 고쳐지지 않고 지속되는 고질병이 되겠지만, 이를 잘 승화시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타인의 성공을 돕는 '구석 조력자'의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싶다.

아래의 그림처럼, 각 사람 앞에 놓이는 와인잔보다는 구석에 놓인 와인 담는 병이 되어 테이블에 둘러앉는 사람들의  즐거움에 일조하면 좋겠다.


출처: 네이버(테이블 구석의 정물화, 앙리 팡탱 라투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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