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 가장 많이 떠오르는 기억 중 하나는 이사를 많이 다녔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집을 마련한 시기가 내가 대학을 진학한 이후이니 이사 경험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 슬하에 나를 포함해 삼 남매가 있었고, 우리가 어렸을 때는 아이들이니 당연히 웃고 떠들거나 징징대며 울었을 것이다. 슬프게도 부모님이새로이 전세를 얻을 때마다가장 힘들었던 것은 집주인이 아이가 많다거나, 아이들이 시끄러운 것이 싫다며 거부하는 것이었다.그래서 전셋집에 살 때는 부모님으로부터 항상 "조용히 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
초등학교 교사가 안주인이었던 전셋집에 살았던 때. 집주인 아들이 나와 같은 나이라 친하게 지냈다. 주인집 어른들이 퇴근하기 전, 여느 때처럼 집주인 아들과 놀고 있었는데 그가 자기 집에서 같이 TV를 보자고 제안하였다. 왠지 찜찜한 마음이 있었지만, 우리 집에는 TV가 없었고 인기 있는 만화 프로그램을 보고 싶은 욕심에 주인집 안방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안주인이 퇴근하여 안방에 들어섰다가 주인집 아들과 내가 TV를 시청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본인 아들을 큰소리로 나무랐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그 집 아들이 아닌 나를 혼내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였고, 얼굴이 붉어져 황급히 그 집 안방을 뛰쳐나왔다.
그 일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우리 집 첫 TV를 사들고 들어오셨다. 아마도 아들이 연관된 작은 사건 이야기를 들으시고 안쓰러운 마음에 무리를 하신 것 아닌가 싶다.
부모님들이 내 집이 없어 고생하면서 사신 기억 때문인지, 내가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렸을 때의 가장 큰 미션은 '내 집 마련하기'가 되었다. 그러나 집을 마련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고 지금 손꼽아 보면 우리 가정도 제법 이사를 많이 다녔다.조그마한 집 전세부터 시작해서, 내 집 마련 후에도 집 크기를 늘리기 위해 이사를 계속 감행했으니 그 수가 늘어날 수밖에.
'이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우선 이사를 위한 준비와 실행 절차가 번거롭고, 새로운 환경에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이곳저곳 살아본 경험으로 인해 삶의 공간적 스펙트럼이 넓어진다는 장점도 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아내가 제일 힘들었겠지만, 묵묵히 잘 견뎌내었고 새로 이사 간 동네의 좋은 점을 찾아내어 이전과 다른 공간에서의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내었다.
또한 '이사'를 생각하면 태고의 인간 군집이나, 그 후의 유목민들이 그들의 삶을 위하여 더 나은 장소를 찾아 이동하던 모습과 대치된다. 이전보다 더 나은 환경을 찾든지, 더 어려워진 상황에 내몰렸든지 이사를 통해 그들의 삶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적응이 이루어진다.
평생을 떠돌던 유목민처럼 오십 대 후반에 이른 나의 삶에서도 아직이동이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서민으로서의 퇴직한 삶을 살아내기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조금 더 단출하고 작은 집이 있는 곳으로의 이동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의 나의 삶에서는 확장을 위한 이동이었다면, 이제는 축소를 위한 이동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조금은 쓸쓸한 계획이지만, 평생을 꽉 쥐기만 했던 손을 몇십 년 만에 살짝 펼 수 있어 마음의 평안함이 찾아올 것 같기도 하다.
내 삶의 굴곡마다 계속되는 이동을 스스로 응원하며말발굽에 이는 희뿌연 먼지 속으로 오늘 하루도 떠나보낸다.